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짜 PD 스쿨

가정적인 여고생도 피디가 될 수 있나요?

by 김민식pd 2013. 1. 21.

간만에 피디 스쿨 질의응답 시간입니다! 네, 방명록에 드라마 피디가 꿈이라는 어느 여고생이 남겨주신 사연이에요.  

 

1. 아빠가 저의 지금 정도 학벌이면 훨씬 안정적인 직업 얻을 수 있을꺼라고.....(반대는 안하시지만 달가워하지 않으십니다) 하시는데 pd 정도면 안정적인 직업 아닌가요??

: 직업 자체는 안정적이지 않고요. 다니는 회사가 안정적이냐 아니냐를 많이들 따지지요. 공중파 공채 피디를 선호하는 이유가 아무래도 직장이 더 안정적이거든요. 하지만 외부에서 프리랜서 피디로 혼자 일하며 전혀 안정적이지 않은 환경에서도 즐겁게 연출하는 사람 많이 있어요. 어떤 직업이 안정적이냐, 아니냐보다 적성이 더 맞느냐 아니냐를 고려해야지요.  


2. Pd가 드라마를 찍지 않는 동안에는 무엇을 하나요? 또 조연출은 주로 무슨 일을 하나요?

: 드라마를 찍지 않는 동안에는 드라마 찍을 궁리하며 살아요. 작가 만나 대본 찾고, 책 읽으며 원작을 검토하고 그러지요. 조연출은 피디가 시키는 일은 다 합니다. 편집, 촬영, 음악 선곡, 예고편 제작, 작가 대본 독촉 등등...^^


3. 입봉은...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건가요?? 대부분 5년 넘게 걸린다던데....

: 거의 군대처럼 시간되면 다 시켜줍니다. 조금 빠르고 늦고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입봉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거든요. 입봉하고 나서 어떤 작품을 맡느냐가 중요하지요. 드라마 국장과 부장들이 회의를 해서 결정합니다. 평소 조연출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시거든요.


4. 밤새 작업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던데 그럼 방송국에서 살다시피 하는 건가요?? 집에도 못들어가고?

: 그런 경우도 많지만... 그런대로 살만 합니다. 고교 시절, 집에 들어가기 싫어 친구 집에서 외박만 해도 신나잖아요? 그런 것 처럼 회사 편집실 소파에서 자는 것도 재미난 경험이랍니다. ^^ 어떨 때는 소파 쪽잠도 그립지요.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잠깐 자는 게 다일 때도 있거든요. 방송국에서 살아봤자 드라마 촬영 기간 동안 서너달이고요, 그중에서도 일주일에 한두번은 집에 들어갑니다. 여기도 사람 사는 데에요. 너무 겁먹지 마세요. ^^

 


5. 스텝들의 차림은 일반 회사원과 같나요??

: 아뇨. 회사원과는 차림이 다르죠. 정장은 절대 안 입습니다. 저는 16년 동안 회사에서 정장 입어본 일이 없어요. (아, 맞다! 방송 심의 제재 나와서 심의위원회 출석 할 때는 정장 입었구나.) 겨울철 스태프들의 차림은 일반 회사원보다는 노숙자에 가깝습니다. 촬영장에서 이불 겸용으로 쓰이는 두툼한 파카에 갈아입을 속옷이 가득한 배낭을 메고 다니거든요. (농담이구요.^^) 그냥 캐주얼 차림으로 다닙니다. 예능 피디 시절 드레스코드는 동골하청이었어요. 겨울엔 골덴 바지, 여름엔 청바지.

 

 

노란 색 잠바에 마스크 쓴 노숙자가 저입니다. ^^   



6. (가장 중요하고 궁금했던 질문입니다!!)
연출가가 드라마를 만들때 각자의 성향이 있고 전문 분야가 있고 시청자들에게 전하려고 하는 메세지가 있다고 하잖아요ㅡ근데 솔직히 저는 드라마를 많이보는 편이 아니라 그런지 몰라도 디테일 빼고는 다 거기서 거기인 내용으로 보이거든요.... 피디라는 일이 재밋을 것 같긴 하지만 그게 단순히 자극적인 영상들로 시청률을 올리는 데에서 만족하는 일로 변질시키기는 싫어요ㅡ도대체 연출가는 어떤 가치관과 마인드를 가지고 표현해야하는걸까요??

: 상당히 찔리는 질문이네요. 사람마다 드라마에 담고 싶은 내용은 다 다르겠죠. 저는 연애지상주의, 사랑이 인생을 구원한다는 나름의 주제의식을 갖고 있답니다. 다만 그걸 표현하는 방법은 작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학생이 보기에 현재 피디들의 작업이 마뜩치않다면 그것이야말로 피디를 해야할 가장 좋은 이유가 아닐까요? '나는 방송에 나만의 가치관을 담아야겠다!' 라는 포부를 가지고 입사하는 후배를 기다립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할까?' 이건 저도 아직 고민중인 문제랍니다. 아마 연출을 하며 평생 답을 찾아 헤맬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공부가 우선이지요. 연출가마다 가치관이 다르겠지요. 각자의 가치관을 찾고 정립하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7. 마지막!!으로 왜 mbc를 들어가셨나요?? 다른 방송국들과 무엇이 다르죠??

: 저는 어려서부터 MBC를 좋아했어요. KBS는 웬지 공무원 조직같고, SBS는 개인 회사 같았지만, MBC는 자유로운 문화가 있는 것 같았어요. 피디가 된다면 MBC 피디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KBS나 SBS에는 입사원서도 내지 않았답니다. 입사하고 늘 느꼈지만, MBC는 참 좋은 회사에요. (갑자기 왜 눈물이... ^^)   


(추가질문) 

저 나름 가정적인?여잔데ㅋㅋ결혼하면 어떻게 피디를 하며 살지, 결혼은 할수 있으려나... 결혼하면 일 그만하고 집에서 작가나 할까? 하는 고민이 있어요.

: 좋은 질문이에요. 항상 이런 문제가 나오면 제가 드리는 답은 하나입니다. '그런 고민은 문제가 생기면 그때가서 해도 늦지 않다...' 일단 지금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봅니다. 연출이 너무 하고 싶은데, 나중에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덜컥 결혼 먼저 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남편이랑 애낳고 사는 게 너무 행복해서 피디의 꿈은 저 멀리 달아날 수도 있거든요. 가정적인 여자, 그것도 참 좋은 일이잖아요? 저는 이루기 가장 어려운 꿈 중 하나가 현모양처라고 생각하거든요. 혹은 피디로 일하느라 바빠 결혼이 밀릴수도 있구요. 그때 그때 형편에 맞춰 사는거지요, 뭐. 

 

인생 너무 어려서 미리 다 정해두려고 하지 마세요. 살다보면 그때 그때 바뀌어요. 그리고 바뀌는 게 나쁜 게 아니에요. 현실에 충실해서 즐겁게 사는 게 최선이거든요. 

제가요, 마흔살에 드라마 피디로 전직하면서 결심했답니다. '드라마 피디로 입봉이 늦은 만큼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자!' 그래서 3년동안 4편의 드라마를 만들었어요. 잠도 안자고 집에도 안들어가고 막 그렇게요. 그러다 재작년부터는 노조 집행부에 파업에 정직에 교육 발령에... 전혀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고 있지요. 그래도요. 후회는 없답니다. 그 순간, 내게 주어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생은 그런 거에요. 절대로 뜻대로 풀리지 않아요. 그래서 재미있는 게 삶이랍니다. (시청자가 예상한대로만 흘러가는 드라마, 재미없잖아요?)

 

그럼, 오늘의 피디 스쿨은 여기까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