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0월의 하늘' 강연일이군요. 과학자들의 지방 도서관 강연 기부 프로젝트, 2년 연속 참가한 행사인데, 올해는 개인적 사정이 있어 못 갑니다. 아쉬운 마음에 작년에 했던 강의 내용을 올립니다. 강연에서 나온 이야기는 책으로 묶어져 나옵니다. 곧 출간될 '10월의 하늘' 책에 소개된 원고입니다.)
타임머신을 만드는 법
저는 ‘타임머신을 만드는 법’을 여러분께 알려 들려드릴까 합니다. 타임머신, 정말 그런 기계가 있다면 참 좋겠죠? 예전부터 사람들은 “진짜로 타임머신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혹은 “우리 주위에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가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많이 했어요.
UFO는 정말 존재하나요?
여러분들은 혹시 인터넷에서 UFO 사진들을 검색해 본 적이 있나요? 번쩍번쩍 빛을 내며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미확인 비행물체, UFO는 정말 존재할까요? UFO는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UFO라는 말뜻 자체가 ‘미확인 비행 물체(Unidentified Flying Object)’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UFO가 외계에서 날아온 비행접시라는 것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아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란 어려우니까요. ‘지구 밖에 생물체는 없다’는 주장을 거짓으로 증명하기는 쉽지만, (단 한 가지 예만 찾아도 되니까요.) ‘다른 외계에 생물체가 있을 수 있다’ 는 말을 거짓으로 증명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온 우주를 다 뒤질 순 없잖아요.)
그렇다면 타임머신도 존재하나요?
UFO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1905년도에 찍힌 이 사진 안에 시간여행자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여러분도 한번 찾아보세요. 좀 특이한 사람이 찍혀 있는 게 보이시나요?
사진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잘 살펴보면 다른 사람들은 비슷한 옷과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는데, 딱 한사람만 전혀 엉뚱한 복장과 머리스타일을 하고는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1905년도의 미국에 저런 옷이나 머리스타일을 한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까 저 사람은 아마 자기도 모르게 미래에서 과거로 시간 여행을 간 사람일 것이다.’ 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사진속의 사람은 그저 머리를 깎다가 깜빡 졸았던 것 같아요. 졸다가 문득 깨어나 보니 이발사가 머리를 자기 마음대로 막 밀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다급하게 “잠깐만요! 저는 이런 머리스타일을 원한 게 아니거든요!”라고 해서 머리를 깎다 만 것뿐이지 시간여행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몇몇 사람들이 시간여행이라고 주장하는 또 다른 자료가 있습니다. 다음 사진은 1928년, 미국의 저명한 코미디언이자 영화감독인 찰리채플린이 만든 영화 속의 한 장면입니다.
어떤 사람이 까만 물체를 귀에 대고 뭔가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는 모습입니다. 1928년에 휴대전화가 있었을까요? 휴대전화의 개념이 처음 생긴 것은 1970년이고, 우리 생활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년도 안 된 일입니다. 그래서 이 사진속의 사람을 두고 ‘혹시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가 우연히 영화촬영장을 지나가다가 찍힌 게 아닐까?’ 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 여러분이 보기엔 어떤가요?
여학생: 시간여행자가 아니에요. 1905년에 휴대전화가 있어도, 통화하는 데 필요한 기지국이 없으니 쓸 수 없으니까요.
그렇죠. 정답입니다. 1905년에는 휴대전화의 통화를 가능하게 해 주는 무선기지국이 없는데 휴대폰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시간여행자는 정말 없나요?
이 사진은 1930년에 남산에서 본 서울 시가지 풍경이랍니다.
지금의 서울과는 많이 다르죠? 1930년을 살고 있는 사람을 어느 날 8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현재로 데려와서 지금의 서울 풍경을 보여준다면 그 사람은 뭐라고 할까요?
“말도 안 돼, 이건 마술이야 마술!” 그러겠죠?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이 두 시대를 다 살아 본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말입니다. 저는 그분들이야 말로 진짜 시간여행자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가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있으며 이런 생각들 할 거에요. ‘왜 할아버지는 핸드폰을 제대로 못쓰실까?’, ‘TV에 케이블을 달면 왜 할머니는 리모컨을 작동할 줄 모르실까?’ 등등…
만약 여러분이 갑자기 시간여행을 해서 어느 날 전혀 새로운 시대에 떨어진다면 마찬가지로 적응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사람의 나이가 60세를 넘기게 되면 지난 세월동안 익숙해진 삶의 방식 때문에, 급속도로 바뀌어 가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잡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난 30년 동안 정말 빠르게 변화했거든요. 우리에게 편리한 일상이 그분들에게는 복잡하고 혼란스럽기만 할 수 있죠. ‘왜 할아버지 할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예를 들어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전혀 다룰 줄 모르실까?’ 라고 생각하기보다, 할아버지에게 그 분들은 어린 시절에는 뭘 하고 놀았는지 물어보세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올라가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거예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시간 여행자’라구요?
제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릴게요. 제 턱을 보면 화상 흉터가 있어요. 다섯 살 때 제가 살던 시골 마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때 저는 어두운 방 안에서 넘어져 호롱불에 턱을 데고 말았어요. 그러다 몇 년 후, 전기가 처음 들어왔을 때 정말 신기했어요. 당시의 전등은 그리 밝지 않아서 밤에 책을 읽으려면 하얀 마분지로 갓을 만들어 빛을 모아줘야 했어요. 그러면 갓 전등 아래만 밝고 주변은 어두웠죠. 전등 아래에 손거울을 가져다 비추면 둥근 빛이 창이며 천장에 둥둥 떠다녔어요. 거울을 비추며 ‘와 달걀귀신이다!’ 그러면서 놀았어요.
TV나 스마트폰 같은 볼거리가 없었던 옛날의 사람들은 무얼 보며 긴긴 밤을 보냈을까요? 바로 밤하늘입니다. 지금도 과학관의 천체투영관에 가면 별자리로 가득한 밤하늘을 볼 수 있지만, 옛날에는 밤하늘이야말로 I-MAX 영화관 못지않은 스펙터클한 볼 거리였어요. 그런 밤하늘을 보면서 사람들은 별을 가지고 온갖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서양의 별자리 이야기나, 우리의 견우직녀가 은하수 건너 만나는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밤하늘이라는 영화관에서 주인공은 바로 달입니다. 가장 크고 밝은데다, 초승달이 되었다가 점점 차서 둥근 보름달이 되었다가 다시 기우는 등,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죠. 그걸 보고 옛날 사람들이 ‘달의 모양은 왜 자꾸 바뀌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다가 커다란 개가 달을 물고 당기다가 너무 차가워서 놓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죠. 1900년도에 영화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가장 먼저 사람들이 만든 영화 중 하나가 [달나라 여행]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인간이 달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겼겠지만, 이 영화가 나오고 70년이 지나지 않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습니다.
1987년에는 타임머신에 대한 내용을 다룬 영화 [백 투더 퓨처]가 나왔어요. 1900년도에 영화로 나왔던 달나라여행이 70년 만에 실제로 가능하게 되었으니, 아마도 2050년쯤에는 타임머신이 실제로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다가올 날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 주위에는 진짜 시간여행자가 있거든요.
그래서 타임머신은 어떻게 만드나요?
현대의 과학자들도 인정한 진짜 시간여행자는 바로 세르게이 아브데예프(Sergei Vasilyevich Avdeyev)라는 러시아의 우주비행사 입니다. 혼자서 우주정거장 미르(Mir)호를 타고 748일간 지구의 궤도를 돌았던 정말 대단한 사람이죠. (영화 '그래비티'를 보고 나니 이 분의 대단함이 더 절절히 느껴집니다.)
그런데 세르게이 아브데예프는 우주 비행을 하면서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보다 5분의 1초, 그러니까 0.2초 후의 미래로 갔답니다. 여러분은 ‘기왕 미래로 간다면 최소 몇 년에서 수십 년 후 정도는 가 줘야지.’ 혹은 ‘고작 0.2초 미래로 갔다고 그걸로 시간여행이라 할 수 있나?’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여기서 잠깐 비행기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처음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을 난 사람은 라이트 형제입니다. 그들의 첫 비행 거리는 고작 36.5m 이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비행기는 수천km를 날아갈 수 있죠. 어떤 분야든 처음 시작은 미미해도,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그 나중은 창대한 법이랍니다.
현재 과학에서 주장하는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빛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로켓은 시간지연효과를 이용해 미래로 시간여행을 한다고 합니다. 세르게이 아브데예프도 이 이론처럼 지구의 자전속도보다 빠르게 지구 주위를 무려 748일 동안이나 돌았기 때문에 짧게나마 미래로 시간여행을 한 거죠. 저는 세르게이 아브데예프가 0.2초 미래로 간 것은 시간여행의 역사에서 위대한 첫 걸음이라 믿습니다. 이외에도 중력을 이용하여 중력이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빠르게 이동하거나, 블랙홀을 이용하는 방법 등 다양한 과학적 시간 여행의 방법이 있습니다. 아직은 이론에 불가하지만 언젠가 미래에는 이런 방법으로 미래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타임머신을 만드는 방법’ 그 첫 번째 시작은 ‘가능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고 믿기 위해서는 재미난 상상을 많이 해 봐야합니다. 사람들이 달로 가는 로켓을 만들어낸 이유는 달에 대한 수많은 상상을 즐긴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시간여행에 대한 재미난 상상을 즐기다 보면, 실제로 타임머신을 만들고 싶다는 열정이 생겨나고, 그런 상상력과 열정이 과학의 발전을 가져오지 않을까요?
미래에는 무엇이 중요할까요?
제가 타임머신을 만든다면 꼭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요. 제게는 여러분 또래의 초등학생 딸이 있는데요. 사랑하는 딸 민지, 민서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미래로 날아가 미래에 필요한 기술이 뭔지 알고 싶기도 하답니다.
제가 민지만 할 때 전 두 군데 학원을 다녔어요. 어른이 되어 직업을 구하고 직장에서 승진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지만, 지금 와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술이에요. 무엇일까요? 네, 하나는 주산이고, 또 하나는 펜글씨였습니다. 당시에는 주산을 할 줄 알아야 취직을 할 수 있고, 글씨를 잘 써야 승진을 할 수 있다고 어른들이 믿었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주산을 공부하고 서예학원에 가서 펜글씨 잘 쓰는 법도 연습했는데, 10년도 지나지 않아 컴퓨터가 나와서 주산과 펜글씨가 필요 없어 질 줄 몰랐어요.
마찬가지로 전 요즘 여러분이 학원가서 배우는 것 중에 30년 후에 필요 없는 공부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영어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죠? 과연 영어가 30년 뒤에도 필요할까요? 어쩌면 30년 내로 자동 통·번역기가 나올 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어른들이 하라고 하는 공부 못한다고 너무 기죽지 마세요. 미래에는 뭐가 필요할지 아무도 몰라요. 그럼 30년 뒤에도 유용한 공부는 무엇일까요?
책은 우리의 힘!
저의 아버지는 제게 주산이나 서예를 공부하라고 시키면서, 책을 읽는 것은 무척 반대하셨어요. 동화나 소설책을 읽어봤자 그 순간만 재미있지, 삶에 유용한 기술을 배우는 건 아니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드라마 피디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은 덕분입니다. 수많은 대본을 읽고 그 중 무엇이 재미난 이야기인지 찾고, 글을 읽어 머릿속에서 그림을 떠올리는 상상력이 필요한 게 피디거든요.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가 몸에 배어 대학 다닐 때는 1년에 책을 200권씩 읽고, 요즘은 아무리 바빠도 1년에 100권은 읽습니다. 아버지가 필요 없다고 하신 독서가, 지금 제게는 직업이 되고 가장 즐거운 취미가 되었어요.
책은 왜 읽으라는 거죠?
저는 드라마 PD입니다. 그런 제가 오늘 과학자들의 강연을 빌어 여러분을 찾아온 이유는 특별한 부탁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 또래였던 초등학생 시절에 UFO를 봤어요. 지금도 그 UFO가 먼 외계에서 날아온 우주선인지 아니면 미래에서 날아온 타임머신인지 그 정체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제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빛나는 물체, UFO를 봤다는 거지요. UFO를 보고 나서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무엇이든 다 흥미진진해졌어요. ‘우주전쟁’을 읽으면, ‘내가 본 UFO가 혹시 외계인들의 정찰기?’ 하고, 마법사 이야기를 읽고는 ‘내가 본 게 혹시 마법사의 자가용?’, 시간 여행 소설을 보면 ‘그건 역시 미래에서 온 타임머신이었던 거야!’ 하게 되었거든요. 결국 책을 재미나게 읽는 가장 좋은 비결은,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가 다 가능하다고 믿는데서 시작합니다.
책은 우리 옆에 있는 진짜 타임머신입니다. 과거로 날아가 옛날 사람들의 삶을 엿보기도 하고,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측도 하게 해주거든요. 하지만 타임머신으로서 책이 하는 가장 큰 역할은 시간을 절약해주는 장치라는 겁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게임 하기를 좋아하죠? 저도 게임 참 좋아하는데요. 사람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게임은 시간을 단축해줍니다. 스타크래프트를 예로 들어 봅시다. 내가 어딘가 우주 기지에 병영을 짓는다면, 그 건물을 짓는 기간이 적어도 몇 달은 걸리겠죠? 전투기를 만드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는 마우스로 클릭만 하면 몇 초 안에 건물이든 전투기든 다 만들어집니다. 롤플레잉 게임의 경우, 내가 현실에서 칼을 쓰는 법을 연마해서 몇 년을 연습해야 검사가 되는데, 게임 내에서는 한번 미션만 완수하면 순식간에 레벨이 올라갑니다. 게임은 시간을 절약하는 효과로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지만, 아무리 게임 속 내 캐릭터의 레벨이 높아지더라도 현실에서 나는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시간의 단축효과를 주는 것은 게임 말고도 또 있습니다. 바로 책이지요. 오늘 저와 함께 강의해주신 정재승 교수님의 [과학 콘서트]를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교수님이 물리학자로서 십여 년 동안 배운 것을 약 7개월 동안 정리해서 책 한권에 담은 거랍니다. 그 책을 누군가 3일 만에 다 읽고 이해했다면 물리학자 정재승 교수님 10년의 노하우를 3일 만에 전수받은 셈이죠.
이렇게 좋은 책이란 글을 쓴 사람의 10년 인생 경험이 녹아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그런 책을 1년에 30권씩 읽는다고 가정하면 1년 동안 300년의 세월을 사는 효과입니다. 10년간 매년 30권씩의 좋은 책을 읽어 3000년의 노하우를 습득한 사람과 10년간 책 한권 읽지 않고 그냥 본인이 겪은 10년의 노하우만을 쌓은 사람은 현실에서 레벨 차이가 나겠지요. 여러분이 진짜 레벨 업을 바라신다면 이곳 도서관에 가득한 책을 찾아 읽어보세요.
저는 2007년에 {조선에서 왔소이다}라는 시트콤을 연출했던 적이 있습니다. 시간여행에 관한 시트콤이었죠. 조선시대의 양반과 그 하인이 우연히 현재로 날아와 겪는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제가 PD로서 꿈꾸는 목표중 하나가 시간여행을 재미난 드라마 소재로 만드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재미가 없었는지 당시에 PD로서 절대 저질러서는 안 되는 삼거지악(三去之惡)인 ‘시청률 저조, 제작비 초과, 광고판매 부진’을 한 번에 달성하고, 12부작인데 방송 4회 만에 조기종영 결정이 나서 7회 만에 막을 내렸어요. 그때 정말 괴롭고 창피했지만 후회는 없었어요. 전 언젠가 누군가 시간여행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 거라 생각했거든요.
지난 한 해 동안 방송에서 시간여행을 다룬 드라마가 쏟아져 나왔어요. '옥탑방 왕세자' '인현왕후의 남자' '신의' '나인-아홉 번의 시간 여행' 등. 이들 드라마가 성공하는 걸 보며 스스로를 위안했어요. ‘내가 시간을 너무 앞서갔구나.’ 그래도 사람들이 시간여행을 재미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정말 뿌듯했어요.
타임머신을 만들어주세요!
전 어렸을 때 본 그 UFO 덕분에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고, 그래서 방송사 드라마 피디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앞에 나타났던 UFO는 아무래도 외계에서 온 비행접시가 아니라, 미래에서 온 타임머신 같아요. 지구 밖의 다른 생명체가 사는 별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는 너무나 멀어 UFO를 타고 날아올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이거든요. 그래서 그 UFO는 미래에서 누군가 나에게 보내 준 타임머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든 시간여행 드라마를 보고 타임머신의 꿈을 키운 누군가, 혹은 제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은 누군가가 ‘타임머신, 내가 한번 만들어볼까?’하고 마음먹지 않을까요? 그렇게 타임머신을 만들기 위해 과학자를 꿈꾼 어떤 사람이 한국을 대표하는 물리학자가 되고, 세계 최초로 타임머신을 만들게 되는 거죠.
만약 여러분이 바로 그 과학자가 된다면 한 가지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만든 타임머신을 저에게 보내주시는 일입니다. 1980년 울산에 살고 있는 김민식 어린이에게 여러분이 만든 타임머신을 보내주세요. 그러면 그 타임머신을 보고 저는 책을 읽고, 또 시간여행 시트콤을 만들고, 이렇게 강의도 하고 책도 쓰겠지요.
타임머신을 만드는 방법 그 첫 번째는 가능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으세요. 그리고 책을 읽어 그 꿈을 키우세요. 그 꿈이 현실에서 이뤄진 어느 날, 과학자가 된 여러분이 제게 타임머신을 만들어 보내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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