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단식만은 정말로 하고 싶지 않았다. MBC노조 집행부가 올해 초 파업을 시작하고 170일을 싸울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즐겁게 싸운 덕분이라 생각한다. 삭발이나 단식, 점거 농성을 했다면 체력이 떨어져 절대 6개월씩 파업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단식을 싫어하는 건 나의 몸은 나의 정신이 깃드는 신전이므로 늘 숭배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 때문이다.

 

나는 드라마 피디로서 체력을 관리하기 위해 술 담배 커피를 하지 않는다. 나의 기분을 다른 무언가의 도움을 통해 더 좋아지게 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기분 정도는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거의 조증으로 살기 때문에 별로 우울한 날이 없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몸은 깍듯하게 모시고 싶다. 건강해야 하고 싶은 일도 다 하니까. 그런 점에서 몸을 축나게 하는 투쟁 방식은 절대 사양이다.

 

그런데, 지난주 방문진 김재철 사장의 해임안이 철회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부족했을까? 그의 악행일까? 우리의 정성일까? 770명의 조합원이 여섯달 가까이 월급 한 푼 안 받고 싸웠는데 아직도 정성이 부족한걸까? 이제까지 드러난 김재철의 비리에다 심지어 정수장학회 지분까지 팔아넘기려는 시도까지 발각되었는데, 아직도 해임안을 상정하기에는 부족한 걸까? 지난주 목요일의 결정을 보고 부위원장단이 모여 단식을 결의했다. MBC 노조에는 부문별로 5명의 부위원장이 있다. 한 달 전에 다른 4명이서 단식 농성에 들어가자고 입을 모았지만 당시 내가 결사반대해서 결국 단식은 들어가지 않았다. 웃으면서 춤추면서 노래하면서 싸워야지, 자해 투쟁은 안된다고 말렸다. 결국 나 한 사람의 반대로 단식이 무산되었는데, 두고 두고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은 건가?

 

그래서 지난주 목요일 해임안 철회가 발표되자 이번엔 단식 농성에 더 이상 반대할 수 없었다. 결국 마지못해 단식에 참가하게 되었다. 어제 아침에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단식 농성 하시는 거 반대합니다. 저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겁니다. 지켜보는 MBC 조합원들의 마음만 더 아프게 할 텐데 왜 굳이 하시나요. 이제라도 마음을 돌려주십시오.' 나 역시 마음은 편치 않다. 우리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가장 괴롭히는 투쟁 방식이 될 것이니까...

 

아무리 가기 싫은 길이라도 어차피 가야 한다면 즐겨야 한다고 믿는다. 파업을 시작하고 늘 프로그램 제안을 했다가 까였던 아이디어가 있다. 'MBC 앞에서 간디 복장을 하고 물레를 돌리며 김재철 퇴진을 외치겠다.' 어제 삭발을 해서 머리는 준비가 되었다. 이제 단식으로 몸을 만들 차례다. 나의 외모 특성상 간디와 싱크로율이 꽤 높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별명이 간디였으니까. 간지 작살 퍼포먼스를 위해, 기꺼이 굶겠다. 시한부 인생 역할을 위해 살을 빼는 배우도 있는데, 간디라는 위대한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빼는 살이라면야. 내 인생의 영광이라 생각하고 단식을 즐길 생각이다. 

 

단식 들어간다고 아내에게 말했더니 그러더라. "어설프게 아침 햇살 같은거 몰래 먹다가 딱 걸리지 말고 똑바로 해. 당신이 새누리 애들처럼 쇼할거는 아니잖아." 정말이지 나는 우리 마님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즐길 것이다. 단식과 철야농성을 즐길 수 있다면, 세상에서 두려울 게 무엇이랴.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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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은미 2012.10.30 1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삭발하시는 거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싸우시는 모습에 MBC도 웃으면서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습니다.. MBC를 사랑하는 시청자중 한사람이 격하게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파이팅하세요^^

  2. ILDONG 2012.10.30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식하시다가 몸 건강해치시지마세요~ ㅠ

  3. 페르시안우기 2012.10.30 1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삭발한 모습이 그 누구보다 잘 어울려서 마음이 놓입니다. 단식투쟁도 잘 해내실 거라 믿습니다. 늘 지켜보고 성원하고 있습니다. 승리하는 그 날까지, 파이팅!

  4. Jane 2012.10.30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엊그저께 피디님 삭발사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거기다가 단식까지...정말 존경스럽다고 밖에 말씀못드리겠네요. 제발 체력안배하시고 꼭 꼭 재처리쓰레기 몰아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봉춘홧팅!

  5. 채집자 2012.10.30 2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원래도 연예인 돋는 작은 얼굴이라 부러워했었는데요, 삭발 하시니 장점 제대로 부각되십니다! 간지작살 퍼포먼스로 김재철 꼭 무찌르시길! 삭발에 단식까지... 이렇게까지 상황을 몰아가는 것에 정말 분노를 느낍니다. 힘내십시오! 건강 너무 상하시지 않기를 기도하겠습니다.

  6. mini 2012.10.31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뜻이 모이면 이뤄질 것이라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믿습니다...
    사진을 보니 눈물이 나지만 피디님은 즐기실 것이기에 응원보냅니다...
    피디님 아자아자!!! MBC 아자아자!!!

  7. Tiret 2012.10.31 1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응원합니다!

  8. 봄봄 2012.11.02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이렇게까지 해야만 할까요. 의로운 다수가 힘있는 소수를 이기지 못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겠습니다. 그것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엔 동참하겠습니다.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