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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23년전 일기장을 꺼내어보니

by 김민식pd 2013. 5. 31.

1990. 10. 13 (일)

오늘은 일하면서 야구를 봤다.

삼성 대 해태 플레이오프전

3선승 중 1승을 따놓은 삼성이

초반 해태에게 2대0으로 밀리다

5:2로 뒤집었다. 그후 해태가 다시

5:7로 뒤집었다. 9회말 2사에 나온 박승호 (삼성)가 안타로 1루에

나가자 김용철이 선동렬에게서 홈런을 때려버렸다. 7:7 동점 후

11회 무사만루에서 1점을 더 뽑아낸

삼성이 결국 이겼다.

참 재밌었다.

스포츠 우민화, 지역 감정, 그런 얘긴 접어두고

일단 최후의 상황에서도 기사회생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포츠는 매력이 있다.

나도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

멋있는 삶.

최후의 순간까지 희망을 잃지않는 사람.

음~~~

 

(이사하다 찾아낸 23년전의 일기장에서) 

 

오늘은 문득, 옛날 일기장의 글을 공개해봅니다. 이사짐 정리하다 일기장을 보고 혼자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막 그랬어요. 야구에서 역전을 보고 감동을 먹은 이유... 그 시절 나의 삶이 참 우울했기 때문이거든요. 당시는 방위병 근무를 마치고 복학 전에 서울에 올라와서 논현동 영동시장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배달과 서빙 일을 할 때였어요. '일하면서 야구를 봤다'는 건 서빙하다 짬짬이 홀에 있는 TV로 야구를 봤다는 겁니다. 손님들이 틀어달라 했겠죠.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은 포기한 상태였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닌, 참 어정쩡한 상태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놓고 싶지는 않았던 겁니다. 비록 공업수학을 못해서 학교에서는 지진아 취급을 받지만 이런 나도 언젠가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다면 인생 역전할 수 있어! 저 일기를 쓸 때 스물네살의 김민식은 그걸 간절히 바랬던 겁니다.  

 

어제 문득 어떤 분이 방명록에 올린 글을 보았습니다.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덧없어요..
가슴이 뻥 뚫린거 같아요
피디님은 힘들때 책을 읽는다고 하시는데 저는 아무 방법도 없어요
너무 외로워서 누군가 손 내밀어 줬으면 좋겠어요
나를 정말 사랑해줄 사람은 있는걸까 의문이 드는 나날이에요
항상 사람들이 나의 진심과 진실을 몰라준다고 생각해서 억울하고 눈물나요
나랑 조금만 대화해보고 나에게 나에대해서 궁금했던것들 물어봐주면
내가다 대답해줄텐데
아무도 그러지 않아요
그러고서는 마치 내가 어떤 아이인냥 자기들끼리 규정지어놓고 비웃죠
이제는 견디기 힘들어요
혼자가는 인생길 동반자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그런것도 없고
혼자 눈물만 흘리네요
연예인들은 얼마나 힘들까요 사람들이 자신들의 진심도 몰라주고 욕만 해대고..
저도 똑같에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꼭 풀고싶은 오해도 많구요 그치만 이미 너무 늦었어요
지금은 좀 괜찮아졌는데 몇일전까지는 아무때나 눈물이 나서 너무 힘들었어요
왜 나는 사람들에게 진실한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는걸까
왜 나는 항상 오해받고 비웃음받으며 살아야 하는걸까 이런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찼었어요
그래도 죽고싶다는 생각은 안드는게 다행일까요?
도대체 저의 이런 상처들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요?'

 

마음이 아팠어요. 이 글을 쓰신 분이 마음이 너무 와닿아서... 네, 이 글은 23년전 제 일기장의 글들과 정말 비슷해요. 저는 3학년 복학생이 되도록 여자 손 한번 못 잡아본 연애 지진아였어요. 오죽하면 당시 제 애창곡이 '다섯 손가락'의 '사랑할 순 없는지'였겠어요. 연애하고 싶다고, 나도 좀 여자랑 사귀어보고 싶다는 투정이 일기장 속 그득그득합니다. 민망해서 그 글은 못 올리구요. 대신 그 시절 다른 글을 올렸어요. 노래의 가사로 당시 제 심정을 대신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몰라줄 때 많이 힘들죠. 어린 시절, 남들한테 상처를 유난히 많이 받았던것 같아요. 일기를 꼬박 꼬박 쓴 이유는, 남들에게 하지 못할 하소연, 일기장에다 털어놓은 거죠. 그러던 어느날 일기장을 들여다보니, 남들에게 받은  상처 못지않게, 스스로가 내는 상채기도 많더군요. '너 왜 이렇게 못 났어. 왜 아이들에게 매일 당하고 사니. 도대체 언제 정신 차릴래.' 이런 글이 많았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남들이 나를 괴롭힐 수는 있어도 적어도 스스로를 괴롭히지는 말자.

 

따돌림을 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면, 소속감에 대한 강한 열망이 숨어있어요. 따를 당하는 한 사람이 되느니, 따를 시키는 다수에 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들을 점점 더 잔인하게 만들죠. 그렇게 생각하니 그 아이들도 불쌍하더라구요. 남들의 시선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한 탓에 남에게 상처주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사는거잖아요. '왕따를 하는 게 나쁘고 불쌍한 거지, 당하는 건 불쌍한 게 아니다.' 이렇게 생각했죠. (네, 네, 압니다. 어린 마음에 상처 안 받으려고 온갖 논리를 다 갖다댄거죠.) 왕따를 경험한 후, 제 인생은 바뀌었어요. 먼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되었어요. 그리고 누가 뭐라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것만 즐겁게 하고 살았어요.

 

대학 시절 가장 괴로운 건, 주위의 기대와 나의 적성의 괴리였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공대를 보냈으니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를 바라셨지만, 주위 친구들이 보기에 난 전공은 팽개치고 혼자 강의실 구석에 앉아 소설만 읽는 찐따였거든요. 그런데 어쩝니까. 내 인생, 내가 살지 남이 대신 살아주진 않잖아요? 

 

과거 일을 가지고 후회하지 마세요. 어쩔 수 없잖아요. 남들의 마음을 놓고 한탄하지 말아요. 그것도 어쩔 수 없거든요. 지금 내게 주어진 현재에 충실하며, 내 마음에 충실하게 살아요. 나만 바라보세요.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걸 하기 위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

그 시절, 일기장 한 켠에 써놓았던 글.

 

'어쩌다 내가  아닌 나를 꿈꾸었을까?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사랑하라고

나마저 나를 저버렸을까?'

 

님도 일기를 한번 써보세요. 지금 느끼는 모든 감정을 또박또박 글로 옮겨 보세요. 그리고 일기장에다 털어놓은 다음에는 그냥 잊어버리고 사세요. 아마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일기장을 들여다보면 한참 웃게 되실 걸요?

세월이 고마운게요.

무엇이든 지나고나면 웃게되거든요.

당시에는 죽을 것같이 괴로웠던 일도.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 됩니다.

 

인생 별 거 없어요. 그냥 이 모든 게 좋은 추억이 되길 바라며

그 순간까지 버티는거에요.

그럼,

오늘 하루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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