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가 올 때마다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치열하게 살 것을 다짐해보지만, 꿈이란 것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걸 알기에 난 이렇게 마음먹는다. 올 한 해, 닥치는 대로 저지르듯 살고 무엇을 이루든 그것이 처음부터 나의 꿈이었다고 우기리라.

 

드라마 피디라고 나 자신을 소개하고, 피디가 되는 방법에 대해 책까지 썼다. 그랬더니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 “피디님은 언제 드라마 피디가 되겠다는 꿈을 꾸셨나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드라마 피디를 꿈꾼 적이 없다. 그냥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드라마 피디가 된 건 내 나이 마흔 살의 일이다. 그전에는 MBC 예능국에서 일하며 러브하우스느낌표같은 버라이어티 쇼를 연출했다. 대학에서는 공학을 전공했고, 첫 직장에서는 영업사원으로 일했으며, 통역사를 꿈꾸며 외대 통역대학원을 다녔다. 만약 어린 시절 꿈이 드라마 피디였다면, 공대를 가고 세일즈를 했을 이유가 없다.

 

피디가 된 건 우연한 사고였다. 나는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해서 통역사가 되었다. 혼자 CNN 뉴스를 보며 청취를 익혔고, 타임지를 읽으며 독해를 공부했더니 통역을 나가 종종 문제가 생겼다. 연사가 영어로 농담을 하면 미국식 유머를 몰라 놓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수님을 찾아갔더니 이런 충고를 해주셨다. “미국 시트콤을 보세요. ‘프렌즈같은 시트콤을 보면 일상 영어 표현도 익히고 미국식 유머도 배울 거예요.” 그래서 미국 시트콤을 열심히 봤는데, 그만 시트콤에 중독되어 버렸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시트콤이 왜 한국에는 없는 거지? 내가 한번 만들어볼까?’ 그래서 나는 MBC에 지원했고, 결국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으로 연출 데뷔하게 되었다.

 

피디 시험에 운 좋게 합격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평소의 다독하는 습관이었다. 대학생 시절, 책읽기를 좋아해서 1년에 200권씩 책을 읽었다. 요즘은 피디로 일하느라 바빠서 100권 밖에 못 읽지만 여전히 독서는 내게 취미이자 특기다. 어린 학생들을 만나면 꼭 책 읽는 습관을 기르라고 권하는데, 그러면 아이들은 이렇게 묻는다. “피디가 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하나요?” “아뇨. 책을 많이 읽다보면 피디가 될 수도 있어요.” “그게 그거 아닌가요?” “다르죠. 책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1년에 백권씩 억지로 읽으면 얼마나 괴롭겠어요. 그러다 피디 시험에 떨어지면 괜히 고생만 하고 억울하죠. 하지만 책이 좋아서 열심히 읽은 사람이라면 피디가 되지 않아도 독서의 즐거움은 누렸으니 후회할 일은 없죠.”

 

청소년 진로 특강에 가서 하는 얘기. “여러분, 꿈이 있나요? 꿈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그 꿈은 진짜 나의 꿈인가? 혹시 나는 부모님의 꿈을 나의 꿈이라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과 어른들의 꿈을 혼동하고 살거든요. 진짜 나의 꿈이 아니라면, 그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즐겁지 않고, 즐겁지 않으면 열심히 하기 어렵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이루기 힘들어요. 뭘하고 싶은지 아직 모르겠다면, 그냥 꿈 없이 살아도 됩니다. 그냥 지금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세요.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그때 가서 우기면 돼요. 처음부터 그 일이 내 꿈이었다고.”

 

새 해가 밝았다. 나는 올 해 내가 어떤 꿈을 이룰 것인가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 내가 맡은 일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런 다음 무엇이 되건 나중에는 우길 것이다. 처음부터 그게 나의 꿈이었다고.

 

(행복한 동행, 1월호 '김피디 가라사대' 원고)

 

 

폭설로 불편하신 분들 많죠?

 

눈 온 다음날엔 동네 뒷산을 올라 보세요.

 

평소와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어요.

 

여행이 별 건가요? 내가 있는 장소의 맛을 깊이 음미하는 것이 여행이지.

 

- 삼청각에서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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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목동미녀 2013.02.07 0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생을 꼭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하는가도 싶답니다.
    사람이 꿈을 이루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냥 맛있는거 먹고, 살살 쉬고,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사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하면서요.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죽을 둥 살 둥 살며
    꿈을 못 이루었다고 실망하며, 자책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거참, 참 안타깝드라구요

    • 김민식pd 2013.02.07 07: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요즘 불행하다고 느끼는 건 행복의 기준이 너무 높아진 탓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전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라고 우깁니다. ^^

  2. 아일락 2013.02.07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취업준비생인 29살인 저에게 너무나 가슴에 와 닿는 말입니다.
    최근 '광고천재 이태백' 이라는 드라마에서 '구겨진 종이가 멀리 날아간다.' 라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뒤 돌아 생각하니... 저는 이제까지 제 인생이 구겨졌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욱 힘차게 비상할 날을 꿈꾸며~~~ 미친듯이 노력해볼까?? 합니다.!!!
    오늘 너무나 좋은 글.... 저에게 살이되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3.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02.07 2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즐겁게 꿈을 꾸려고 해요...
    하지만, 정말 기자란 직업, PD란 직업이 너무 힘듭니다.
    기자 시사를 제외하면 다른 분야 현장은 너무나 현혹되는거 많아서..
    경력이 쌓이면서 기자란 직업을 다시 되새겨봤어요...
    그리고 PD의 직업도 너무 힘듭니다.
    KBS 수료 SBS 수강을 반복하면서
    거기에 현직 PD들도 새로운 것을 찾으라는 말..
    처음엔 몰랐는데 일상이 반복되면서..
    그 말이 이제 알겠어요...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너무나 힘들어요..
    세상에 쉬운게 없네요...
    그래도 즐겁게 하려 해요.
    즐겁게 하면서 현장에서 창피도 당하면서 즐겁게 일하려 노력하는데...
    하루 하루 재미있는데 아직도 너무 많이 부족해서...

  4. 아흑~ ㅠ.ㅠ 2013.02.08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전히 감동적인(^^;;) 글을 작성하고 계시는구만요~ ㅎㅎㅎ
    제가 다음뷰에 대한 관심을 줄였던 동안에도 열심히... ^^
    난 또~, 김피디님께서 '저'만을 위해 맞춤 글을 작성한다 생각했었는데.. 그게 오해였구먼~. ㅡ,.ㅡ
    ㅎㅎㅎ

    암튼, 새해 인사 드릴테니 사양하지 마시고 좀.. 받으시와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심을 진심으로 감축드리옵니다~ m(__)m

    근데.. 제가 누구냐구요? @,.@
    뭐, 짜드리 김피디님과 안면튼 적은 없습니다만.. 그냥 친한 척~하고픈 한.. 독자입니다. ^^*

  5. 2013.02.13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