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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죽음을 통해 삶을 바라보기

by 김민식pd 2013. 1. 24.

MBC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으며 좋은 점은 내가 평소엔 만날 수 없는 전문가 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제는 서울대 의대 내과학교실에서 일하시는 정현채 교수님을 모시고 '의료인에 대한 죽음 교육으로서 영화의 활용'이란 수업을 들었다. 죽음에 관한 다양한 영화 속 장면을 보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는데, 혼자 듣고 말기에는 아까워 이렇게 옮겨본다.

 

죽음과 직면하면서 비로소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대표적인 이야기가 일본영화 <이끼루>이다. “이끼루”는 ‘살다’, ‘살아 있음’이라는 의미이나, 사실은 죽음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나생문>이라는 영화로 유명한 일본의 故 구로자와 아끼라 감독이 1952년 발표한 영화인데, 죽음학 분야에서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중요하게 인용된다. 초연 후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50개가 넘는 상을 받았으며, 1997년에는 세계 10대 고전명화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시청의 말단 과장인 주인공은 소화가 안 돼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데, 위암 말기여서 완치를 위한 수술은 불가능하고 남은 시간이 수개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크게 낙심하여 평소에 하지 않던 술과 도박도 잠시 해보지만 마음의 공허감은 채울 수가 없다. 그렇게 실의에 빠져있던 중, 몇 달 안 남은 자신의 마지막 삶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나라도 끝마치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꺼져 가던 장작더미에서 반짝 불이 일듯 기운을 차리고는,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미결 서류더미에서 마을 주민들의 숙원사업이 담겨진 민원서류 하나를 찾아낸다. 그것은 비만 오면 커다란 물웅덩이로 변하고 파리가 들끓는 마을 한 구석 버려진 공터를 어린이 공원으로 만들어 달라는 진정서였는데, 7개나 되는 부서가 관여된 일인데다 그 누구도 성의껏 추진하려고 하지 않아 전혀 진척이 되지 않았었다. 주인공은 이 일을 직접 나서서 추진해 나간다. 해당되는 여러 부서의 과장이 결재 도장을 찍어줄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 ‘끈끈이’ 작전으로 매달린 결과, 마침내 어린이 공원은 완공되고, 공원 개장 전날 눈 내리는 밤 주인공은 그네에 앉아 나지막하게노래를 부르다 숨을 거둔다.

 

 

주인공이 퇴근길 잠시 멈추어 서서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저녁 노을이 이렇게 아름다운 걸 모르고 30년을 살아왔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없구나”하고 말하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힘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바람직한 죽음문화의 정착에 힘써 온 독일인 알폰스 데켄 신부는 이 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죽음에 임박하여, 타인에 대한 사랑을 통해 주인공은 기쁨과 만족감을 느꼈고, 죽음에 직면함으로써 비로소 보다 바르게 살 수 있었다.”

 

-위 글의 전체를 보시려면 아래 논문을 참고하세요.

http://synapse.koreamed.org/Synapse/Data/PDFData/0028KJG/kjg-60-140.pdf

 

철없던 10대 나의 삶의 모토는 '30살에 죽자.'였다. 어른이 되는 것이 싫었던 나는 서른살 이후의 삶에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어른이 되는 것은 세상에 물들어 타락하는 과정이라 여겼기에, 20대에 청춘을 뜨겁게 불사르고 서른 살이 되면 깔끔하게 가자고 마음 먹었다. 기왕 떠날 몸이니까 너무 멀리 보지 말고 순간 순간의 삶에 충실하자고 결심하고 자전거 전국일주를 하고, 나이트클럽 죽돌이가 되고, 회사를 때려치고 여행을 떠나고 그렇게 막 살았다. 그런데, 이제와 돌아보니 인생 사는 데 최고의 방법은 그것이었다. 내일 죽을 각오로 오늘을 사는 것.

 

'이끼루'의 주인공은 '시간이 없어'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사람들의 비협조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나는 다른 사람을 원망할 시간이 없어.'라고 훌훌 털고 일어난다. 그렇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살기에는 남은 삶이 너무 아깝다.

 

영화를 통해 죽음을 강의하는 의대 교수님의 모습이 인상적인 수업이었다. 언젠가 내가 만드는 드라마도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을까? 그전에 내가 먼저 깨달아야하니 공부가 우선이다. 

 

오전에 심영섭 평론가님의 수업, '힐링 시네마' 시간에 본 '엔딩 노트'도 참 좋았다. 감히 추천드린다.    

 

 

 

블로그에 매일 글을 올린다. 언젠가 내가 세상을 떠난 후, 민지 민서가 어른이 되어 이곳을 찾아온다면... 아, 그렇다면 지금 올리는 글이 나만의 '엔딩 노트'일 수 있겠구나. 문득 '열심히 살자'라는 다짐이! 그리고 언제나 가족과 소중한 추억을 나눌 수 있기를!

 

(오늘은 제가 모시고 사는 마님 생일입니다. 이 자리를 통해 '세상에 태어나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외칩니다. 마님은 아마 이러시겠지요. '저 짠돌이가 선물은 안 사주고 이렇게 블로그에서 떠든 걸로 넘어가려는구나.' 

돈보다 마음이잖아요~ ㅋㅋㅋ

 

부인! 영화 엔딩 노트 꼭 보셈~ 만약 바빠서 볼 수 없다면 핵심만 요약해드려요.

 

'남편에겐 평소에 잘 하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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