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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웹툰 '미생'에서 배우는 드라마 연출론

by 김민식pd 2012. 11. 30.

웹툰 미생으로 배우는 드라마 연출론 제2강~

 

드라마 피디는 아티스트인가, 스토리텔러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후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앵글을 공부하기 보다 이야기를 공부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예쁜 화면과 좋은 구도는 이야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어야지, 화면이 이야기를 압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점에 있어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드라마 피디도 있을 수 있다.)

 

좋은 만화가 역시 아티스트이기보다 스토리텔러로서 자신을 갈고 닦는 사람이다. 윤태호 만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화백이란 호칭보다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라는 칭호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윤작가는 그림을 위해, 혹은 컷 연출을 위해 이야기를 희생하지 않는다. 그에게 콘티란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일 뿐이다.  

 

드라마란 무엇인가? 인생의 하이라이트 편집이다. 돌 하나와 부모님의 표정만으로 7년이란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는 착수 0은, 하이라이트 편집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제껏 쌓아온 인생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빼앗겨버린 주인공에게 작가는 이런 독백을 준다.

'나는 변한 게 없다.

없어야 한다.

너희들만 변한 것이다.

열심히 안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해서인걸로 생각하겠다.'

 

평소 만화를 그릴 때, 백지에다 대사를 직접 적어본다고 하는 윤태호 작가의 글솜씨는 정말 일품이다. 만화가이지만 그는 그림보다 글에 더 집착하는 사람이다. 그는 평소 만화학과 제자들과 함께 소설을 필사한다. 좋은 글이 있으면 직접 적어내려가며 그 글의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려고 한단다.

 

드라마 피디로서 나 역시 화면이나 앵글보다는 이야기에 집착하는 편이다. 드라마는 별로 보지 않지만, 매년 100권의 책을 읽는 건, 그만큼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그래는 기원 연구생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졌지만, 그가 겪는 좌절은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것이다. 고전이나 걸작이 주는 감동이 그러하다. 특수한 상황에 처한 인물을 다루지만 그 인물의 정서는 보편적이어서 누구나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허구의 주인공은 환타지를 체화하는 캐릭터이지만, 리얼리티를 가진 보편적 인물이어야 한다. 그래야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가 주인공을 응원할 수 있고, 시청에 몰입할 수 있다. 공감을 주지 못하는 캐릭터는 이야기의 낭비다. 

 

드라마 초반에 모든 주인공은 시련을 겪는다. 바람 피운 남편에게 버림받던가, 시한부 인생임이 밝혀지던가, 빚쟁이에 쫓겨 자살 시도를 하던가, 주인공에게 닥치는 가혹한 시련을 보여준 후, 작가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과연 우리의 주인공은 이 시련을 어떻게 이겨낼까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저글링과 같다. 

너무 쉬우면 보는 이가 흥미를 잃고, 너무 어려워 공을 놓치면 시청의 흥이 깨진다. 재주있는 이야기꾼은 처음에는 단순한 전개로 독자의 시선을 붙잡고 그런 다음, 새로운 공이나 접시를 하나 둘 보태어 간다. 착수 0에서는 주인공을 소개하고, 착수 1에서는 만화의 기획 의도가 드러난다. 

"저 불빛들 중 하나를 책임지게." 

이 한마디의 대사로 미생이란 작품은 '도시의 밤을 밝히는 샐러리맨들에게 바치는 헌사'임을 알린다. 바둑의 고수에게 버리는 돌이 없듯이, 이 작가에게도 버리는 컷, 버리는 회가 없다. 너무 쉽게 곤경을 이겨내지도 않는다. 바둑의 달인이 취업에 도전하는 이야기라 하니, 바둑을 특기로 삼아 성공하는 스토리인가? 싶지만 착수 2에서 작가는 장그래의 첫 사회 진출을 간단히 좌절시켜버린다. 역시 너무 쉬우면 재미가 없는 법! 단 3회 연재만으로 이야기는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선다. 

 

착수2의 엔딩은 전형적인 드라마 1화의 엔딩이다. '과연 우리의 주인공은 무사히 직장이라는 사각의 바둑판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주인공의 운명에 집착하도록 만들고,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에 공감하도록 만들고, 그 길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준 후 이제 작가는 네번째 돌을 준비한다. 과연?

 

웹툰 미생으로 배우는 드라마 연출론,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만화의 인기에 묻어가려는 이 얄팍한 시도! ㅋㅋㅋ)

 

미생 착수 0 보기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er/15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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