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 우파의 노조 위장취업기

1. 딴다라, 유치장 가다

 

2012년 6월 7일, MBC 노조집행부는 업무방해혐의로 두번째 구속영장을 받고 다시 유치장으로 향했다. 2주전 영장기각되고 나올 때만 해도, 만세를 외치며 두번다시 콩밥 먹을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집요한 검찰 덕에 다시 유치장 신세를 지게되었다.

 

평소에 말장난을 좋아하는 나에게 아내가 "오빠는 왜 그렇게 유치해?" 라고 할 때마다,

"나는 유치해서 유치원 밖에 못 나왔고, 유치해서 유치장 갔다. 왜?" 하고 놀렸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유치한 대한민국 검사들 탓에 유치장에 오게 되다니... 아니, 딱 보면 불법 폭력 파업을 막기 위해 노조에 위장취업한 보수파인줄 모르나? 나같은 딴따라까지 구속영장을 날리다니. 역시 이런게 비밀공작원의 고충인가?

 

구속영장이 나왔을 때, 딴따라로서 가장 큰 고민은 복장이었다. 구속되면 유치장에 수감된 상태로 너댓달 동안 지내야한다. 불편한 유치장 생활, 옷이라도 편하게 입어야 하는데? 내가 평소 가장 선호하는 작업복은 등산복이다. 특히 겨울에 밤샘 촬영할 때는 누비솜이 들어간 등산바지가 최고다. 미니시리즈를 촬영할 때는 집에 가서 자는 날이 드물다. 편집실 소파나 버스 안이나 아무데서 누워잔다. 이때 최고의 의상이 바로 누비솜바지다. 어디서나 누우면 바로 이불 겸 잠옷이 된다. 배낭 속에는 항상 갈아입을 속옷을 채워놓고 다닌다. 빨래감으로 불룩한 배낭은 바닥에서 잘 때 최고의 베개가 된다. 그렇게 며칠 집에 들어가지 못해 수염이 거뭇거뭇 난 상태로 누비 솜바지차림에 배낭을 메고 전철을 타면 사람들이 막 피한다. '씻지를 못해서 냄새가 나나?'

 

여름철 촬영에도 등산복이 최고다. 통기성이 뛰어나 땀이 잘 마르기 때문이다. 장마철에는 비를 맞으며 촬영을 하기도 하는데, 등산복만큼 방수가 잘되고, 일단 젖어도 빨리 마르는 소재도 없다. 마바지도 시원하긴 한데, 길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일하다보면 가끔 가랭이 사이가 튿어져 볼썽 사납다. 팬티가 보이는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뛰다보면 팀 코디가 와서 슬그머니 셔츠를 치마처럼 허리에 둘러주고 간다. 

 

딴따라란 다른 사람들에 비치는 모습에 연연하기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다. 남들이 뭐라해도 자신이 좋으면 그냥 하는 게 딴따라의 기본 습성이다. 누가 쳐다보면 오히려 그 시선을 즐기는 게 딴따라니까.

 

외양보다는 기능성을 중시하는 나는 '편한 등산복 차림으로 법정 출두해야지' 했는데, 사람들이 다들 기겁을 한다.

"무슨 소리야! 법원에 갈 때는 무조건 양복을 입어야지! 판사님에게 잘 보여야 할 거 아냐."

"영장심사는 기껏해야 한 두시간이고 나머지는 다 유치장에서 보내야하는데, 편한 옷이 낫지 않아?"

"판사나 검사는 아주 권위적인 사람들이라 복장이 불량하면 싫어하거든?"

"죄가 있나 없나를 봐야지, 옷을 뭘 입었나가 무슨 상관이야?"

"법정에서는 불손한 것도 죄야. 괜히 너 땜에 공손한 우리까지 구속될라."

그런가? 할 수 없군.

 

어쩌나? 난 양복이 거의 없는데. 장례식 문상도 청바지 입고 가는 딴따라인데 어쩌라고. 겨울 양복이 한벌 있긴 한데, 바지가 작아 허리 단추도 안 잠궈진다. 결혼식때 입었던 옷인데, 10년전 바지가 맞을 턱이 있나? 난감하다.

 

(구속영장 심사를 위해 법원 출두하는 모습이다. 신문에 난 사진을 보고 무한도전의 김태호 피디가 멘션을 보내왔다.)

"형, 옷 좀 잘 입으시지 그러셨서요. 우리같은 남방계는 옷이라도 잘 입어줘야 하는데."

 

유치장으로 향하며 며칠 전에 본 영화 '부러진 화살'이 떠올랐다. 감방 안에서 괜히 험한 꼴 보는 거 아닌가? 다행히 노조 집행부 다섯명은 독방 하나를 따로 배정받았다. 사상이 불온한 정치범들과 일반 수감자를 합치할 경우,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 탓일까? 경찰의 배려 덕에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2주만에 다시 온 유치장이라 다들 여유로운 모습으로 지냈다. 소지품도 자발적으로 제출하고, 허리띠와 넥타이도 알아서 풀고. 강지웅 사무처장은 그 와중에 유치장 책꼭이에서 지난번에 읽다 만 책을 찾아 집어들었다. "오늘 마저 읽고 나가야지." 나는 준비해온 책이 있어 그걸 갖고 유치장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읽던 책 중에 가장 재밌고 가장 두꺼운 책을 골라 왔다. 만에 하나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몇 달간 감방 신세를 져야할텐데 재미난 책 한 권 없이 어떻게 버틸소냐! 

 

저녁 9시가 되자, 위원장은 복도에 있는 하나뿐인 TV에 KBS 뉴스를 틀어달라고 요청했다. '옆방 형님들이 드라마 보고 계시는데, 감히 채널을 딴데로 틀어도 되나?' 살짝 겁이 났지만, 역시 위원장은 담력이 세다. 가장 늦게 들어온 신참이면서도 당당하게 채널 변경을 요구한다. 역시 노조 위원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냐.

 

사람 좋아보이는 경찰 공무원이 농을 건넸다. "MBC 기자님들이 MBC 뉴스 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용마 기자가 거든다. "저희는 요새 MBC 뉴스 안봅니다." 위원장은 창살 사이로 KBS 뉴스를 열심히 시청했다. 날씨와 스포츠 뉴스가 시작되자 시선을 거두고는, "MBC 파업 얘기는 한마디도 안 나오네." 하는데,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생각해보니, 법원 출두할 때 KBS 카메라가 왔는데, 아마 MBC 파업 소식은 아이템에서 잘렸나 보다. 위원장도 자신의 방송 출연 분량은 챙기는구나. 화면빨 잘 받나 보려고. ㅋㅋ

 

사실 KBS뉴스에 안 나온게 나한테는 땡큐다. 아침에 나오면서 연로하신 아버지께는 저녁에 회식있어 늦는다고 말씀드렸는데, 뉴스에서 보면 기겁하실 테니까. 경상도 보수우파의 표상이신 아버지는 아직도 내가 노조간부가 된 걸 모르신다.

 

밤11시가 되니 유치장 안이 슬슬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1차 영장 심사 결과는 저녁 9시에 나왔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 보니 오늘은 한 두명 남아야하는 거 아냐?"

"그러게? 남으면 누가 남게 될까?"

 

'뭐야, 노조에 잠입해서 불법 폭력 파업을 막은 죄로 나, 구속되는 거야?'

 

우리 나라 검찰이 그 정도로 수준이 낮았던가? 아, 아니다. 어쩌면 검찰은 오랜 수사 끝에 나의 정체를 파악했는지 모른다. '김민식 편제부위원장 말이야. 노조 간부인데 하는 짓은 너무 어설프지않아? 꼭 노조에 위장취업한 극우 보수같잖아?'

 

혹시 검찰은 나의 정체를 뚫어보고, 일부러 나까지 엮어서 구속영장을 친 게 아닐까? 조합원들과 다른 집행부의 신임을 얻게 해주려고? 만약 그렇다면 대한민국 검찰, 너무 친절한 거 아닌가?

 

나의 위장 취업을 도와주기 위해 친절히 구속영장을 두번씩이나 청구한 검사님들의 대민봉사 정신을 생각하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특히 나의 죄목을 나열하며, 구속을 촉구한 미모의 여검사님을 생각하면...

 

딴따라 우파의 구속 위기, 2장, 딴따라와 여검사 편에 계속됩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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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비오 2012.10.02 0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 보니 새록새록 합니다. ^^

    10월 한달, 김피디님에게도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원해 봅니다.

  2. 2012.10.02 1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페가수스 2012.10.02 1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MBC김재철에 맞서는 브레인 김PD님 다 좋은데
    무슨 말씀하실때마다 우리 마누라가 그러는데.. 우리 아내가 그러는데.. 이거 좀...

  4. kmk 2012.10.04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개수배 Naver ckmk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