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는데, 어떤 분이 아이의 교육 문제를 상담했다. '아이가 현실성이 부족해서 늘 허황된 꿈에 빠져삽니다. 창업을 하겠다느니, 유학을 가겠다느니 하는데요. 아이를 위해 안정된 직장을 구하라고 아무리 권해도 말을 안 듣네요. 아이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스님의 답변. "못이 있는데, 그걸 굳이 두들겨서 바늘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바늘이 있는데 굳이 녹여서 못을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못이 있으면 못으로 쓰면 되고, 바늘이 있으면 바늘로 쓰면 되는데 말입니다. 아이가 스무살이 넘으면 자신의 뜻대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놔둬야합니다. 부모의 뜻대로 아이의 인생을 바꾸지 마세요."

 

소설 '왕좌의 게임'에도 이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버림받은 자들로 이루어진 나이트 워치에 어느날 영주로 부터 버림받은 아들이 강제로 입대하게 된다. 싸움에 재주가 없는 그는 혹독한 검술 훈련을 견디지 못하는데 이를 보다못한 존 스노우가 상관을 찾아가 하는 말.

 

"You can’t hammer tin into iron, no matter how hard you beat it, but that doesn’t mean tin is useless." 주석을 아무리 두들겨도 철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주석이 쓸모없는 건 아니죠.

 

칼싸움에는 젬병일지 몰라도 글쓰기와 산술에 능한 재주가 있으니 쓰임새를 바꾸면 나이트워치에 도움되는 병사로 바꿀 수 있다는 게 존 스노우의 주장이다. 왕이 될 자는 이렇게 사람을 쓰는 스케일부터 다르다.

 

 

 

아버지는 내가 의사가 되길 원하셨다. 교사로 정년퇴직하셨는데, 평생 제자들의 진로를 지켜보고 내린 결론이 '한국에서 먹고 사는데는 의사가 최고!' 였다. 문제는 내가 의대에 갈 성적이 안된다는 것이었고 더 큰 문제는 의대에 갈 적성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둘 다 교정 가능한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러한 믿음 덕에 나의 10대는 죽고싶을만치 우울했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이과를 선택하고, 그 탓에 적성에도 안맞는 공대를 갔다. 의대는 결국 성적이 안돼서 포기. 20대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컸다. '왜 자식의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당신의 욕심대로만 아이를 키우려 하셨을까?' 주석에게는 주석 나름의 쓰임새가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 덕에 나는 깨달았다.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삶인지. 피디라는 직업을 얻고 나서 하루 하루 웃으면서 일하게 된 비결이 거기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수십년을 철이 되어라 하고 두들겨 맞고 나서야 깨달은 거다. '아, 나는 죽어도 철은 못되겠구나. 주석으로 그냥 살아야지.' 

 

두들겨 맞지 않고 자신의 쓰임새를 알아낼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게 찾아낸 직업이라면 웬지 감사하는 마음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시련을 행복을 위한 담금질이라 하나보다. '나의 쓰임새는 과연 무엇일까?' 이 고민은 인생을 살며 계속하는 끝없는 담금질 같다. 

 

나이 마흔이 되고서야, 나의 참된 용도를 찾을 수 있게 해준 아버지의 담금질에 감사하게 되었다. 어떤 시련이 오든, 먼훗날 감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올 겨울, 밤이 길 것 같은데, '왕좌의 게임'이 있어 다행이다. 원작의 양이 방대한 걸로 워낙 유명한 책이니 긴긴 밤 견디는데 큰 도움 될듯!       

 

(문맥을 통해 소설의 감동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 아래 원문을 인용합니다.)

“He’s hopeless with a sword. My sister Arya could tear him apart, and she’s not yet ten. If Ser Alliser makes him fight, it’s only a matter of time before he’s hurt or killed.”

“Leave him where he is,” Chett said. “The Wall is no place for the weak. Let him train until he is ready, no matter how many years that takes. Ser Alliser shall make a man of him or kill him, as the gods will.”

“That’s stupid,” Jon said. He took a deep breath to gather his thoughts. “I remember once I asked Maester Luwin why he wore a chain around his throat.”

Maester Aemon touched his own collar lightly, his bony, wrinkled finger stroking the heavy metal links. “Go on.”

“He told me that a maester’s collar is made of chain to remind him that he is sworn to serve,” Jon said, remembering. “I asked why each link was a different metal. A silver chain would look much finer with his grey robes, I said. Maester Luwin laughed. A maester forges his chain with study, he told me. The different metals are each a different kind of learning, gold for the study of money and accounts, silver for healing, iron for warcraft. And he said there were other meanings as well. The collar is supposed to remind a maester of the realm he serves, isn’t that so? Lords are gold and knights steel, but two links can’t make a chain. You also need silver and iron and lead, tin and copper and bronze and all the rest, and those are farmers and smiths and merchants and the like. A chain needs all sorts of metals, and a land needs all sorts of people.”

Maester Aemon smiled. “And so?”
“The Night’s Watch needs all sorts too. Why else have rangers and stewards and builders? Lord Randyll couldn’t make Sam a warrior, and Ser Alliser won’t either. You can’t hammer tin into iron, no matter how hard you beat it, but that doesn’t mean tin is useless. Why shouldn’t Sam be a steward? He can do sums, and he knows how to read and write. There’s a lot he could do, besides fighting. The Night’s Watch needs every man. Why kill one, to no end? Make use of him instead.”

George R. R. Martin. “A Game Of Thrones.” 중에서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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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듀파워 2012.12.21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일 뒤로 5년간 내 쓰임이 무엇일지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잠깐만 징징거리고 다시 웃으며 가야겠지요... 이 이해하기 괴로운 대한민국 속으로!

  2. JuneYong 2012.12.22 1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의 쓰임새....
    정말 모든 고민들이 "나의 쓰임새는 무엇일까?"라는 이 고민에 다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고 하죠ㅋ. 저마다의 개성을 살려 각자의 쓰임새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3. 그린벨트PD 2012.12.23 0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의 쓰임새를 찾기 위해서 억지로 '두들겨 맞을' 필요도 있는 걸까요?
    제 어머니는 항상 '하고싶은 것 해라'라고 하시는데, 그래서 오히려 절박함이 부족한 것 같아서요 ㅜㅜ

  4. 2012.12.26 1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2012.12.28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michelle 2012.12.30 0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조언이시네요 ^^저도 쓸모가 있을거란믿음 늘 마음속한구석에 간직한채 살아갑니다... 그럴거야 그럴거야...진짜...진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