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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글을 쓰는 것은 나를 깨뜨리는 작업

by 김민식pd 2012. 8. 22.

어제 블로그에 '첫 직장을 성공적으로 그만 두는 법'에 대해 글을 올렸다. 내 평생 가장 통쾌했던 순간이 회사에 사표를 던졌을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괴롭게 일하는 것보다 즐겁게 백수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감히 사장더러 나가라고 반년 넘게 블로그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떠들어 대는 것도 김재철이라는 수준 이하의 사장 아래에서 괴롭게 일을 하는 것 보다는 구속이든 해고든 두려워하지 않고 즐겁게 짖어대는 게 낫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결국 '공짜로 즐기는 세상'은 나 스스로를 옭아매는 삶의 명제다. 

 

그랬는데... 어제 트위터로 어떤 분이, '피디님의 글을 평소에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라는 오늘의 충고는 선뜻 따르기 어렵네요. 졸업하자마자 학자금 대출부터 갚아야하는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충고네요.' 라고 글을 보내왔다. 글을 읽는 순간, 확 낯이 뜨겁고 부끄러워졌다. 그렇구나... 꼬박 꼬박 학자금 대출 빚을 갚아야 하는 요즘 20대를 배려하지 못한 충고였구나.

 

한동안 블로그에 글을 쓰지 못했다. 물론 방학을 맞아 한국에 온 딸들과 노느라 정신없었던 탓도 있지만, 또다른 이유는 글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책으로 내느라 원고를 다듬었는데, 그러면서 느꼈다. 나의 글은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경험에서 바탕으로 한 개인적 의견일 뿐이라고. 글을 쓰며 생각의 틀을 세운다고 느꼈는데, 뒤돌아보니 개인의 경험을 정답인양 떠벌린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었다.

 

여행을 즐기라고 하지만, 여행을 즐길 여유가 없는 사람도 있고, 연애를 하라고 하지만, 연애를 할 상대가 없는 사람도 있고, 독서를 하라고 권하지만, 책읽을 시간적 여유도 없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다른 이의 입장을 고려하지도 배려하지도 못하면서 무슨 참견이고 무슨 훈계란 말인가. 블로그를 통해 나의 생각을 견고하게 만들어왔다면, 책을 쓰다 그런 내 글의 무책임, 무관심, 무신경함이 다 드러나 멘탈이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다. 부끄러운 마음과 죄책감에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딴따라로 자신의 쾌락에 충실하게 살아온 삶에 반성하는 의미로 노조 집행부 일을 맡았는데, 지난 반년 치열했던 싸움의 과정을 돌아보니 오히려 그 과정에서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많지 않았나, 다시 반성하게 된다. 아내의 친구가 '형부를 좋아했는데, 이번에 노조 간부하면서 언니 마음 고생 시킨거 생각하면 형부가 밉다.'라고 했다기에 순간 부끄러웠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느라 정작 내 주위 사람들을 걱정시켰구나. 누군가 '천하무적'이 되는 것은 천하에 당할 자가 없는 제일의 싸움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적을 만들지 않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했는데 지난 반년 난 너무 많은 적을 만들어왔다.

 

부끄러운 고해성사로 죄갚음이 다 된다고 믿지는 않는다. 항상 글을 쓰면서 내 속의 것을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라 느꼈는데, 앞으로 책을 쓰는 과정은 어쩌면 내 속의 단단한 것을 깨뜨리는 과정이 될 것 같다. 휴우... 나이 마흔 다섯에 무엇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나를 허무는 일인데 말이다... 그래, 그러고보면 나이 예순이 넘어 자신의 생각의 틀을 깨지 못하는 것도 이해못할 바는 아닌데.......

그래도 암만 생각해도, 김재철 사장님은 참 나쁘다. 그리고 그런 나쁜 사람을 옹호하는 사람은 더 나쁘다... 에잇, 뭐야, 결국 도로묵이잖아!

 

에구, 에구... 역시 난 철들기는 글렀군...

 

 

제발 좀 나가주세요. 당신 한 사람의 자리보전 놀음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있어요.  

제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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