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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by 김민식pd 2013. 11. 28.

한동안 칼럼을 연재했던 잡지사의 편집자를 만난 자리에서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피디님하고 잘 어울리는 책 같아서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응? 내가 백수랑 잘 어울린다는 뜻인가?

책의 목차를 대충 훑다가 바로 '오잉?' 하고 빠져 들었다. 책의 목차를 한번 나열해보자.

 

Chapter 1.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왜 우리는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걸까? : 그냥 푹 쉴 권리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이 무서운 까닭 : 100점을 목표로 하지 않을 권리

멈추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 : 필요할 때마다 멈출 권리

갖고 싶은 것들과의 싸움 : 욕망에 끌려다니지 않을 권리

내가 앞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 : 보험을 들지 않을 권리

가끔은 뻔뻔하고 당당하게 요구할 것 : 나잇값 하지 않을 권리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리라 : 하루쯤 자유를 최대한 누릴 권리

 

 

Chapter 2. 왜 자꾸만 화가 나는가?

너무 열심히 산 게 문제였다. : '더 노력해라'라는 말을 거부할 권리

그래, 난 네가 부럽다! " 돈 없어서 기죽는 순간을 쿨하게 받아들일 권리

내 마음을 설명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 : 사교적이지 않을 권리

제발 다른 회사에 가지 말라고 말해 줘 : 직장에 의리를 요구할 권리

신제품을 사지 않을 자유 : 스마트하지 않을 권리

왜 실수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야만 하는가 : 실수할 권리

학교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행복의 기술 : 자발적으로 불편을 택할 권리

세상에 무익한 일이란 없다 : 끝까지 가 볼 권리

 

Chapter 3. '할 수 있다'는 다그침은 이제 그만!

한없이 지루했던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 : 상상할 권리

무엇을 사든 끝내 외로워질 것이다 : 광고를 보지 않을 권리

죽을 때까지 다 못 읽는 권장 도서 : 고전에 짓눌리지 않을 권리

당신이 나와 같지 않아서 다행이다 : 딴지를 걸 권리

'어제의 나'와 흔쾌히 결별하는 시간 : 게으르게 산책할 권리

모두가 뜯어말리는 일일지라도 : 돈벌이가 안 되는 일을 해 볼 권리

1월 1일이 아니어도 언제나 시작할 수 있다 : 나만의 달력을 가질 권리

 

Chapter 4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그 행복한 발견

무엇이든 진정 하고 싶어질 때까지 :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외롭고 고달픈 일상을 견디게 해 주는 마법 같은 힘 : 꿈꿀 권리

생각이 너무 많아 망치는 것들 : 생각하지 않을 권리

뜻대로 풀리지 않는 날들에 대처하는 법 : 낙담하지 않을 권리

조금씩 손해 보는 삶이 더 나은 이유 : 알면서도 속아 줄 권리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공부를 원 없이 하고 싶다 : 배움의 때를 따지지 않을 권리

나는 어떤 마지막을 원하는가 : 존엄한 마지막을 보낼 권리

 

휴~ 다 끝났다. 받아쓰기... 인터넷 서점 도서 소개 코너에 가서 목차를 긁어올 수도 있지만 일부러 미련하게 목차를 하나 하나 다 적어봤다. 한 줄 한 줄 적으면서 다시 글을 읽을 때의 그 힐링 파워가 샘솟는듯... 거실에 있는 쇼파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었는데, 책을 읽는 시간보다 덮어놓고 멍때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아내가 한마디 했다.

"책 보는 거야, 그냥 빈둥대는 거야?"

"이 책은 읽다보면 자꾸 뭔가 생각이 떠올라 주욱 읽을 수가 없어. 책이 계속 내게 말을 거는 느낌?"

"그게 진짜 좋은 책이지."

진짜 그랬다. 추리소설 처럼 빠져서 한번에 주르륵 읽는 게 아니라 읽다가 자꾸 생각에 걸려 책을 덮었다. 그냥 글을 흘려보내기 보다 책의 글귀를 한번 걸러 내 마음에 오래오래 남기고 싶었다. 심지어 후반부로 갈때는 남은 분량이 줄어드는 게 아까워 더더욱 늑장을 부렸다. 물론 다 읽기 전에 얼른 작가의 다른 책을 주문하는 것으로 그 아쉬움은 줄였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새로 생긴 버릇이 있다. 사람을 만날 때, 약속 시간보다 2,30분 일찍 나간다. 그래서 아직 분주하지 않은 식당 한 켠에 멍하니 앉아있는다. 그가 10분 일찍 올 수도 있고, 정시에 올 수도 있고, 늦게 올 수도 있다. 줄수도 늘수도 있는 그 시간을 온전히 여유 시간 삼아 책장을 들추기도 하고, 멍때리기도 하고, 차창 밖 거리풍경을 구경하기도 한다. 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몰랐다.

 

이제 블로그에 목차를 올려두었으니, 바쁜 하루 중 언제든 짬이 날 땐, 이 페이지를 펼쳐 저 목차를 하나 하나 읽어보리라. 마치 영혼을 위한 치유 물약처럼 일과 중 힘들 때는 그냥 한번 목차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체력과 정신력 포텐이 급등할 것 같은 느낌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오히려 나는 기지개를 켜고 무언가 해보려고 한다. 한동안 게으름을 부리던 블로거를 다시 로그인하게 만든 책. 좋은 글이든 아니든, 남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든 아니든, 재미있는 글이든 아니든, 일단 무엇이든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 라고 마음먹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이처럼 유용한 영혼의 포션을 여러분께도 권해드린다.

 

 

물약이 다 떨어지면 같은 작가의 자매품을 이용해보자.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절찬리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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