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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눈뜨고 꿈꾸는 사람

by 김민식pd 2013. 5. 4.

간만에 질의 응답 시간.

트위터로 2건의 질문이 올라와있네요.

"PD님, 아는 분이 교사 3년 차, 30살 여자쌤인데 꿈이 pd래요. 요즘 한참 고민중인데 어떤 선택을 하라고 얘기해주고 싶으세요?"

또 다른 질문.

"PD가 되고 싶은 31살 여자입니다. 올해나 내년 공채 계획이 있는지요? 그전에 미디액트 등에서 독립영상 제작편집 과정을 들으려고 합니다. 대학교때 영상제작센터에서 동아리 생활한 게 전부인데요. 독립영화 감독을 계속하면 좋겠지만 동시에 부모님도 금전적으로 돕고 싶다 보니..."

 

두 분 다 이직을 꿈꾸는 분들인듯 합니다. 저 역시 숱하게 이직을 경험했지요. 공대에서 영업사원으로, 영업사원에서 다시 통역사로, 통역사에서 다시 피디로. 20대에는 2년이 멀다하고 직업을 바꾸었죠. 이직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 '눈뜨고 꿈을 꾸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영업 사원이 되었을 때, 입사 동기 중에 친한 형이 있었어요. 그 형은 술만 마시면 "민식아, 나 내일 회사 그만둔다. 다 때려치우고 유학 갈거야."라고 했어요. 나는 그때마다 말렸죠. "무슨 소리야, 형. 영업이 얼마나 재미난 일인데 이걸 그만둔다고 그래?" 20년이 지나고보니, 그 형은 아직도 그 회사를 다니고 있구요. 저는 2년도 안되어 그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죠. 그 "나에게는 지금보다 더 멋진 꿈이 있어!"라고 말하는 게 그 형에게는 일종의 마취제였던 것 같아요. 힘든 현실로 부터 도피하는 거죠. 저는 이직을 앞두고 주위에 말한 적이 없어요. 그냥 주어진 현실이 마냥 즐거워죽겠다는 듯이 살았어요.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 없다면 다른 데로 가도 바뀌는 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어느날 퇴근 후 조용히 통역대학원 입시반 수업을 들으러 갔어요. 되면 좋고 안되면 영어 공부를 더 한 셈 치자 싶었던거죠. 내게 통역사의 꿈이 가능한지 안한지 눈 부릅뜨고 살펴보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 책에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눈뜨고 꿈꾸는 사람이다'는 글귀를 읽었어요. 눈 감고 꿈꾸는 사람,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현실 파악이 없고,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잖아요. 그냥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싫어 눈을 감은 것 뿐이죠. 그리고 더 멋진 직업으로 바뀐 나를 눈감고 그려볼 뿐이죠. 그건 자기위안은 될지 몰라도 진짜 꿈을 쫓는 자세는 아닙니다. 눈 부릅뜨고 현실을 봐야해요.

 

재작년에 들어온 MBC 드라마국 후배에게 물어봤어요. "요즘은 경쟁률이 어떻게 되니?" 1200대 1이라고 하더군요. 이게 현실입니다. 그럼 당락은 무엇이 결정할까요? 70%가 운입니다. 운칠기삼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떨어져도 후회가 없어요. '내가 과연 무엇이 부족했을까?'를 고민하지 않아요. 실력 때문에 떨어졌다고 괴로워하는 사람은 '난 1200명 중에서 무조건 1등이야'라고 믿는 것과 같아요. 아집이죠. 누구도 자신있게 '난 무조건 붙어야해'라고 말할 수 없죠. 다른 1199명의 삶을 직접 살아본 게 아니라면요. 

 

이렇게 경쟁률이 높은 직업에 도전하는 자세, 간단합니다. 마음을 편하게 내세요. '무조건 되어야해!' 이렇게 생각할수록 더 힘듭니다. 그냥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즐기며 하시면 됩니다. 그러다 공채 공고가 뜨면 가볍게 마음을 내어 지원하는 겁니다. 떨어져도 '이번에는 운이 거기까지였나보다.' 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에 또 지원할 수 있거든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원할 이유는 없습니다.

 

피디 시험의 당락은 결국 논술과 면접에서 결정납니다. 평소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자신의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습관을 길러야합니다. 교직 생활 경험이 쌓인다면 그것 또한 좋은 피디의 조건입니다. 주철환 선배님처럼 교사로 일하다 피디가 된 분도 많습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사물을 설명하듯, 시청자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풀어줄 수 있거든요. 요는 피디가 되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 둘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독립 영화 감독도 좋은 일이지요. 꿈이 무언가요? MBC 피디가 꿈은 아닙니다. 그건 수단이지요. MBC 피디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재미난 영상을 보여주고 싶다가 꿈이지요. 그럼 독립 영화 감독이 되면 그걸 못하나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자본에 양심을 팔지않고 조직에 뜻을 굽히는 일 없이 자유롭게 무언가 만들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이거 아니면 안돼! 세상에 그런 일은 없습니다.

 

두번째 질문하신 분께, 끝으로 한 말씀. '부모님께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 아름다운 생각입니다. 하지만 부모님께 진정으로 효도하는 길은 자식 입장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사는 겁니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께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입시 공부 할 시간 줄여서 그 시간에 편의점 알바하면 그게 효도일까요?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그냥 본인이 하고 싶은 일만 하세요. 그러잖아도 힘든 세상, 스스로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우지는 마세요. 가볍게 마음을 내어 즐기듯이 살아보세요.

 

 

 

아내가 가끔 투덜거립니다. "제목을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라고 지어놓고 책이 팔리기를 바라는거냐? 세상을 공짜로 즐기겠다는 짠돌이들이 책을 왜 사겠느냐, 그냥 빌려보든가 블로그에 와서 보겠지. 담번에 책을 쓰면 '돈내고 즐기는 세상'이라고 지으셩." 네,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 저의 이직의 비결입니다. '세상을 공짜로 즐길 수 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재미다.' 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20년 전 첫 직장을 그만두고 나올 수 있었어요. 전공 포기하고 실업을 각오하고 살 수 있었어요.

 

이직, 참 어려운 고민입니다. 정답은 없어요.

내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무엇이 하고 싶은가? 

그러고 세상을 눈 부릅뜨고 들여다보세요.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눈뜨고 꿈을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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