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댓글에 올라온 사연입니다.
'... 중학교 3학년 때 심하게 학교폭력을 당했습니다... 지금 21살이 되었는데 아직도 트라우마에서 못벗어나고 당장 찾아가서 절 왕따시킨 아이에게 복수하고 싶은 생각만 듭니다.. 아직도 그 때가 종종떠오르고 그럴때마다 눈에 부엌에 있는 칼이 들어옵니다... 그러곤 상상이 시작되요... 어떻게 해야하지요.... 그아이는 결국 양아치 세계로 들어가 조폭 끄나풀로 살며 어린 나이에 외제차까지 끌고 다녀요... 아....정말 힘드네요.. 살기가....'
어린 시절 받은 폭력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저도 참 힘들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받은 상처라 더 오래 가더군요. 고교 시절 왕따로 고생했지만, 그나마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아이들을 만날 일이 없어 서서히 치유되었죠. 그러던 어느날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갔다가 저를 왕따시킨 두 놈을 우연히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딱 마주쳤답니다. 슬쩍 인사만 하고 지나치려 했는데 두 녀석이 저를 붙잡고 묻더군요.
"야, #$% 여긴 웬일이냐?"
"어, 방학이라 고향 왔지."
"니 고향은 저기 필리핀이잖아. 여기를 오면 어떡해? 방학에 놀지말고 영어 공부해서 얼른 고향 찾아가야지."
네... 대학생이 되면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그 순간에 저는 아직도 아이더군요. 뭐라 대꾸도 못하고 얼굴만 벌개졌어요. 할 말이 없어 씨익 웃어주고 뒤돌아서는데 뒤통수로 그들의 조롱이 들려왔어요.
"좋댄다."
"#$%, 잘 가라!"
(여기서 #$%는 제 고교시절 별명이랍니다. 그놈들은 한번도 저를 이름으로 불러준 적이 없어요. 자신들이 만들어 전교에 유행시킨 별명으로만 집요하게 불렀죠. 그 별명으로 불러서 대답하지 않으면 와서 꼭 괴롭혔어요. 그 별명은 정말 죽어도 기억하기 싫은데, 요즘은 가끔 거울보면서 그럽니다. '닮긴 좀 닮았네.' ^^)
오랜 세월 복수를 꿈꿨습니다. 어떻게 복수해야 할까?
그러다 서점에서 어떤 책을 한 권 만났습니다. '잘 사는 게 복수다'
제목 하나로 제 모든 고민의 답을 주더군요. 그래, 잘 사는 게 복수지!
저는 그녀석들의 충고대로 영어 공부 열심히 했고요. 그 덕에 인생 아주 즐겁게 살고 있어요. 여행 다닐 때마다 느끼지만 영어 하나만 잘 해도 여행의 재미는 배가되고요. 직업을 얻을 때도 취미를 즐길 때도 큰 도움 받고 있지요. 그리고 영어 덕분에 나름의 소심한 복수도 했답니다. 저를 놀리던 녀석이 다닌 대학이 경희대였는데요. 그 학교에서 영어 경시대회를 하더군요. 대학 3학년 때 그 대회에 나가서 상금도 탔어요. 그 녀석이 낸 등록금에서 타낸 상금이라고 혼자 히히덕 거리며 좋아했지요. (음... 생각해보니 저도 참 찌질했군요. 이러니 애들이 왕따를 하지... ^^)
인생, 즐겁게 살자고 마음 먹고 최대한 열심히 즐깁니다. 그 녀석들 보란듯이 평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어느 순간 부터는 그들이 몰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복수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니까. 어린 시절 힘들었던 나를 위해, 지금 나는 즐겁게 삽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용서 하지 않으면 내가 힘들거든요. 밤 잠 못 이뤄봤자 내 몸만 고생이에요.
부처님 말씀 중에 '제 1의 화살은 맞아도 제2의 화살은 맞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슴이 길을 가다 사냥꾼의 화살에 다리를 맞았어요. 화살을 맞고 바로 달아나버리면 두번째 화살은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살을 맞고 화가 나서 '뭐지? 뭐가 날 이렇게 아프게 하는 거지?' 하면서 첫번째 화살을 물고 씩씩대다보면 바로 두번째 화살을 맞고 목숨을 빼앗기게 됩니다.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한 건 첫 번째 화살입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맞는 거에요. 인생은 살다보면 그런 거에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불행이 닥쳐옵니다. 다만 그 불행에 집착하면 더 큰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세상 일, 절대로 내 뜻대로 되지 않아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내 마음 하나입니다. 마음 하나 고쳐먹으면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어요. 잘 사는 게 최고의 복수랍니다. 그리고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고요.
고교 시절 왕따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남은 평생 즐겁게 살아야겠다고 스무살 때 마음 먹었습니다. '공짜로 즐기는 세상'은 어찌보면 그러한 결심의 결과로 나온 제 인생 철학이고요. 그렇게 보면 내 인생은 남는 장사지요. 3년간 힘들었던 보상으로 25년을 즐겁게 살고 있으니까요.
우리 즐겁게 살아요.
그게 최고의 복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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