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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악몽같은 막장 연속극, 끝은 도대체 언제 날까?

by 김민식pd 2012. 10. 15.

지난 1년이 너무 길다. 끝나지 않는 막장 연속극 한 편을 보는 것 같다. "제발 이제 그만 종영해!" 채널을 다른데로 틀어버리고 싶지만 그러기엔 여주인공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문화'라는 여주인공이 있다. 참 단아하면서도 할 말 다 하는 성품 바른 아가씨였는데, 어느날 그 집에 '재철'이라는 새 아버지가 온 후로, '문화'의 삶은 막장이 된다. 벙어리에 귀머거리에 아이를 반병신을 만든 양아버지는 끝내 재벌집 반푼이 막내에게 강제로 시집보내겠다고 발표한다. 동네에서 성품 올곧기로 유명한 '공영'이라는 총각과 '문화'는 오래전부터 굳게 사랑해온 사이인데 막무가네로 '민영'이라는 재벌집 반푼이에게 시집보내야겠다고 난리다. 도대체 이 막장의 끝은 어디일까?

 

아침에 경향신문을 읽다 김상조 교수님이 쓴 '망가진 세 개의 조직'이라는 경제시평을 읽었다. 안식년을 마치고 귀국한 교수님의 눈에는 지난 1년 사이 심하게 망가진 조직이 세 개가 보였단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소중한 세 개의 조직이 크게 망가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 (KDI), 문화방송 (MBC), 공정위 이야기다. 

[중략]

 

내가 이 세 조직이 망가졌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다. 구성원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떨어진 것이다. 이 세 조직은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KDI), 그 진행 과정을 감시하며 (MBC), 규칙을 깬 자들을 처벌하는 (공정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구성원들의 인적 역량이 조직의 성과를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다. 그런데 구성원들이 충성심을 잃어버리면 어찌되겠는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기관장의 책임이 크다. 기관장이 자신의 임명권자에게만 충성하면, 그 밑의 구성원들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잃는다. 동서고금의 진리다. 조직이 흔들리면, 유능한 구성원부터 떠난다. 그러면 그 조직은 끝이다. 

 

기관장과 임명권자는 임기 마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그들이 남긴 상처를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대체불가능한 조직일수록 더욱 그렇다. 안타깝다.'

 

 

 

위의 글을 읽으며 찢어지도록 가슴이 아팠다. 막장연속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문화'의 운명도 가슴아프고, 무엇보다 도대체 끝을 모르는 김재철의 악행을 지켜보는 것도 인내심의 한계에 달했다. 

 

막장이 싫으면 시청자는 채널을 돌리면 된다. 하지만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삼돌이는 어쩌란 말이냐? 나처럼 다른 방송사에는 원서 한 장 넣어본 적 없이 오매불망 MBC만 짝사랑해온 사람은 어쩌라고? '문화'를 재벌에게 강제로 시집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오늘부터 다시 시작한다. 오늘은 천막 농성을 시작하고, 내일은 '서늘한 간담회' 장물아비 김재철 특집을 녹음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테다.

 

막장을 이기는 건 순정이라 생각한다.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 한 편 보여드리겠다. MBC 구성원들의 조직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처절하고 굳센지 보여드리겠다. 막장에서 악당의 패악질이 심해진다는 건 최후가 멀지않았다는 뜻이다.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도 힘 보태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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