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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남자 배우에게 발레를 권하는 이유

by 김민식pd 2013. 1. 11.

청춘 시트콤 논스톱 시리즈와 레인보우 로망스를 오랜 세월 연출하면서 신인들과 작업할 일이 많았다. 연기 경험이 부족한 친구들과 작업하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 가끔 이런 충고를 해준다. "너 발레 한번 배워볼래?" 남자 배우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대부분의 반응은 뜨악이다. 농담인줄 알고. 그러나 나는 진심이다. 

 

배우가 연기를 잘 하는 지 못하는 지 보려면 걸음걸이를 보면 된다. 신인의 경우 화면에서 걷는 모습도 어색하다. 웬지 팔다리가 따로 노는 것 같다. 연기는 얼굴로 한다는 생각에 대사와 표정만 신경쓰는 탓이다. 자신의 몸을 쓰는 법을 따로 배워야 한다. 평생 팔다리를 쓰며 산 것 같지만, 막상 춤을 춰보면 몸을 어떻게 쓰는지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연기가 어색한 친구에게 발레를 권한다.

 

연기력이 부족해서 게시판에서 잔소리를 좀 들은 신인이라면 특훈을 권한다. 바로 대학로 뮤지컬 출연이다. 뮤지컬은 노래와 춤을 배우기에 최고의 코스다. 뮤지컬 팬들은 아이돌 이름 팔아서 티켓 장사한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던데, TV 드라마 감독 입장에서는 그것보다 좋은 연기 연습이 없다고 생각한다. 무대 연기에서 배우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건 몸 동작이다. 그렇기에 연극을 한번 하고 나면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확실히 좋아진다.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는 연기파 배우들이 다 연극배우 출신인데는 이유가 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팬으로서 처음 영화화 소식을 듣고 실망한 적이 있다. 바로 장발장 역할에 휴 잭맨이 캐스팅되었다는 얘기였다. 울버린으로서 휴 잭맨을 좋아하긴 하지만, 풍상을 겪은 장발장 역을 하기에는 너무 화려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노래 솜씨도 미덥지 않았고... 게다가 감독이 사전 녹음이 아니라 현장 라이브로 노래를 시킨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더욱 걱정 되었다. '휴 잭맨이라니, 차라리 러셀 크로우가 어울리는 것 같은데... 액션 스타라는 이름값보고 한 캐스팅 아냐?'

 

영화를 보고, 휴 잭맨에게 달려가 사죄하고 싶었다. '우와, 이런 배우였구나.' 미국 TV 프로그램 '60 Minutes'에 나온 인터뷰를 봤다. 사람이 달라보였다. 내가 아는 휴 잭맨은 화려한 할리웃 액션 스타였는데, 인터뷰를 보니 그는 원래 브로드웨이에서 게이 역할을 잘 해낸 뮤지컬 배우였다. 그리고 그 이전에 불행한 가족사를 가진 한 사람의 인간이었고... 와우...

 

 

 

인터뷰를 본 후, 유튜브를 뒤져봤다. 휴 잭맨의 화려한 브로드웨이 활동사가 나왔다. 마치 장발장을 연기하기 위해 살아온 사람 같았다. '노래와 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배우였구나... 오랜 세월 뮤지컬 무대에 올라 춤을 춘 사람이니 액션 연기도 그렇게 잘 하지.'

 

신인 배우에게 몸을 쓰는 법을 배우라고 권하는 이유가 있다. 표정은 연기할 수 있어도 몸은 거짓말을 못한다. 오디션 때 보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사를 해도 손은 부들부들 떨리는 걸 감출 수 없는 배우가 있다. 아직 몸을 쓰는 데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경우다. 무대에서 관객 앞에 라이브로 연기하다보면 다 치유된다.

 

표정을 가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온 몸을 써서 연기하는 것을 배우는 일이다. 무대에 올라 팔 다리 동작 하나 하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경험을 매일 해본다면 연기는 불쑥 는다. 몸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니까. 몸으로 배운 것은 고스란히 남는다. 인생은 그래서 참 정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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