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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역량이란 머리 속 지식보다 몸에 밴 태도

by 김민식pd 2012. 10. 12.

나는 강연 매니아다. 예전에는 게임 매니아였는데, 요즘은 강연을 즐긴다. 짬만 나면 무료 강연을 쫓아다니는데, 공짜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을 찾아듣는 것 만큼 남는 장사가 없다. 어제는 '숨도 아카데미'에서 '손의 귀환' 오리엔테이션 강의를 들었다.

 

고전 연구가 고미숙 선생이 몸과 마음의 상관관계를 인문학적으로 풀어주셨는데, 맨 앞 줄에 앉아, 하시는 말씀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완전 몰입모드로 들었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어야 한다. 마음이 가는 곳에 몸도 따라 가야한다. 그러나 기계 산업의 발달로 마음은 바쁘나 몸은 쓰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머리속에 든 지식은 늘어가는데 몸을 써서 할 수 있는 일은 갈수록 줄어든다. 몸과 마음의 교집합 만큼이 존재감이다.'

 

강의를 들으며 내가 요즘 블로그에서 연재중인 '미래형 인재가 되는 법'이 떠올랐다. 

 

1. 2012/10/09 - [공짜 PD 스쿨] - 과거의 성공이 불러온 교육 시스템의 실패

 

2. 2012/10/10 - [공짜 PD 스쿨] - 창의성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

첫번째 시간에는 미래형 인재가 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알아보았고, 두번째 시간에는 미래형 인재의 덕목 중 창의성에 대해 말했으니, 오늘은 세번째 시간으로 역량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1편에서 말한 이범 선생의 강연을 들으며, 미래형 인재에게 필요한 세가지 덕목, 창의성, 역량, 협동 정신을 놓고 고민했을 때,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역량이었다. 창의성과 협업의 필요성은 알겠는데, 역량이란 말은 무엇일까?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다. 어떤 개념을 모를 때는 먼저 사전을 뒤져본다. 그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하니까. 역량을 영어로 번역하면 competence란다. 구글에 competence를 치니 아래 이미지가 나왔다.

 

 

 

그림의 설명에 따르면, 역량이란 지식과 기술과 태도의 교집합이다. 이범 선생의 강의에서 지식보다 역량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 들었는데, 그림을 보니 이해가 된다. 역량이란 지식에 기술과 태도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능력을 뜻하는 것이구나. 

 

나는 서른살에 MBC 피디 공채를 봤는데, 당시 외대 통역대학원 4학기 재학중이라 졸업시험 준비 중이었다. 통역대학원은 입학도 어렵지만 졸업은 더더욱 만만치 않다. 그래서 피디 시험을 따로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그냥 입사지원서를 내고 2주 동안 매일 저녁 2시간 씩 언론사 기출 문제집 국어와 상식을 한 권씩 풀어본게 내가 한 시험 준비의 전부였다. 나는 방송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로 시험을 본 것이다. 통역대학원 6층 시청각실에 앉아 CNN 뉴스를 청취하다 전화로 최종합격 소식을 들었다. 얼떨떨했다. 나는 방송 연출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데 어떡하지?

 

어떤 일을 할 때, 지식과 기술이 없다고 쉽사리 포기할 이유가 없다. 지식과 기술은 입사하고 조연출이나 수습 기간 동안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삶을 대하는 태도는 회사에서 가르친다고 길러지는 게 아니다. 10년이 지나서 난 그걸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면접 심사를 가면, 지원자의 머리 속 지식보다 몸에 밴 태도를 본다.  

 

몇년 전, 언론사 입사 지망생들 가운데 악명 높았던 MBC 논술 문제가 하나 있다. 

"'강남역 2번 출구를 나왔다.'로 시작하는 글을 한 편 쓰시오."

뭐지 이건? 

 

나같은 시골 출신은 강남역 2번 출구에 대해 전혀 모르는데? 강남역 2번 출구에 한번도 안 가본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이런 문제를 낸 거지?

 

면접에 가면 전혀 맥락도 없고 얼토당토않는 질문을 던지는 심사위원이 있다. 

"서울 시내 치과 병원이 몇개 있습니까?"

어쩌라고?

 

이같은 논술문제나 면접 질문을 받아들고 자신이 모르는 문제라 하여 좌절할 필요는 없다. 심사위원도 당신이 그걸 알거라 기대하고 내는 문제가 아니니까. 중요한 건 모르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에 대응하는 태도다.

 

연출은 매일 매일 촬영 현장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상황에 마주치는 사람이다.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 게 방송 현장이다. 무대 위에서 춤추던 밴드 멤버가 갑자기 바지를 내릴 수도 있고, 드라마를 찍던 여주인공이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고, 수십년만의 폭설로 교통이 마비되어 오도 가도 못할 수도 있다. 그같은 난관에 봉착하면 과거의 지식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미래형 인재란 결국 그누구도 예상 못한 상황에 처했을 때, 돌파해 나갈 자세를 지닌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닐까? 앞으로 다가올 30년은 우리가 과거에 전혀 상상해보지 않았던 세상의 변화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지식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시대. 머리속에 든 것이 아무리 많아도 새롭게 생겨나는 지식이 너무 많아 따라잡을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결국 미래 사회에서, 지식이란 머리 속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와 인터넷을 보조 기억 장치로 활용하여 언제든 검색으로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머리속에 든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몸에 밴 태도다. 

 

그렇다면 역량을 기르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 함께 고민해보기로 하자. 일단 다음 이시간에는 협업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추신:

'강남역 2번 출구'에 한번도 가지 않은 사람이 여기에 대해 글을 쓰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사실 문제를 보고 좌절해서 시험을 망칠 이유는 없다. 그냥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쓰면 된다. 주위 경관과 상관없이 2번 출구를 나와 만난 사람에 대해 쓰면 된다. 장소에 대해 알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남극을 찍고, 가볼 수가 없는 과거를 그림에 담는 게 연출의 일인데. 오히려 강남역 2번 출구에 자주 가 본 사람이 이 시험은 망칠 가능성이 더 크다. 자신이 아는 강남역 2번 출구에 대한 장소 묘사를 늘어놓느라 아까운 논술 시간과 지면을 허비할 공산이 크니까. 이건 강남구청 관광 가이드를 뽑는 시험이 아니라, 이야기꾼을 뽑는 시험인데 말이다.

 

서울 시내 치과의 수 문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풀 수 있다. 서울시 인구 = A, 일년에 평균 치과에 가는 횟수 = B, 치과에 하루에 오는 사람 =C... 이렇게 막 따져보는 거다. 다른 방법도 가능하다. 매년 전국에서 한 해 졸업하는 치과 의사의 수. 병원 내 치과 의사의 수. 서울 대 지방의 경제 규모 비율... 풀어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정답보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각오하고 시도해보는 태도가 아닐까.

 

미래형 인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니 답은 없을까? 답이 없다고 마냥 포기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매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씩 고민하며 글을 쓴다. 답을 모르겠으면 알 것 같은 사람을 찾아 강연을 다니고, 책을 읽는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정답은 없다. 답을 찾아 헤매는 태도가 있을 뿐이다. 

 

매일 아침 블로그에 글을 쓰니까 새벽에 눈이 절로 떠진다. '오늘은 무슨 글을 써야 할까?' 

몸으로 하는 공부란 이런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몸을 길들이는 것. 

 

"회사를 가야하는데, 몸이 아프다면, 어쩌면 그곳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몸을 이끄는 것, 그것이 공부다."

어제 강연을 듣고 가장 마음에 남은 말씀이다. 

어디에 있든 몸과 마음이 늘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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