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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멘붕이 너무 자주 온다

by 김민식pd 2013. 1. 25.

별로 잘나가지 않는 드라마 피디로 사는 탓에 나는 멘붕을 자주 겪는다. 예전에도 어느 드라마를 연출할 때 첫 방 시청률이 궁금해서 디씨갤에 들어갔다가 '모 드라마 첫 방 시청률 #.* %, 김민식 감독 X망했네.' 라는 글을 보고 심한 멘붕을 겪은 적이 있다. 나름 재미난 걸 만들어 세상에 보여주겠노라는 포부로 집에도 안 들어가고 밤을 새며 일만 했는데, 시청률이 안 나오니까 마치 세상 사람들이 내게 침을 뱉고 등을 돌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됐네, 이 사람아."

 

작년 한 해도 비슷한 기분이다. 딴따라 피디인지라 공정보도니 뉴스의 가치니 하는 건 나와 거리가 먼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방송인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은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에 작년 한 해 열심히 일했다. 그랬는데 아직도 고쳐지는 게 없다... 역시 세상 사람들이 내게 침을 뱉은 느낌이다. "됐네, 이 사람아. 당신 앞가림이나 잘 하시게."

 

 

 

올해에는 MBC 아카데미에 교육발령나고 어김없이 멘붕을 다시 겪고 있다. MBC를 대표하는 각분야의 기라성같은 선배들이 수십년간 방송에서 일하며 배운 경험을 썩히며 다들 강의실에 나와 수업을 듣고 있다. 한 선배님께 사석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선배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게 다 저희 노조 집행부가 제대로 싸우지 못한 탓입니다. 선배님들 이렇게 지내시는 모습을 보니 집행부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때 선배가 그랬다. "넌 왜 그렇게 건방지냐?"

"네?"

"여기 있는 선배들이 작년에 앵커 사퇴하고, 보직 던지고 나온 게 누가 선동해서 그런 것 같니? 각자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스스로 느낀 점을 실천하기 위해 행동한 거야. 니가 뭔데 감히 책임을 통감해? 그냥 너는 여기 있으면서 스스로 마음의 상처나 잘 치유해."

 

그렇구나...

드라마 피디로 살며 시청률 부진을 겪을 때 마다 난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린다. '내 작품은 시대를 너무 앞서 나왔나보다. 대중이 이해를 못하네.' 생각해보니 그 얼마나 건방진 생각인가. 다른 드라마를 선택한 수백만 시청자들의 선택을 호도하다니... 대선 결과에 대해 멘붕을 겪는 것도 혹시 그런 오만한 생각 아닐까? 그들의 선택에는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텐데 왜 나는 주제넘게 아직도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너나 잘하세요.' 라고 그들이 말했으니 '아, 예!' 하고 돌아서서 스스로 힐링에 힘쓰면 될 일인데 말이다.

 

그래서 요즘 나의 화두는 셀프 힐링이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108배를 올리고 스님의 법문을 듣고 마음 공부를 하고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그러니까 요즘 내가 글을 매일 올리는 것은 누구 보라는게 아니라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방편이다.

 

내 자신의 힐링에 큰 도움이 된 법륜 스님의 새해 법문을 올린다. 항상 스님의 가르침에 감사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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