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나는 딴따라다'에 출연했는데, 방송을 듣고 트위터로 '친근한 웃음소리, 반가웠습니다.'라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오래전부터 웃음을 연마해 온 사람으로 다른 이들이 나의 웃음소리를 기억해준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던 대학생 시절,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까? 외모는 타고 난 것이니 바꿀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생각한 것이 얼굴은 못 바꿔도 표정이나 인상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웃음소리는 타고나기보다 터득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좋아하는 형이 있었는데, 웃음소리가 정말 우렁차고 시원시원했다. 같이 있다가 그 웃음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그 형의 웃음소리를 닮고 싶었다.
웃음 연마의 시작은 자주 웃는 것이었다. 자꾸 웃어야 웃음도 늘었다. 웃을 일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나의 일상과 주위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기로 했다. 어린 아이를 보면 정말 자주 웃는다. 별로 웃을 일이 아닌데도 웃는다. 그래서 난 동심을 유지하는 것, 특히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이 웃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스쳐지나가는 일상을 데면데면 흘려보내기보다 귀를 쫑긋, 눈을 반짝, 촘촘이 들여다보면 재미난 걸 포착할 수 있다.
때론 별로 재미가 없어도 막 웃다보면 재미있어지기도 한다. 가끔 이게 억지 웃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억지로 웃기 시작하는 게 무표정하게 가만 있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일단 웃고 본다. 웃을 때는 크게 웃고, 온 몸으로 웃고, 얼굴의 모든 근육을 다 쓰며 웃는다. 내숭 떤다고 웃음을 죽이면 한쪽 입술 끝만 살짝 올라가는 조소가 되기 쉽고 무엇보다 그런 웃음이 버릇이 되면 표정 자체가 냉소적으로 변한다. 푼수같아 보이고 실없어 보여도 일단 크게 웃고 볼 일이다.
웃음을 연마한 덕에 나는 먹고 산다. 청춘 시트콤 논스톱 시리즈를 2년 반 연출했는데, 신인 연기자가 많이 나왔다. 그들이 연기할 때 나는 크게 박장대소한다. 그럼 신인도 기운이 나서 더 열심히 연기한다. 대본이 웃겨서 처음 웃고, 연출이 웃으니까 배우가 신이 나서 애드립을 치고, 그럼 그 애드립을 보고 난 또 웃는다. 이건 웃음의 선순환이다. 코미디 피디에게 웃음은 연출의 중요한 수단이다.
팟캐스트 '서늘한 간담회'를 녹음할 때, 나는 큰 웃음으로 함께 녹음하는 출연자들에게 추임새를 넣는다. 실은 나는 '서늘한 간담회'를 녹음할 때, 많이 무섭다. 경영진도 듣고, 경찰도 듣고, 검찰도 듣는 걸 알기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쫄은 게 티날까봐 더 오바해서 웃는다. "무섭지 않아, ㅆㅂ"라고 하지만, 실은 많이 무섭다. 마흔에 늦둥이 딸을 낳았다. 정년 퇴직때까지 MBC에서 버텨도 그 아이가 대학을 못가는데, 해고를 각오하고 방송을 만들어야하니 얼마나 겁이 나겠는가. 쫄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웃고, 억지 웃음이 티나면 함께 녹음하는 해고 동료들 마음 아플까봐 더 크게 웃는다.
웃음을 연마하는 궁극의 목표는, 노인이 되었을때, 좋은 웃음소리를 갖고 싶어서다. 손주의 재롱에 껄껄 기분 좋게 웃어주고 싶다. 무엇보다 얼굴에 한가득 웃음 주름을 만드는 게 소원이다.
웃을 일이 별로 없지 않냐는 사람들이 많다. 모쪼록 진짜 기분 좋아서 너털 웃음 지을 수 있는 세상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이 안 오면? 그럴수록, 더 웃어야 할 지 모른다. 웃을 일이 없는 세상에 웃음조차 없다면 너무 삭막할테니까.
(언제나 내게 큰 웃음주는 우리집 늦둥이~~~^^)
나는 딴따라다 7회 듣기,
http://www.podbbang.com/ch/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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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나는 딴따라다'에 출연하셔서 너무 반가웠어요. 정말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유쾌.상쾌한 웃음소리를 주셔서 저로써는 너무 감사드립니다. 피디님과 나머지 간땡이 4인방님 덕분에 용기가 없는 저도 용기와 힘을 낼 수 있더라구요. 아, 이런상황에도 이렇게 멋있게, 당당하게 용감하신 분들이 있구나 하구요. 그러니까 끝까지 용기와 힘을 내셔서 공정방송 회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도 물론 끝까지 여러분들을 응원할꺼구요.
답글
감사합니다. 좋은 결과가 있겠지요. 우리도 우리지만 버티는 분도 참 대단하세요. ^^
남을 웃기는것 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습게 느껴지는 것 자체가 주관적인데다가 뻑하면 저질 얘기를 들어야하고 때로는 오바를 해야 우스워하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고상하지 않다고 꼬집고, 좀 고상하게 나가려 하다보면 하나도 우습지 않다고 말하는 관객이 많고,,, 유명한 코메디언들 사석에서 보면 전부 히스테릭하게 성격들이 변하고 분노에 차있는 경우가 많은게 다 남을 웃기는 직업이 스트레스가 많다는걸 의미하겠지요.
나믐 울어도 남은 웃긴다. --- 이주일님이 생각납니다.
답글
서늘한 간담회를 들으며 여러 조합원 가운데 특히 피디님 대화방식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래서 피디님 나온다는 팟케스트는 다 찾아듣게 되었는데요 이런 방식이었어요 우선 다른 사람 이야기를 귀기울여 집중해서 들어요 그리고 궁금하다며 뭔가를 물어봐서 그 사람이 더 이야기하게 만들어요 그리고 좌우당간 피디님이 유쾌하게 웃어요 그리고 자기 의견을 덧붙여요 그리고 다 함께 웃어요 ㅋㅋ 행복해서 웃는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거라고 말한 오떤 사람이 생각나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답글
^^ 부끄럽습니다. 열심히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지만 속으론 겁먹었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
^^ 정말 무서운 환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셨네요
존경스럽습니다.
답글
속으론 많이 쫄았다니까요. ^^
오늘 다산학교에서 강의잘들었어요^^
딸이 정말예쁘게 생겼네요. 부인이 정말 미인이신가봐요(혹시 욕으로듣진 마세요ㅋ)
답글
칭찬이죠. 저의 탁월한 연애 능력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