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MBC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한 편 싣습니다. 네, 자유게시판은 모 아나운서만 쓰는 곳이 아니라 모든 MBC 직원에게 열린 공간이죠. ^^ MBC 라디오국 한재희 피디의 글입니다.

 

배웁시다. 사장님의 경영술을

 

주제넘게 간추려 본 사장님의 경영비법.
 
하나. 감이 최고다.
사장님은 데이터와 보고서에 의존하지 않으십니다.
오로지 사장님의 범접할 수 없는 '감'으로 어마어마한 일들을 처리하십니다.
그리하여 몇년간 범부들이 입씨름만 하던 뉴스데스크 이동 같은 천지개벽 개편을 말씀 하나로 전광석화 실천하십니다.
마침 감이 무르익을대로 무르익는 계절입니다.
아, 익다 못해 이제 다 떨어져 버리는 11월이 되었군요.
 
둘. 박힌 돌은 빼야 한다.
사장님은 한 곳에 푹 박혀 한 우물만 판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한 부서, 한 부문, 아니 여의도 사옥 자체에 박힌 돌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사장님은 끊임없이 박힌 돌을 빼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돌을 박습니다.
지역에서 종종 손수 골라 오시고, 공모도 하시고, 계약직으로 시용직으로, 끊임없이 새로 골라 넣으십니다.
사장님이 구슬땀 흘려 뽑아 내어 버린 박힌 돌들은 보통
여의도로 을지로로 신천으로 경기도 일대로 흩어져 '구르는 돌'로 운명이 바뀝니다.
혹시, 나름 MBC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갈고 닦아 왔다고 자부하시나요?
그렇다면 그대는 곧 사장님의 손길로 뽑혀 나갈 운명이십니다.
 
셋. 흔들라. 흔들어야 한다.
사장님은 차분함, 편안함, 안정감, 이런 단어를 경멸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태해 질 타이밍이 되면 어김없이 벼락같은 조직개편을 하십니다.
그리하여 이전의 무사안일주의 사장들이 행했던 조직개편의 너댓배를 이미 거뜬히 해치우셨습니다.
혹시 명함을 새로 만드셨나요?
사무실 자리를 정성껏 꾸미셨나요?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명함과 자리는 머지 않아 바뀝니다.
 
넷. 현지지도가 최고.
지구상에서도 소수의 지도자들만이 행한다는 어마어마한 신공. 현지지도.
사장님은 현지지도를 선호하십니다.
동으로 서로 남으로 유럽으로 일본으로 베트남으로 미주로.
사장님은 현지에 직접 나가셔서 악수하시고 특유의 손가락을 뻗은 제스쳐로 사진 찍기를 즐기십니다.
사장님은 또한 구태의연한 방식을 거부하시고
종종 한두명의 보좌진만 데리고 전격적으로 현지에 가시기를 선호하십니다.
아무도 모르게.
 
다섯. 우두머리는 신비로워야 한다.
사장님은 동선을 알리지 않습니다.
사장님은 구상을 미리 밝히지 않습니다.
사장님은 아래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사장님이 어디서 무얼하는지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사장님이 무슨 구상을 하고 있는지 묻지 마십시오.
사장님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드러나지 않다가
사장님은 벼락같이 움직이고 추상같이 명하십니다.
... 떨고 계신가요?
떨지 마십시오.
사장님은 홀연히 나타나셔서 가끔씩 고귀한 말씀을 자상하게 나누어 주시기도 합니다.
얼마전에도 지난주 조간신문을 가득 채웠던 노키아의 추락과 소프트뱅크의 지혜를 손수 다시 끄집어 내 나누어 주셔서
온 간부진을 감동시키지 않으셨습니까?
 
여섯. 당근과 채찍.
아, 이것은 너무나 식상한 리더쉽의 고전 아니겠습니까..만은 이를 사장님처럼 변화무쌍 구사하시는 분이 계실까요?
지금 보직에 계신가요?
보직은 아니어도 사장님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마음속으로 느끼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사장님은 언제 어디서 또 당신의 마음을 감동시킬 선물을 또 주실지 모릅니다.
당신이 미리 상상하는 이상의 범위로 그 이상의 타이밍으로 당신을 감동시키실 겁니다.
해외에 나가게 되실지 모르니 여권은 준비해 두세요.
뜻밖의 보너스나 상이 내려질지도 모릅니다.
언제 어디서 안락한 잠자리와 맛있는 식사가 제공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장님의 신상필벌 신공의 진짜 매력은 반전에 있습니다.
사장님은 언제 갑자기 당신을 내치실지 모릅니다.
당신이 앉은 자리에서 차마 뒷모습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머나먼 곳으로,
갑자기 떠나 버리실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장님의 은총을 받고 싶어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장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을까요.
사장님의 카리스마는 신상필벌 신공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기꺼이 그 카리스마의 포로가 된 분들이 지금 2012년 MBC를 힘차게 일구어 나가고 계시지요.
 
우리는 이 시점에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있는 일인지.
사장님은 제작부터 경영에 글로벌까지 전반에 능통하신 분일진데
사장님의 판단과 사장님의 비젼과 사장님의 명이면 될 일을,
나는 쓸데없이 자리에 앉아 회사기기 수명을 갉아먹으며 의미없는 기획안이나 작성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하여
나는 언제라도 사장님이 데려오는 새로운 피로 대체될 수 있는 가처분 인력은 아닌지.
 
개인적 소견으로
사장님이 이와 같은 unpredictable 카리스마 경영법을 완성하신 시점은, 대략 1년전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사장님의 번득이는 경영술은 이미 부임하자마자 선보이긴 했으나
초기에는 기존 MBC 사장들의 경영법과 절충을 한 미완성의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특히 2012년 들어, 사장님은 자신이 완성한 경영법을 시종일관 '닥공' 식으로 휘두르고 계십니다.
 
아,
사장님은 언제나 반전의 여지를 남겨 주십니다.
사장님의 경영 신공이 휘황찬란하게 펼쳐진 2012년
MBC는 공인된 시청률 꼴찌, 매출 꼴찌, 신뢰도 꼴찌를 기록중입니다.
어쩌면
이 마저도 사장님의 고도의 계산된 경영술일지 모릅니다.
MBC가 이렇게 꼴찌 방송이 될 줄 예전에 상상하신 적 있었나요?
사장님은 언제나 상상 이상을 구현하십니다.
 
........
 
11월입니다.
박힌 돌들도 구르는 돌들도, 웃음을 찾는 새 달이 되길.
두 눈 감고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MBC의 주인은 국민입니다'를 외치며 파업에 참가한 아나운서와 기자들은 지금 현재 '신천교육대'라 불리는 MBC 아카데미에서 교육발령 중입니다. 그들이 하루 빨리 일터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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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oond 2012.11.12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굳이 MBC 사장님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닌것 같아요. 저희 회사 사장님과 너무 비슷하셔서 깜짝놀랐네요ㅋㅋ 비록.. 대선 전에 스스로 물러나셨다는 큰 차이점이 있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