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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세상이냐, 나 자신이냐, 선택의 문제.

by 김민식pd 2013. 6. 5.

어제 저녁에는 고등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받았다.

"동창회 왜 안나오냐? 나와서 사는 얘기도 하고 옛날 선생님들 소식도 듣고 그러고 살아야지."

나는 고교 동창회에 나가지 않는다. 평소에는 참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가도 고교 친구들을 만나면 30년전 왕따로 살며 괴로워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라 별로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몇년 전 나간 동창회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더니 그 자리에서 누가 그러더라.

"철없던 시절의 장난인데, 이제 어른이 된 니가 용서해라."

왕따를 경험한 입장에서 하는 얘기인데, 용서는 피해자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다. 가해자가 '그냥 장난이었을 뿐인데, 뭘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여.'라고 말하는건 2차 가해일 뿐이다. 이건 성폭력도 마찬가지다. 피해자가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먼저 자신이다. 스스로를 먼저 용서해야 한다.

 

 

(이사하다 찾아낸 사진. 97년 MBC 노동절 행사에서 무대에 올라가 춤추는 모습.)

 

사람들이 날 보고 '참 고생 한번 안하고 밝게 자란 분 같아요.' 라고 말하면 난 그냥 씩 웃는다. 즐겁게 사는 비결은 세상 눈치 보지 않고 그냥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인데 그걸 깨닫기가 참으로 어렵다. 대학 3학년 때 일기장에 쓴 글이 있다.

 

'후배라는 친구가 군복을 입고 동아리방에 와선 걸죽허니 군바리바라바리 행태를 하곤 같이 나가 술 한잔 하자는 걸 난 마다했다. 그 자리엔 나밖에 선배가 없었고 고로 난 0점 선배가 된 셈이다. 그들을 내보내고 혼자 앉아 공부하려니 잘 되지 않았다. 뭔가 허전했다. 역시 난 아직 수양이 덜 됐나 싶었다. 아예 그들을 따라나가 술을 퍼마시든, 아님 아예 공부를 하든. 역시 난 아직도 마음이 약하다. 선배 노릇 못한게 꿍스러워 공부도 못하니. 하날 버릴 땐 다른 하나는 확실히 챙겨야 하는데.

 

마음이 약해 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살았다. 세상 눈치만 보고 풀죽은 표정으로 살다가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요즘 내가 생활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그냥 지금 이 순간 나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며 산다. 술 마시는 자리에 나가, '술 안 먹고 공부해야하는데...' 공부하는 자리에서 '술 한 잔 먹고 풀어야 하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건 의미없다. 세상 눈치보지 말고, 자신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고 산다. 고로 난 동창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그 시간에 할 즐거운 일들이 내겐 너무나 많다.

 

어떤 분이 글을 올렸다.

'32살 취직 준비생입니다. 늦은 나이에 취직을 하려고 하니까 자꾸 나이가 걸린다고 주위에서 그러네요.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는데 나이가 왜 문제인지.. 조금 서럽기도 하고 고민스럽기도 합니다. 나이란 장벽을 뛰어넘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일종의 선입견 같은 것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느낌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것들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우리 솔직해지자. 주위의 걱정스런 시선이 문제일까, 그런 반응에 흔들리는 내 자신이 문제일까? 주위 의견에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으니까. 주위의 반응에 마음이 흔들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되는 것,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 어떤 경로를 통해 여기까지 왔던 그건 자신의 선택이다. 내가 즐거운 일을 위해서는 늦더라도 돌아 가겠다고 결심한 거다. 그럼 자신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의 눈치도 보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살기란 불가능하다. 그냥 내 마음 이끄는 대로 살고 그것이 세상의 흐름에 어긋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스물 여섯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첫 직장에 들어갔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니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은 열에 한둘도 되지 않았다. 난 지금도 그 비율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즐겁게 일하고 사는 사람은 전체 20퍼센트도 안된다. 20대에 기업에 취직하고 자리잡고 사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은 본인의 일과 적성이 맞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회사를 그만둘 용기가 없어 그냥 붙어있는 사람도 많다. 예전에는 적성에 안 맞는 일을 건성건성 하면서도 살 수 있었다. 한번 취직하면 평생 직장이고 고용 안정이 보장되던 시절이니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열정 없이 일을 하면서 평생 버티기 힘든 세상이다. 고용안정성은 사라지고, 기대 수명은 90으로 늘어났다. 더 빨리 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인의 적성을 찾아가는 일이다. 속도보다 더 중요한 건 방향이니까.

 

많은 나이, 어찌할 수 없다. 그 때문에 불안해하지 마시고, 그만큼 나는 어린 친구들보다 더 성숙하고 열정적이다,를 부각시키도록 하시길.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렇기에 해냈을 때 더 보람이 클 것이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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