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짜로 즐기는 세상

웃음을 연마하는 사람

by 김민식pd 2012. 8. 8.

팟캐스트 '나는 딴따라다'에 출연했는데, 방송을 듣고 트위터로 '친근한 웃음소리, 반가웠습니다.'라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오래전부터 웃음을 연마해 온 사람으로 다른 이들이 나의 웃음소리를 기억해준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던 대학생 시절,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까? 외모는 타고 난 것이니 바꿀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얼굴은 못 바꿔도 표정이나 인상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웃음소리는 타고나기보다 터득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좋아하는 형이 있었는데, 웃음소리가 정말 우렁차고 시원시원했다. 같이 있다가 그 웃음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그 형의 웃음소리를 닮고 싶었다.

 

웃음 연마의 시작은 자주 웃는 것이었다. 자꾸 웃어야 웃음도 늘었다. 웃을 일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나의 일상과 주위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기로 했다. 어린 아이를 보면 정말 자주 웃는다. 별로 웃을 일이 아닌데도 웃는다. 그래서 난 동심을 유지하는 것, 특히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이 웃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스쳐지나가는 일상을 데면데면 흘려보내기보다 귀를 쫑긋, 눈을 반짝, 촘촘이 들여다보면 재미난 걸 포착할 수 있다.

 

때론 별로 재미가 없어도 막 웃다보면 재미있어지기도 한다. 가끔 이게 억지 웃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억지로 웃기 시작하는 게 무표정하게 가만 있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일단 웃고 본다. 웃을  때는 크게 웃고, 온 몸으로 웃고, 얼굴의 모든 근육을 다 쓰며 웃는다. 내숭 떤다고 웃음을 죽이면 한쪽 입술 끝만 살짝 올라가는 조소가 되기 쉽고 무엇보다 그런 웃음이 버릇이 되면 표정 자체가 냉소적으로 변한다. 푼수같아 보이고 실없어 보여도 일단 크게 웃고 볼 일이다.

 

웃음을 연마한 덕에 나는 먹고 산다. 청춘 시트콤 논스톱 시리즈를 2년 반 연출했는데, 신인 연기자가 많이 나왔다. 그들이 연기할 때 나는 크게 박장대소한다. 그럼 신인도 기운이 나서 더 열심히 연기한다. 대본이 웃겨서 처음 웃고, 연출이 웃으니까 배우가 신이 나서 애드립을 치고, 그럼 그 애드립을 보고 난 또 웃는다. 이건 웃음의 선순환이다. 코미디 피디에게 웃음은 연출의 중요한 수단이다.

 

팟캐스트 '서늘한 간담회'를 녹음할 때, 나는 큰 웃음으로 함께 녹음하는 출연자들에게 추임새를 넣는다. 실은 나는 '서늘한 간담회'를 녹음할 때, 많이 무섭다. 경영진도 듣고, 경찰도 듣고, 검찰도 듣는 걸 알기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쫄은 게 티날까봐 더 오바해서 웃는다. "무섭지 않아, ㅆㅂ"라고 하지만, 실은 많이 무섭다. 마흔에 늦둥이 딸을 낳았다. 정년 퇴직때까지 MBC에서 버텨도 그 아이가 대학을 못가는데, 해고를 각오하고 방송을 만들어야하니 얼마나 겁이 나겠는가. 쫄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웃고, 억지 웃음이 티나면 함께 녹음하는 해고 동료들 마음 아플까봐 더 크게 웃는다.

 

웃음을 연마하는 궁극의 목표는, 노인이 되었을때, 좋은 웃음소리를 갖고 싶어서다. 손주의 재롱에 껄껄 기분 좋게 웃어주고 싶다. 무엇보다 얼굴에 한가득 웃음 주름을 만드는 게 소원이다.

 

웃을 일이 별로 없지 않냐는 사람들이 많다. 모쪼록 진짜 기분 좋아서 너털 웃음 지을 수 있는 세상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이 안 오면? 그럴수록, 더 웃어야 할 지 모른다. 웃을 일이 없는 세상에 웃음조차 없다면 너무 삭막할테니까. 

 

 

 

(언제나 내게 큰 웃음주는 우리집 늦둥이~~~^^)

 

나는 딴따라다 7회 듣기,

http://www.podbbang.com/ch/434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