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는 리영희재단에서 주관한 토크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콘서트에 가면 춤추고 노래해야 하는데 해직 언론인 복직 촉구 콘서트라니, 요즘은 왜 이리 슬픈 콘서트가 많을까요? 무대위의 수상자들에게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쳐야 하는데 해직 언론인으로서 감사패를 받는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가득한 건 왜일까요? 나오는 길에 뉴스타파 노종면 앵커를 만나 그의 새 책을 선물받았는데, 몇년째 해직기자로 사는 그에게 저자 싸인본 한 권 얻는게 왜 이리 죄스러울까요?

 

 

 

행사가 열렸던 조계사를 나와 종각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마음은 울적했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왜 이리 고단할까?' 그러다 문득 종각역 앞에서 발길이 멈췄습니다. 20년 전의 추억이 떠올랐어요. 1992년 대학 4학년 때, 전 종각역 옆 종로 외국어학원에서 야학 교사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검정고시를 공부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배움터를 열었는데, 학습 공간이 없어 학원장님이 일요일에 쉬는 학원 건물을 빌려주셨거든요. 일요일마다 열리는 학교라하여 '오뚜기 일요학교'였고, 전 그곳에서 총무 교사로 일했죠.

 

학원장님께서는 대학생 야학 교사들을 위해 학원 수강료 할인 혜택도 주셨는데요, 저는 특히 그 배려 덕분에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한국 3M에 들어가 영업 사원으로 일하다 일이 제 적성과 맞지 않아 고민하던 중, 종로 외국어 학원에서 본 '통역대학원 입시반' 광고가 떠올랐어요. '어차피 야학 교사는 수강료 할인도 되니, 가벼운 마음으로 한 달 다녀보자.' 그래서 다닌 곳이 한민근 선생님의 통대 입시반 수업이었답니다.

 

공대를 나와, 영업을 하다가, 통대를 가고, 예능 피디가 되고, 다시 드라마국으로 옮기고, 그러다 또 노조 집행부까지... 제 책에 나와있는 저의 경력을 보고 누가 그랬답니다.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인생을 피곤하게 살까?" 실은 20년전에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공대를 다니면서 영어를 공부하고, 수많은 책을 읽고, 남들 취업 준비할 때 야학 교사를 하고... "넌 왜 그렇게 인생을 피곤하게 사냐?"

 

뒤돌아보니 대학 시절 야학 교사를 한 인연으로 통역대학원 입시반 수업을 들을 수 있었어요. 그 덕에 드라마 피디의 삶을 살게 되었구요. 인생은 무수한 점으로 이루어진 선이라 생각합니다. 왔다갔다 어지럽게 찍혀 있는 점들을 잇다보면 삐뚤 빼뚤 선은 정신없이 구부러진 것 처럼 보이지만, 세월이 흐른 후 멀리서 지켜보면 구부러졌을 지언정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20대의 방황이란 그런 것이겠지요. 지금 그 순간에는 의미없는 실패와 좌절로 점점이 박힌듯 보여도 먼훗날 돌아보면 그 하나 하나의 점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선을 이룬다는 것을. 결국 인생에서 버리는 시간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조의 여왕'을 연출할 때 신입사원 한 명이 조연출로 왔었는데요.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선배님이 뉴논스톱 연출할 때 인터넷에 올린 연출일기를 읽으며 피디의 꿈을 키웠습니다." 다음 카페에 연재하던 연출일기를 다듬은 것이 '피디가 말하는 피디'라는 책에 실린 원고입니다. 한겨레 TV '디어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려고 갔더니 담당 피디가 그 책의 독자라며 반갑게 맞아주시더군요. 

 

저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블로그에 글을 씁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거에요. '왜 그렇게 인생을 피곤하게 사냐?' 글쎄요, 먼 훗날, 어떤 대박 피디가 인터뷰를 하며 "저는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서 연출론을 배웠습니다." 라고 말하면 그만한 보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제 글을 읽고, 좋은 책 한 권 더 읽고, 상처받아도 좋으니 연애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고, 더욱 마음 편하게 인생을 즐겨보자고 결심하게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렇게 아침마다 글을 쓸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오뚜기 일요학교 시절, 수업이 비는 시간이면 교무실을 나와 땡땡이를 쳤어요. 근처 종로서적이나 교보문고에 달려가 책 구경을 했죠. 서가를 빼곡이 채운 책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책을 내고, 저자 강연을 한다면... 지금 야학 교사로 일하며 배운 강의 기술을 써먹을 수 있겠지?' 

 

재봉틀 앞에서 밤새 시다(봉제 견습공)로 일하느라 피로에 절은 학생들이 일요일 야학 수업에 와서 꾸벅꾸벅 졸기도 합니다. 그들을 깨우는 제일 좋은 방법은 주위 학생들을 웃기는 것이었죠. 그 시절에 익힌 강의 기법, 20년 만에 써먹습니다. 

 

이번주 토요일 낮 12시,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공짜로 즐기는 세상' 저자 강연회 합니다.

선착순 무료입장이랍니다. 90분 동안, 책의 1부 '공짜로 즐기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연애 특강, 여행 이야기, 독서의 중요성 등에 대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후 4시에는 명동 청어람 아카데미 청어람 3실에서 2시간 동안 책의 2부, '공짜로 즐기는 미디어'에 대해 강의합니다. 블로그 무료 특강인만큼 소셜미디어 제작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할 계획입니다. 

 

 

 

블로그 덕분에 책도 내고, 이렇게 강연 홍보도 하게 되었으니, 저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무엇을 하시든, '이게 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고민하지 마세요. 한 방향을 향해 꾸준히 걸을 수 있다면 언젠가 돌아보며 '저 어지러이 찍힌 발자욱 속에 나의 길이 있었구나.' 하고 느낄 겁니다. 헛걸음이 될까, 엉뚱한 길로 접어들까 두려워 발을 내딛지 않는 사람은 결국 아무데도 못갑니다. 인생 뭐 있나요, 일단 달리고 보는 겁니다. 오늘도 힘찬 발걸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시길! 

      

        

Posted by 김민식pd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한종덕 2012.12.04 0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4시에 1,2부가 모두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따로 진행이었군요.
    아직 기차표를 예매하지 않았는데, 토요일날 조금 일찍 출발해야겠습니다.ㅋ

  2. 정지은 2012.12.04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4시 강연도 그냥 가면 들을 수 있는 건가용??^^

  3. ThePresent 2012.12.04 14: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그렇게 멀리 점 떨어져서 제 인생을 볼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민식pd 2012.12.05 07: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렵지 않아요. 그냥 늙으면 됩니다. 살면 모든 답은 절로 해결됩니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졸업식 축사를 보시면 알 수 있어요.

  4. 2012.12.04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모과 2012.12.04 1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 출간을 축하합니다.~~
    저도 블로그 이상의 세게를 꿈꾸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6. 2012.12.05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이미화 2012.12.05 1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아! 저도 가고싶어요~ 4시 강연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가고싶고.. 책을 사들고 이 강연 들으러가겠습니다!! 자리가 있으면 좋을텐데ㅠ 선착순이라 조금 걱정되네요 흑흑 워낙 인기가 많으셔서ㅠㅠ

  8. 김윤민 2012.12.05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일말고 9일날이나 .... 다른날은 안하시나요?????? 음 진짜 가구싶은데 못가는 마음 안타까워서리 ㅠㅠ

  9. 김윤민 2012.12.05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일말고 9일날이나 .... 다른날은 안하시나요?????? 음 진짜 가구싶은데 못가는 마음 안타까워서리 ㅠㅠ

    • 김민식pd 2012.12.07 07: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죄송해요. 오래전부터 날짜를 미리 공지하고 여러분과 함께 시간을 맞춘거라... 일요일보다는 토요일이 편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10. 우와 2012.12.06 0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억하는 한 피디님 글 중에서 제일 마음에 닿는 좋은 글... 적절한 홍보까지... ㅎㅎ 오뚜기 일요학교 김민식 님이 계셨군요. 역시... 피디님은 참 좋은 분이세요. 그 모두가 지금의 피디님이겠죠? 후배 병간호 글에 뭉클뭉클 했던 날처럼 감동 받고 갑니다. 생각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차이... 제 부끄러운 20대와 남은 30대를 반성합니다. 청어람은 민망해도 교보는 가고 싶었는데 들어야 할 수업이 있어서 안타깝네요. 존경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김민식pd 2012.12.07 07: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고맙습니다. 지금의 나는 45년간 살아온 김민식의 총합이겠죠? 그래서 하루하루의 삶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꾸벅. ^^

  11. 유유(유즈유저) 2012.12.06 19: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연회 축하드립니다. 안그래도 주말에 서점에 가려고 했었는데.. 토요일 교보문고에서 뵐 수 있도록 일찍 준비해야 겠네요. (선착순이라는게 쉽지 않은 미션이더라고요;;). 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

  12. 안젤라 2012.12.06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전 아들이랑 12시 교보강연 들으러가겠습니다. 4시엔 광화문 유세 보려구요.^^ 듣고 또 들어도 재밌고 유익한 피디님 말씀 기대하며, 그럼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13. 코코 2012.12.08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하고 계시겠네요.ㅜㅜ 지방에서도 한번 해주셨음 하는 큰 바람..하하.
    친구에게 말을 건네줄껄.ㅜㅜ 하고 후회했습니다.
    어제는 싱글에 관한 글을 읽다보니...ㅎㅎ 오늘은 이 글을 읽네요.(왠지 놓친기분ㅜ.)
    제가 아는 학생분도 피디님처럼 아침일찍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들으면 헉.. 그걸 해낸거야??라고 다시 반문하게 될 일) 을 떠올리며 그때 재미있었는데 말을 하는거보니, 인생은 역시 뭔가 고생한일이 있어서 기억에 남고 그러는거 같습니다. 우야튼...!! 강의 가고싶네요...ㅜㅜ.

  14. 2012.12.08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5. 2019.08.21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