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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레디, 액션!' 대신 '스탠바이~ 큐'를 외치는 이유

by 김민식pd 2012. 6. 29.

 

얼마전 케이블에서 무한도전 '내조의 여왕' 편을 재방송했나보다. 사람들이 '하이, 큐!' 외치는 내 모습이 반가웠다는 인사를 하는 걸 보니. 나의 큐사인은 다른 드라마 피디와는 좀 다르다. 왜?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듣는데, 소설가와 영화 감독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하더라. 소설가는 자신의 재능으로 먹고 사는 사람, 감독은 남들의 재능으로 먹고 사는 사람. 정확한 지적이다.

 

피디의 재능은 다른 사람의 재능을 끌어내는 것이다.  작가의 글 쓰는 재능, 배우의 연기 재능, 스태프들의 예술적 재능, 이 모든 재능을 끌어내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이끄는가가 좋은 연출이 되고 못되고를 결정한다.

 

나는 지시하는 대신 질문한다. 그게 나의 연출 스타일이다. 가장 쉽게 연출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다.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 된다. 먼저 배우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번 씬 어떻게 연기할까?' 배우는 그 답을 연기 리허설로 보여준다. 그럼 스태프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배우의 저 연기를 어떻게 화면에 담을까?' 스태프들은 그 답을 카메라 리허설로 보여준다. 배우는 동선과 연기톤을 준비하고, 카메라 감독은 그걸 보고 앵글을 만들고, 조명 감독은 앵글을 보고 조명을 세팅하고, 동시 감독은 조명 위치를 보고 그림자가 배우 얼굴에 떨어지지 않는 마이크 위치를 세팅한다. 모든 일은 유기적으로 흘러간다. 피디가 인위적으로 지시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의 큐사인은 다르다. 드라마 감독들은, 다 '레디, 액션!'을 외친다. 나는 '스탠바이, 큐.'다. 물론 내가 예능 피디로 연출을 시작한 이유도 있다. 예능에서는 쇼 녹화에 들어가며 '스탠바이, 큐!'를 외치니까. 하지만 드라마 피디가 되었다고 큐사인을 바꾸지는 않았다. 나의 연출 스타일까지 바뀌는 건 아니니까.

 

'레디~ 액션!'은 명령이다. '준비~ 움직여!'

나는 배우나 스태프가 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탠바이~ 큐!'는 신호다. '대기~ 시작!'

나는 준비가 되었다면 같이 일을 시작하자는 신호를 주는 사람이다.

 

 

 

내조의 여왕 촬영장에서 스태프가 찍어준 사진이다. 7살 난 아역 배우랑 작업할 때도 나는 지시하지 않는다. 항상 먼저 물어본다. '이번 씬 어떻게 할 거야?' 아역배우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오지호 아빠 역할을 할게, 연기해봐.' 그러면서 상대방 대사를 대신 쳐준다. 아이가 준비해온 연기톤을 들어보고 괜찮으면 그대로 진행한다. 보통의 경우, 나는 배우가 준비해 온 대로 촬영을 간다. 리허설만 보고 '이건 아닌데?'라고 하기보다 촬영을 해보고 어색하면 배우와 함께 모니터를 본다. 좋은 배우들은 감독의 지적을 받지않고도 먼저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다.  

 

연출이 일일이 지시하기 시작하면 배우는 흥이 나지 않는다. 또 대본을 받고 집에서 열심히 연습한 톤이랑 내가 지시한 톤이랑 다르면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 엔지가 나기 십상이다. 

 

연출, 참 즐거운 작업이다. 쉽게 연출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다.

모든 답을 알 필요는 없다. 연출은 질문은 던지는 사람이다. 

'이번 씬, 어떻게 할까?'

 

생각해보면 인생도 마찬가지다. 정답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꾸준히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매일의 삶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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