촌놈으로 자란 나는 어려서 연극을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영화보는 게 최고의 문화 생활인줄 알고 살았다. 그러다 대학에 올라와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대학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이였다. 그 친구 따라다니며 연극을 많이 봤다. 때론 재미없는 '고도를 기다리며' 이런 것도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한 양 고개를 끄덕이며 봤다. (솔직히 아직도 난 '고도'가 누군지 모른다.^^) 그러다 눈 앞에서 움직이는 라이브 연기의 맛에 푹 빠졌다. 비록 그녀와는 짧은 교제 후 헤어졌지만, 그녀 덕에 연극을 즐기는 취미는 평생 가는 즐거움이 되었다. (이래서 연애는 언제나 남는 장사다.^^)

 

내가 연극을 좋아하니 가끔 아이와 함께 아동극을 보러 간다. 큰 딸 민지를 데리고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하는 아동극을 몇차례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아이는 재미있게 보았으나 나는 조금 실망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백설공주니, 피노키오니, 디즈니 만화를 연극으로 번안했으니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건 알겠으나 어른인 내게 주는 새로운 감흥은 없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TV 화면을 무대 위에 재현했다는 것을 최고의 가치라 하기엔 아쉬움이 많았다. (민서의 경우, 어른 키 만한 뽀로로가 무대에서 내려와 악수하자고 하면 좀 무서워하기도 했다.... TV에서 봤을 때는 귀여웠는데, 탈바가지 뽀로로는 좀... ㅠㅠ) 디즈니나 픽사의 만화는 어른인 내가 봐도 재미있는데, 결국 지갑을 여는 건 부모이니 어른의 눈높이도 만족시켜줘야 하지 않나?

 

그러다 간만에 만족도가 높은 아동극을 한 편 발견했다. 압구정역 윤당 아트홀에서 공연하는 '청소부 토끼'  '와우!' 오랜 세월 도서관을 돌며 책 주제 마임 공연을 해온 팀이 창작 동화를 바탕으로 직접 노래를 작곡해 현장 연주를 곁들인 어린이 뮤지컬을 만들었다더니 역시 다르다. 내가 바란 아동극이 이런 것이었어! 같이 본 7살 민서도 참 좋아했지만, 어른 관객인 나 역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반가웠다.

 

마임은 손짓이나 몸짓으로 대사를 전달하고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기에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우기에 참 좋은 매체이다. 7살난 아이가 SF 스페이스 오페라를 방불케 하는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민서의 리액션을 지켜보는 것도 참 즐거웠다.

 

뮤지컬에선 음악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원맨밴드의 역할이 탁월했다. 어깨엔 기타, 발에는 탬버린, 손에는 피아노, 혼자서 음악, 노래, 음향을 담당하는 모습은 아이들에게 분명 신기하게 보였으리라. 유럽 배낭여행 가보면 거리의 악사가 손에 기타 들고 등에 드럼을 지고 발로 박자를 맞추며 노래를 한다. 늙어서 그렇게 사는 것이 꿈이었다. 자신이 작곡한 곡으로 마임 뮤지컬을 만들며 현장 반주를 하는 그의 모습에 원맨밴드의 로망이 느껴졌다.

 

 

(개구장이 민서도 무대에 올라가 토끼들과 사진을 찍는다 하니 바짝 긴장했다. 아이와 공연을 보면 평소 보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즐겁다. ^^

나오면서 커다란 비밀인양 내 귀에 대고 속삭인 말.

"아빠, 토끼 할아버지가 실은 여자야."

이럴땐 엄청 놀라줘야 한다.

"진짜? 어떻게 알았어?" ^^

'청소부 토끼 - 윤당 아트홀에서 2013년 12월 31일까지 공연' 

 

딸 둘을 키우며 나의 육아 목표는 하나다. '내가 누리는 즐거움을 아이들에게도 물려주는 것' 세상에 재미난 것이 얼마나 많은 지 보여주는 게 아빠로서 나의 목표다. 즐겁게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나도 얼른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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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두아빠 2013.11.27 0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서표정이 정말 웃기네요. ㅎㅎ 우리애도 빨랑 커야 공연보러 다닐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