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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실패는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는 기회

by 김민식pd 2012. 12. 31.

통역대학원 다닐 때 일이다.


남녀 한 쌍이 방을 나오자, 기다리던 여학생이 달려가 잽싸게 문을 잡고 소리친다.
"오빠! 방 잡았어! 빨리 와!"
저쪽에서 다른 여학생이 달려온다. 
"야, 너네 둘이 또 해? 니들은 아침에도 했잖아!"
"아침에 한건 성희롱이고, 이번에는 낙태야."



내가 다닌 외대 통역대학원에서는 남녀 2인 1조로 스터디를 했다. 한 명이 영어 연설을 읽으면, 다른 한 명이 듣고 통역하는 방식이다. 굳이 남녀 혼성 스터디를 짜는 이유는, 통역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데 남녀가 취약한 분야가 다르니까 서로의 결점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역 스터디는 학생 2명이 빈 강의실 하나를 통째로 쓰기에 방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통역대학원 복도에는 늘 이런 실랑이가 오간다. 국제 여성 인권 대회를 앞두고 스터디를 할 때는, 성희롱, 낙태, 매매춘 등의 주제에 따라 다양한 연설문을 준비해야한다. 서로 각자가 자신있는 주제의 연설문을 준비해야하는데 그럴때는 여학생이 이런 말도 한다. "내가 매춘할게! 매춘은 내 전문이잖아!" 매춘 문제 근절에 대한 영어 연설 작성은 자신있는 여학생의 외침이다.

갑자기 통대 시절이 떠오른건 얼마전 친구들이 모여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눈 탓이다. 졸업한지 15년인데, 친구 중 하나가 통역대학원에서 강의를 맡게 되었다. '우리 그때 통역 수업 어떻게 했지?' 그랬더니 한 명이 말을 꺼냈다. "난 통역 수업에서 딴건 기억 안나고 민식 형 통역한 것만 기억나." 약간 거만해진 표정의 나, "그랬나?" 다들 박장대소. "거짓말을 어쩜 그렇게 잘하는지. 연사가 한 말이랑 다른데도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뻔뻔하게 말 참 지어내더라."

고백하자면, 나는 영어를 국내에서 독학한 터라, 영어 연설문 중 안들리는 대목이 많았다. 그런데 통역사가 청중 앞에서 들리지 않는다 하여 당황하는건 빵점이다. 실력이 부족하다고 현장에서 포기하고 물러나는 건 프로의 자세가 아니다. 무엇보다 통역은 서비스다. 듣는 이가 마음 편하게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안들려도 티를 내지 않았다. 앞 뒤 문장 관계를 통해 추론을 해서 안 들린 대목을 그 자리에서 말을 만들어내서 넘어갔다. 그랬더니 다들 날보고 '통역을 하는게 아니라 소설을 쓴다'고 흉을 봤다. 서비스 정신은 좋았을지 모르나, 통역사로서는 완전 빵점이었다.

어제 술자리에서도 15년전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친구들이 놀려댔다. "형은 정말 거짓말을 기가 막히게 잘했어. 연설문을 쓴 나조차 형의 통역을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니까?" "그게 통역이냐? 창작이지." 한차례 퍼지는 웃음을 잠재우며, 큰소리쳤다. "그렇게 창작을 잘해니까 이렇게 피디가 된 거 잖아!"

학창 시절, 공부를 못해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학교 성적은 오로지 암기력, 이해력 중심으로만 평가된다. 하지만 세상은 암기력과 이해력만으로 평가되는 곳이 아니다. 학교에서 공부 잘했다고 잘 살고, 공부 못했다고 못사는거 절대 아니다.  

성적이 나빠도 기죽지 말고 버텨라.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만 찾으면 된다. 자신의 재능을 찾아 갈고 닦으면, 언젠가는 세상이 그대를 알아 줄 것이다.

당신의 재능을 알릴 수 있는 공간은 참 많다. 요즘 방송사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지만 사실 소셜 미디어야 말로 전세계로 중계되는 실시간 오디션 현장이다. 유튜브에서는 기타 하나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도 하고, 블로그에서는 맵시 좋게 옷 입는 재주 하나로 국민의 눈길을 끌 수도 있다. 개인에게는 자기 표현의 기회이자, 기업에게는 전세계에 상품을 알릴 수 있는 마케팅 기회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열심히 해라. 그러다보면 좋아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 된다. 

소셜 미디어, 그곳은 다양한 재능이 빛을 발하는 기회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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