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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요리 배우는 남자

by 김민식pd 2013. 5. 28.

대학원 후배이던 아내를 쫓아다니던 시절, 아내는 좀처럼 내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갔다가 컴컴한 극장 안에서 슬그머니 아내의 손을 잡았는데, 갑자기 확 꼬집었다. 너무 아파, 순간 !”하고 비명을 질렀더니 뒷자리 사내들이 놀려대더라. “도대체 남자가 무슨 짓을 한 걸까?” 나와서 보니 손등에 피멍이 맺혀있었다. “꼬집는 것도 이 정도면 폭행 아니니?” “선배, 상대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신체 접촉도 폭행이거든요?” 역시 못생긴 남자가 예쁜 여자의 마음을 얻기란 참으로 멀고도 험한 길이다.

 

아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나는 백화점 문화센터 요리 과정을 신청했다. ‘여자의 마음을 얻으려면 비싼 선물을 하면 되지, 무슨 요리 강습이냐?’고 퉁박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가장 값진 선물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는 것이다. 방송사 피디로서 제일 없는 게 시간이니, 없는 시간을 쪼개어 요리를 배운다면 그보다 더 귀중한 선물이 어디 있겠냐.” 고 말했지만 짠돌이의 옹색한 자기변명 같았다. ^^

 

나중에 아내가 물었다. "갑자기 요리를 왜 배워?" "네가 나랑 결혼해주면 주말마다 내가 음식 차려주려고. 넌 그냥 늦잠을 자. 내가 침대 머리맡에 상차림을 해서 내놓을게." 이 대목에서 우와, 로맨틱하다~’하고 생각하신다면, 과한 반응이다. ‘못생긴 남자가 장가 한 번 가보려고 용쓴다.’가 적절하다. ^^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요리 수업은 정말 재밌었다. 청일점이었던 나는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엄청난 귀여움을 받았다. “장가가면 제가 직접 요리하려고요.” 이 한마디에 열화와 같은 성원이 이어졌다. "총각, 내가 한 거 한 번 먹어봐. 어때, 남자 입맛에 좀 맞아? 우리 그이가 보통 까다로워야지." 아주머니들 손에 이끌려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다니며 포식하기 일쑤였다. 마님을 모시기 위한 삼돌이 수업이라고 신청했는데, 오히려 융숭한 정승 대접을 받았다.

 

 

 

주말 요리 반까지 다닌 정성이 통했는지, 다음해 아내와 결혼 할 수 있었다. 그럼 나는 신혼에 공약을 실천하며 살았는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답은 아니오.’이다. '토요 가정 요리반'이라 해서 김치찌개나 생선구이 등을 배우는 줄 알고 선택했는데 스끼야끼나 궁중 전골을 배우는 클래스였다. 고급 재료로 3~4인분 요리를 만드는데, 신혼살림에 한번 요리하면 남기기 일쑤였고, 손이 많이 가서 만들기 쉽지 않았다. 결국 몇 번 시도했다가 포기했는데, 지금은 그나마도 다 잊었다. 아내는 내가 요리 학원에 다닌 일을 '장가가기 위한 쇼'라고 생각하는데, 나로서는 억울하다. 단지 과목 선택이 틀렸을 뿐인데.

 

그래서 얼마 전 자취생을 위한 반찬 요리 특강을 보고 단숨에 신청했다. 냉장고에 있는 남은 재료 활용하여 반찬 만드는 법, 맛 간장으로 감자조림 어묵볶음 만들기, 호박전 맛있게 하는 법 등등 일상생활에서 활용도가 높은 과정이었다. 수강료가 한번에 1만원이었는데, 완전 남는 장사였다. 갈 때는 밀폐용기를 3개 가져가 선생님의 지도로 직접 만든 반찬을 집에 가져 올 수 있었는데, 양이 많아 1주일동안 반찬 걱정이 없었다.

 

 

 

 

끼니를 거르거나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우는 일이 많은 2,30대 싱글을 위한 반찬 요리 특강에 나 혼자 40대 중년 남성이었다. 홀아비로 비쳐질까 살짝 민망해서 슬쩍 한마디 했다. “아내를 위한 깜짝 이벤트랍니다. 제가 직접 반찬 만들어서 상 차려 올리려고요.” 젊은 여성들의 박수갈채 속에 반찬통을 치켜들고 귀가할 수 있었다. 요리 강좌, 다른 남자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다. 요리도 배우고, 반찬도 얻고, 무엇보다 아내에게 점수도 딸 수 있는 기회, 이거 흔치 않다!

 

결혼 13년차, 연애 시절의 긴장을 잊지 않고 산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평생을 노력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행복한 동행' 6월호, 김피디 가라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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