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삶이 얼마나 즐거운지, 짠돌이의 삶이 얼마나 은혜로운가 널리 알리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런 내게 덕질의 은총을 널리 알릴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한동안 아이어른(키덜트, 마니아, 덕후 무엇으로 불러도 좋다. 다른 이의 시선에 매여산다면 이 길에 들어서지도 않았을 테니.)의 취미 생활에 대해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렇게 올린 글이 책으로 묶여나왔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마니아씨, 즐겁습니까?' 진심으로 답할 수 있다. 정말 즐겁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하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강호의 이름난 고수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 감히 저자의 일원으로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다. 출판사 책 소개글을 여기 올리니, 전국의 마니아들이여, 온라인 서점으로 돌격하여 지름신의 강림을 직접 확인하시길!
마니아 씨 즐겁습니까
장난감과 피겨 수집, 애니메이션 시청과 만화책 탐독 등 은밀한 취미를 어엿한 문화로 만든 여섯 남자의 편견 뒤집기! ‘건담이 지키는 작업실’을 운영하는 김대영, 당분간 철들고 싶지 않은 김민식, 장난감이 곧 인생인 김혁, 땀구멍까지 생생한 피겨를 만드는 김형언, 장난감 박물관을 세운 손원경, 키덜트 또는 마니아를 위한 sns를 만든 황재호. 세상은 이 여섯 남자를 오타쿠, 덕후, 키덜트, 피터 팬 증후군에 걸린 어른, 나잇값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많은 명칭 중 어느 것 하나 이들을 정확하게 가리키는 말이 없다. 소위 생각하듯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만화 캐릭터에 열중하는 오타쿠(덕후)도 아니고, 제 밥벌이를 못 하는 미숙한 어른아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산,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 매우 주목할 만한 ‘어른’들이다.
그럼에도 ‘개성 있는 문화를 즐길 줄 아는 멋진 사람’이라는 수식 대신 ‘애들이나 즐기는 것을 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으며 살아온 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취미 생활을 유지하고 창조해왔는지, 너도나도 살기 팍팍하다는 요즘 왜 이들만 유독 유쾌하고 즐거운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당신의 편견과 선입견이 하나씩 깨져나가는 매우 즐거운 현상을 경험할 것이다.
당신, 즐겁게 살고 있습니까?
누군가 삶은…… 달걀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삶은 완숙 달걀이겠다. 퍽퍽하여 씹어 넘기기 어렵고, 때론 목이 메어 울컥 눈물도 난다. 그렇다. 사는 게 퍽퍽하다. 월급은 평행선, 물가는 상행선을 그리는데 우리 삶은 하행선처럼 자꾸 바닥만 쳐다본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또다시 출근하는 일상의 반복. 세수하다 문득 거울을 봤는데 미간에 잡힌 주름, 눈 밑 다크서클, 지친 표정이 비치면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걱정스럽다. 내가 정말 잘 살고 있는 것인가? 혹시 무얼 잊고 사는 건 아닌가?
맞다. 우리는 즐거움을 잊고 산다. 먹고사는 문제가 급급해 재미를 잊고 산 지 오래다. 가뜩이나 세상 살기가 점점 버거워져 재미를 즐기는 게 잘못인 듯 여겨지기도 한다. 실리를 위해 즐거움을 줄이다 보니 갈수록 삶은 달걀처럼 뻑뻑해진다. 울컥 목이 메는가? 청량한 사이다가 필요한가? 그럼 이 책을 읽어라. 여기, 사는 게 뻑뻑하기만 한 우리에게 이 책의 여섯 작가가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신이 그저 평범하게 살라고 우리를 세상에 보낸 것은 아니다!
오타쿠, 덕후, 마니아, 키덜트, 피터 팬 증후군에 걸린 어른, 나잇값도 못하는 사람. 사람들은 장난감과 피겨를 모으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 책의 작가들을 이렇게 부른다. 명칭이 참 많기도 한데, 사실 어느 것 하나 이들을 정확하게 가리키지는 못한다. 이들 단어에는 비(非)평균을 도외시하는 어조가 얼마쯤 섞여들었기 때문이다. 왜 우리에게는 영어 ‘geek’처럼 서브컬처 애호가들을 부르는 말이 없을까? ‘하나에 광적으로 빠진 사람들’ 혹은 ‘애들이나 즐기는 것을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아닌, ‘개성 있는 문화를 즐길 줄 아는 멋진 사람들’이라는 뜻의 명칭은 정말 없을까?
대한민국은 사회 구성원들의 겉모습이나 행동 양식이 보통의 범주 안에 머물길 기대하며, 그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따돌림 같은 폭력을 가하곤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사람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겉모습이, 행동 양식이, 재미와 행복의 기준도 모두 다르다. 생김새도 성격도 제각각인 우리가 왜 평균과 비평균을 구분하며 도외시하는가! 좋아하고 수집하는 것이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인데 왜 이들을 선 밖의 사람으로 규정하는가!
루 홀츠라는 사람이 말했다. “나는 그저 평범하게 살라고, 신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낸 것이 아님을 믿는다.” 맞다. 이 책의 작가들처럼 평범한 삶에 ‘나만의 즐거움’이라는 조미료를 뿌리면 삶에서 ‘남다른’ 감칠맛이 날 것이다.
이 시대의 필수 과목, 키덜트 문화!
황재호는 이렇게 말한다. “난 지금 세대에는 반드시 이러한 키덜트 문화의 이해를 갖춰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영어를 잘하더라도 <미키 마우스>와 <스타워즈>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 여러분과 오래 대화할 미국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또 <기동전사 건담>과 <슬램덩크>도 모르는 채 일본 여행을 간다면 아무래도 즐길 거리가 반감할 것이다. 점점 더 해외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그들과 소통해야 하는 일이 많은 시대가 된 만큼 이런 문화를 잘 아는 것은 막강한 무기가 된다.”
작가는 일본과 미국에서 체류했는데 낯선 문화에 그를 뿌리 내리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애니메이션’과 ‘게임’. 작가를 빙 둘러싸고서 냄새 나는 조센진이라며 놀려대던 일본인들을 집에 찾아오게 하고, 미국에서 낯선 이와 수월히 대화했던 이유는 작가가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덕분이다. 작가는 의외로 요리와 패션 같은 소재는 세계 사람들과 대화할 때 공통의 화제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서로 문화가 다른 탓에 무슨 말을 하든 곧바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니메이션과 게임은 다르다. 그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듬더듬 말만 섞을 수 있어도 단박에 엄청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콘텐츠의 힘이란 이리도 대단하다. 이처럼 대단한 콘텐츠의 힘 한가운데, 우리 마니아 씨들이 있다.
그러니까 세상 모든 마니아 씨여, 당당하라!
“장난감 나부랭이 모으면 나중에 거지꼴 면치 못한다! 다 가져다 버려라!”
귀에 익은 말이다. 네 나이가 몇인데 장난감을 모으냐, 공부 안 하고 만화책만 보면 그 책 찢어버린다는 다소 거친 말도 우리는 왕왕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했다. 그런 것들은 나이 어릴 때만 즐기는 것이구나. 하지만 마니아 씨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단호하게 말한다. 장난감과 만화책은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그저 물건일 뿐이라고. 장난감을 모으는 것과 우표 수집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내가 재밌어서 하는 게 뭐 어때’라는 생각이 당연한 시대가 오길 바라는 황재호, 한 사람의 인생을 80년 혹은 100년으로 봤을 때 그 사람의 인성이 형성되는 초기의 10~15년간 가장 많이 만나는 사물은 바로 장난감이라는 사실에 공감하는 김혁, 이제 수집가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물건을 모으는 세상이므로 장난감 수집 또한 터부시하지 말자는 손원경, 90세까지 사는 시대니 당분간은 철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김민식, 꿈을 포기해버리거나 잊어버리는 것에 관대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은 김대영, 브루스 리 피겨를 만들며 난생처음 아주 굉장한 희열을 느낀 김형언. 이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마니아 씨로 살아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인생이 다채롭고 풍요로우며 즐거운 이유는 그들이 마니아 씨이기 때문이라고.
손원경은 말한다. “사람들이 장난감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장난감은 세상의 일부이다. 강박과 스트레스, 심지어 편집증에 시달리는 나를 포함한 모든 현대인에게 장난감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니까 세상 모든 마니아 씨여, 어깨 쭉 펴고 취미에 당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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