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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짠돌이 육아 일기

이제는 아버지가 나서야 한다

by 김민식pd 2013. 2. 25.

'이제는 아버지가 나서야 한다.' 정말이다. 아이들의 영어 교육을 위해 이제는 아버지가 나서야 한다.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은 엄마의 역할이라고 맡겨두기만 하면 아버지는 집에 돈 벌어다주는 기계로 전락하고 만다. 엄마의 정보력과 아빠의 이해력이라는 허울 아래 아버지는 그냥 수동적으로 엄마의 교육 결정에 따라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결국에는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해외로 나가고 아버지는 기러기가 되어 혼자 한국에서 돈벌어 송금해주는 역할밖에 할 게 없다. 식구食口가 뭔가? 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는게 가족이다. 아버지가 가족에서 떨어져나오는 이유는 아이들의 교육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짜 영어 스쿨을 통해 누차 얘기했듯이 돈 들이지 않고 영어 공부하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자녀가 아직 어리다면 아이들에게 어학 능력과 함께 지적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비결이 있다. 바로 영어 문장 암송이다.

 

아버지가 내게 주신 최고의 자산은 영어 공부 학습법이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영어 선생님이던 아버지가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가져 오셨다. 그리고 방학 한 달 내에 책을 다 외울 수 있도록 매일 숙제를 내주셨다. 아침에 숙제를 내고 저녁에 돌아오시면 책을 덮고 누워 천장을 보며 그날 외운 단원을 암송하게 하셨다. 물론 쉬운 공부는 절대 아니었다. 그때 맞기도 참 많이 맞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절 학습한 암기법 덕에 기억력의 덕은 좀 본 것 같다. 내 어린 시절 기억 중 가장 보람있는 장면은 6학년 여름 방학 마지막 날 마루에서 아버지와 함께 누워 천장을 보며 영어 교과서를 줄줄이 암송했던 일이다. 한 시간 반 걸리더라.

 

책을 외우는 학습법은 일견 미련해보이지만 외국어 공부에 이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일전에 '이제는 아버지가 나서야 한다'는 어느 교육학자의 책을 봤는데, 아이들의 뇌용량은 초등학교 시절까지 90% 이상 완성된단다. 즉 나이들어 기억력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해도 이미 늦다는 거. 기억 용량을 늘리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어린 시절, 교과서를 외우게 해야한단다. 

 

외대 통역대학원 시절 느꼈는데, 통역사의 실력은 어학보다 기억력에서 판가름된다. 연사가 한 말을 쭉 듣고, 한글로 정리해야 하는데 기억력이 딸리면 내용이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통대 스터디에서 자주 하는 것이 메모리 스팬 훈련이라 하여 신문의 사설을 한 단락 읽고 눈을 감고 암송해서 얼마나 완벽하게 재현해내는가다. 그런데 그 기억력이 사실은 초등학교 시절 거의 완성된다니!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영어 학습법을 큰 딸 민지에게 물려주고 싶다. 단, 실행 방법은 좀 바꾸고 싶다. 어려서 아버지에게 너무 많이 맞아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기른 후에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딸에게 즐거운 암송을 가르칠 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아이와의 암송 대결이다. 

아이도 나도 다 낯선 제2외국어를 골라, 그걸로 매일 대결을 펼치면 어떨까? 

중국어 회화 책을 하나 고르고, (책의 선택은 딸에게 맡겨야지. 학습도 자기 주도로 해야 능률이 오르니까.) 매일 아침 30분 일찍 일어나 둘이 앉아 서로 회화 상대가 되어 문장을 외우는 거다. 낮에 자투리 시간에도 각자 짬짬이 회화를 암기하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책을 덮고 누워서 그날 외운 중국어 회화를 암송하는 거다. 주말에 놀러갈 때는 옆자리에 앉히고 차 안에서 일주일 동안 외운 내용을 암송하는 거다. 그런 식으로 한 달이면 책 한 권 외울 수 있지 않을까? 초등학교 방학을 활용하는 최고의 방법일게다. 

 

민지는 나랑 보드 게임 우노를 하는 걸 좋아한다. 이유는? 카드 전략 게임에서는 아이와 어른이 동등한 입장에서 게임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빠를 이겨먹는 걸 무척이나 즐거워한다. 이제 슬슬 그러한 게임의 동기 부여를 메모리 대결로 옮겨갈까 싶다. 내가 막히는 대목에서 아이가 술술 문장이 나오면 얼마나 통쾌하겠는가. 중국어 문장을 외우는 일을 통해 나는 늘그막에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동기를 얻고, 아이에게는 외국어 학습과 함께 기억력을 증강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그 과정을 통해 매일 매일 아이와 함께 어떤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을 즐기게 될 것이다.

 

나중에는 그걸 핑게로 아내에게 유세 좀 떨까 싶다.

"부인, 민지 중국어는 내가 책임지고 가르칠테니, 과외비는 뒀다가 당신 옷이나 한 벌 사!"

 

 

아빠와 함께 한 라오스 여행길에 므앙 응오이 느아에서

2000원짜리 조식 부페를 즐기는 민지. 

여행은, 아이에게 어학 공부의 동기를 부여한다.

물론 그런 불순한 동기 말고도 그냥 그 자체로도 아빠에게는 최고의 즐거움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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