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하면서 늘 느끼는 일이지만 사람의 마음 하나 얻기란 참으로 어렵다. 하물며 수천만 시청자의 마음을 홀리는 일이야 좀 어렵겠는가? 그나마 나는 어려서 혹독한 단련을 겪은 덕에 힘겹지만은 않다. 눈 높은 아내의 마음을 얻기 위해 숱한 공을 들인 덕분이다. ^^ 

 

아내에게 청혼하기 전, 나는 한동안 신촌에 있는 백화점 문화센터로 요리 강습을 들으러 다녔다. 예능 조연출 시절이라 여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쉬는 날 낮잠을 통해 밀린 잠을 보충하기보다 시간을 쪼개어 요리 수업을 받았다. 연애중이던 아내가 물었다.

"갑자기 요리를 왜 배워?"

"네가 나랑 결혼해주면 주말마다 내가 음식 차려주려고. 넌 그냥 늦잠을 자. 내가 침대 머리맡에 상차림을 해서 내놓을게." 

이 대목에서 '우와, 로맨틱하다~' 라고 생각하신다면, 과한 반응이다. '못생긴 남자가 장가 한 번 가보려고 용쓴다.'가 적절하다. ^^

 

남자들에게 요리 강습은 꼭 한번 권해주고 싶다. 당시 문화센터에서 난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엄청난 귀여움을 받았다. '장가가면 주말에 제가 요리하려고요.' 이 한마디에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고 강습 내내 "총각, 우리 팀 요리 좀 먹어봐. 어때 남자 입맛에 좀 맞아? 우리 그이가 보통 까다로와야지." 라는 얘기를 들으며 아주머니들 손에 이끌려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다니며 포식하기 일쑤였다. 조금 먹고 말면 안된다. 맛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두 세입 연이어 먹다가 정말 배터지는 줄 알았다. 여자 열 명 사이에 남자 혼자 있으면 주눅들기 십상인데, 요리 클래스의 경우 청일점은 황송한 대접을 받는다.

 

주말 요리반까지 다닌 정성이 통했는지, 다음해 아내와 결혼 할 수 있었다. 그럼 요즘 나는 공약을 실천하며 사는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답은 'No.'이다. '토요 가정 요리반'이라 해서 난 김치 찌개나 자반 구이 등의 실전 요리 강습인줄 알고 선택했는데 스끼야끼나 궁중 전골을 배우는 클래스였다. 고급 재료를 들여 3~4인분 요리를 만드는데, 신혼 살림에 한번 요리했다가 남기면 상하기 쉽고, 손이 많이 가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요리가 아니었다. 결국 몇번 시도했다가 말았는데, 지금은 그나마도 다 잊었다. 아내는 지금도 내가 요리 학원에 다닌 일을 '장가가기 위한 쑈'라고 생각하는데, 나로서는 억울하다. 단지 과목 선택이 틀렸을 뿐인데.

 

며칠전 탤런트 박지영 님이 낸 '밥꽃'이라는 책을 봤다. 와우, 멋지다.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라는 드라마에서 박지영과 일하면서 똑부러지게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건 알았지만, 살림도 기차게 잘하는 여자라는 건 이번에 다시 실감했다. '꽃같은 여배우의 밥맛 나는 이야기와 레시피'라는 책 카피가 정말 잘 어울린다. 인생도 이렇게 맛깔나게 살아야 하는데!

 

 

책을 읽으며 다시 요리에 대한 잊혀진 열정이 되살아나고 있다. 레시피를 보면, '아빠 마음 콩나물 국밥' '알뜰한 마음 김치 찌개' '단순한 매력 된장 찌개' '보들보들 야들야들 달걀찜' 하나같이 알차고 효용 많은 메뉴들이다. 갈피를 넘길때마다 맛있는 이야기에 군침이 돌다가 '그래, 다시 요리를 시작해야겠어!'라고 결심하게 된다.

 

박지영 님을 만날 때마다 꼭 물어보는 질문이 '요즘 뭐 좋은 책 없어요?'다. 나보다 책 많이 읽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데 그가 그중 하나다. 책을 정말 많이 읽는데, 그것도 좋은 책들만 골라 읽는다. 넘기는 책장마다 평소 다독하는 그이의 알찬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다. 어렵지 않고 정겨운 말투로 딸로, 배우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온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끄러낸다. 내가 책을 많이 읽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이유는 타고난 외모의 결함을 메꾸기 위함인데, 이렇게 예쁜 사람이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하는 걸 보면 샘까지 난다. '이건 불공평하잖아!'

 

어쨌든 '밥꽃'을 읽고 책에 나온 레시피대로 요리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주말 아침에 마님의 침상 머리맡에 한 상 가득 차려내야지. 13년 전의 약속을 이제라도 지켜야겠다.

사람 마음 하나 얻는다는 것, 평생을 노력해야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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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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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미 2013.02.22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 마음 하나 얻으면 뭐하겠노.
    소고기 사묵겠제.


  2. 김양 2013.02.22 1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분 너무 이쁜데.... 아... 정말 너무 불공평하네요!!!!

  3. 이윤영PD 2013.02.22 2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이제 기존 매체를 왜 그래야하는지
    그들의 대화와 행동을 보면서
    조금씩 하나 하나 왜 그래야하는지
    이슈몰이, 가십거리 해보니 그들의 왜 그래야 하는지 이제 알거 같아요..
    그래서 이제 그들을 이해하고 다가가려는데.
    오늘 멘션에 돌아오는건 " 사람관계 가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관계 맺고 싶지 않다고 "
    이런 멘션 받으니 속상해요...ㅠㅠ
    처음에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해도 그래도 그들 중에 믿음 가는 분들이 있어서.
    포기 하지 않으려고....

  4. Falling 2013.02.22 22: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청혼전에 요리강습을 받으러 다니셨다는 부분에서 뉴논에 인성이가 생각났네요~
    경림이의 포장마차 일을 더 잘 도우려고 요리학원까지 다녔던 인성이 ㅎㅎ
    오늘도 피디님께 한수 배우고 갑니다. ^^

  5. 나비오 2013.02.23 1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박지영씨가 그런 분이셨군요
    좀 남다르다고는 생각했는데...
    멋진 분은 훌륭한 책이 나왔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