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짜 PD 스쿨

딴따라 피디가 스님께 물었습니다.

by 김민식pd 2013. 5. 9.

많은 피디 지망생들이 제 블로그에 와서 질문을 올립니다. 그럼 현역 연출가로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지요. 저 역시 인생을 살면서 고민이 생기는데 저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요? 보통은 책에서 답을 구하는데요, 그래도 속시원한 답은 못 찾을 때가 있지요. 그러다 지난주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이 안내문을 봤어요.

 

눈이 번쩍! 귀가 솔깃! 했어요. 평소 스승님으로 모시는 법륜 스님께 직접 인생의 고민을 여쭐 수 있는 기회라니요! 그래서 얼른 메일을 보냈지요.

Q:

제 직업은 드라마 피디입니다. 작년 한 해, MBC 노조부위원장으로 파업에 앞장섰습니다.
그 바람에 구속영장 2번, 정직 6개월, 대기발령 등 파란만장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주위에서는 '딴따라 피디가 나이 마흔 다섯에 왜 갑자기 데모꾼이 되었냐?'며 걱정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정토행자로 살며 항상 법륜 스님의 말씀에 감사하는 삶을 삽니다.
불자로서 세상에 보시할 수 있는 최선이 MBC 파업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언론과 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세상을 위한 최선이라 생각했고
제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파업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는 '저 양반이 다 늙어서 갑자기 좌파가 되었다.
40대 가장이 아이들이나 가정 생각도 하지 않고 철없이 파업 주도했다.'고 말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나이드는 법은 보수의 길을 걷는 것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기득권에 안주하고, 경제적 정치적 안정을 희구하는 것이라구요.
지난 대선 결과를 보니 나이 들수록 그런 경향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행복하게 나이들기 위해 우리는 일상에서 어떤 정치적 선택을 내려야 할까요?'

 

이렇게 여쭈었더니, 질문이 채택되어 강연장에서 직접 스님께 말씀을 들을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A: 

나이가 든다는 건, 하나 둘 가진 게 늘어간다는 겁니다. 일자리도 생기고, 가족도 생기고, 집도 생기고... 그러기에 나이 든 사람은 안정을 원합니다. 수십년을 쌓아온 인생이 갑자기 흔들리는 건 바라지 않지요. 반대로 젊은 사람은 가진 게 없습니다. 집도, 일도, 가정도... 집값은 비싸고, 일자리는 귀하고, 무엇이든 가지려면 지금 세상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겠지요. 나이든 사람이 안정을 원하고, 젊은 사람이 변화를 바라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서로의 입장 차 때문에 정치적 견해도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서로를 존중할 수 있게 됩니다. 

 

나이 들어서 보수가 된다는 건,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먹고 살기도 힘들고 다같이 가난했는데, 이제 나이들면서 세상이 더 좋아졌다고 생각하니까 변화보다는 안정을 원하게 되는 겁니다. 젊은 사람들이 변화를 외치는 걸 보면, '이그, 지금 이 정도만 해도 참 세상 좋아진건데... 쯧쯧쯧'하고 생각하는 거지요. 즉 사회의 보수화는 어찌보면 세상이 더 살기좋아졌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요. 만약 갈수록 살기가 더 힘들어진다면 나이든 사람도 '나 어렸을 때는 세상이 살기 좋았는데, 요즘은 이게 뭐야!'하고 불만을 가질 수 있거든요. 그러니 중장년의 보수화를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습니다. 세상이 좋아졌다는 뜻이니까요.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힘들다... 이렇게 쓰셨는데요.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이 어디에서 출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을 긍정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더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노력한 사람은 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래,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뭐.'하고 가볍게 마음을 돌이킵니다.

 

그러나 세상을 부정하고 '이런 세상에서는 죽어도 못 살겠다. 괴로워서 못살겠다. 반드시 바꿔야만 해.'라고 마음먹은 사람은 그 시도가 실패하면 좌절하고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만 쌓입니다. 이건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에 있어 좋은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긍정하고, 다만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따름입니다. 그래야 상처가 남지 않습니다. 

 

###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는 딴따라 피디입니다. 제가 MBC 노조집행부가 된 이유는 회사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전 로맨틱 코미디 연출로 사는 게 참 즐거웠어요. 운좋게 입사해서 행복하게 15년을 살았으니, 회사에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에 집행부가 된 겁니다. 

 

MBC 기자, 피디, 아나운서, 엔지니어, 카메라맨, 경영인 등 모든 조합원들은 수백대일에서 1000대 1까지 높은 경쟁률을 뚫고 운좋게 MBC에 입사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만큼 세상에 빚진 심정이었어요. 체제 불만 세력이나, 사회 전복 세력이 아니지요. 우린 지금 시스템에서 어찌보면 가장 혜택받은 사람들인걸요. 다만 더 좋은 방송으로 빚을 갚고 싶었을 뿐인데, 빚을 좀 세게 갚은 거죠. ^^ 그런 마음을 세상이 몰라준다고 해서 낙담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 열정을 기억하고, 우리 마음 변치 않는다면, 언젠가 세상은 반드시 더 좋아질 테니까요.

 

세상을 바꾸려면, 세상을 긍정하는데서 시작하라.

스님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강연장 초대도 감사한데 심지어 저자친필 싸인본까지 2권 얻었습니다. 조현 기자님의 '그리스 인생 학교'도 참 좋네요. 많이 배웁니다. 역시 말에는 끌어당김의 힘이 있어요. '공짜로 즐기는 세상'을 노래했더니, 이렇게 공짜 배움의 기회, 공짜 독서의 기회가 절로 찾아오잖습니까?

 

저처럼 '행복하게 나이 드는 법'이 궁금한 4,50대 분들은 아직 몇번의 강연 기회가 남아있으니 위의 포스터를 참고해 sunny@hanibook.co.kr  로 질문을 올리셔도 좋을 듯 합니다.

'공짜로 즐기는 세상' 뜻이 없지, 길이 없겠습니까~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