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짜 PD 스쿨

무한도전을 만드는 방법?

by 김민식pd 2012. 7. 2.

 

무한도전을 만드는 방법? 이건 아무래도 김태호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무한도전을 만드는 방법은 모른다. 그러나 무한도전을 만드는 김태호를 만드는 방법은 안다. 그건 조직문화다. 김태호를 만든 건 MBC 조직문화의 공이다.

 

사람들이 모르는 MBC 파업의 원인이 있다. 김재철 사장이 한 일 중, 사원들에게 가장 분노를 산 일은 무어라 생각하시는지?

 

법인카드 과다사용? 무용가 친오빠 특혜 채용? 무용가 출연료 과다집행? 아파트 공동구매? 비자금 계좌 관리? 아니면 3회에 걸친 자기부정?

 

미안하지만 다 틀렸다. 이건 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터져나온 김재철 사장의 비리일 뿐이다. 파업을 시작한 이유는 아니다. 파업 시작전 우리는 아무도 그의 개인 비리는 모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파업을 시작했다. 이유는? 무한도전을 만들어낸 MBC의 조직문화를 김재철 사장이 죽였기 때문이다.

 

김재철 사장과 경영진의 최대 패착 중 하나는 R등급 강제할당 시행이다. 

 

R등급이란? 인사고과제도 평가 등급 중 최하 등급이다. MBC 인사고과제의 특성은 절대평가였다. 김재철 사장은 취임 후 상대평가와 함께 최하등급 강제할당제를 도입했다. 어느 부서든 구성원의 5%는 인사고과에서 최하등급을 줘야했다.

 

조직마다 혼란이 시작되었다. 최하등급은 굳이 주지 않아도 되는 절대평가였는데, 갑자기 상대평가에 강제할당이라니 누구에게 최하등급을 줘야하나? MBC 직원은 누구나 자신이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한다. 내가 건성으로 일하면 그 결과는 수백만 시청자들에게 드러난다. 어떻게 요령을 피울 수 있나?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데 어떻게 최하등급을 주나? 

 

어떤 부서에서는 신입 사원에게 최하등급을 몰아줬다. 고참 연출들 대신 막내 조연출들이 최하등급을 받았다. 낮은 시청률로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 있다면 프로그램을 이끌고 가는 고참 연출이지 절대 신참 조연출이 아니다. 신입 조연출이 일을 못했다면, 일을 잘못 가르친 연출의 탓이지, 절대 본인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도 막내 신입사원에게 최하 평점을 줬다. MBC 입사한 친구들은 평생 학교에서 상위 5%안에 드는 성적을 기록한 친구들인다. 그들에게 입사와 동시에 하위 5%의 낙인을 찍었다. 이유는? 막내니까. 

 

김태호가 무한도전을 맡은건 연출1년차의 일이다. 막내 연출에게 토요일 저녁 메인의 기회를 준 것이다. 나 역시 뉴논스톱이 연출 데뷔작이다. 초짜 연출로서 2년반동안 매일 저녁 일일시트콤을 맡았다. 김재철 치하에선 꿈도 못 꿀 일이다. 막내들에게 도전과 창작의 기회를 주는 것이 원래 MBC였다. 김채철 치하에서는 막내들에게 기회 대신 최하등급의 트라우마를 안긴다. 

 

어떤 조직에서는 시청률이 가장 낮은 피디에게 최하 등급을 줬다. 시청률을 근거로 인사를 평가하는 것도 미친 짓이다. 이건 창작집단에서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죽이는 일이다. 일요일 저녁에는 KBS의 '1박2일'이 시청률 최고다. '일밤'에서 새로운 코너를 만들려면 불리한 싸움을 각오해야한다. 1박2일이랑 붙었다가 시청률이 최하라고 일밤 피디에게 최하 등급을 준다면, 앞으로는 누구도 힘든 시간대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잘나가는 프로그램 이어받아 그냥 현상유지만 해도 좋은 등급을 받을테니까. 피디의 도전정신을 벌 주고, 피디의 무사안일주의에 상 주는 시스템, 이건 창작집단을 죽이는 지름길이다.

 

김태호가 무한도전을 성공시킨 이유? 그의 도전 정신 덕분이다. 막내에게 당시 토요일 저녁 시간대를 맡긴 이유가 있다. 당시 MBC는 토요일 저녁 예능에서 몇년째 시청률 꼴찌만 했다. 완전히 새로운 도전자가 필요했다. 김태호는 그런 자리에 전혀 인지도 없는 멤버들을 모아 매주 새로운 포맷으로 무한도전하겠다고 들어간 거다. 시작하고 초반에는 시청률이 저조해 6개월 이상 헤매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김태호를 누구도 징계하거나 최하 등급을 강제로 메겨 연출의 사기를 꺾지 않았다.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 속에서만 새로운 도전은 가능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무한도전이다.

 

무한도전을 만들어내는 최고의 창작집단을 만드는 방법? 성과에 대한 보상보다, 실패를 용인하는 조직문화다.

 

피디로 입사한 친구들은 돈을 벌려는 성취동기보다 프로그램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인정욕구가 더 강하다. 시청률이 잘 나오면 그 자체로 최고의 보상이다. 오히려 조직이 챙겨야할 사람은 시청률이 안 나온 피디다. 그들을 격려해서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 그것이 리더가 해야할 일이다.

 

정작 무한도전을 탄생시킨 조직문화는 죽이면서 무한도전을 외주제작으로 넘기자고 주장하는 김재철. 무한도전을 만든 DNA는 MBC의 조직문화와 김태호다. 그런 무한도전을 제작비만 주면 외주에서 만들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게 김재철 사장의 한계다.

 

(사진은 마이데일리 기사에서 가져왔어요. 우리 사장님은 역시 웃는 모습이 일품이야!^^)

 

 

이건 김태호와 김재철의 전쟁이 아니다.

김태호를 탄생시킨 조직문화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과

돈만 주면 무한도전은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의 전쟁이다.

 

김재철 사장은 죽었다 깨어나도 파업하는 우리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5개월째 월급 한 푼 못받고 파업에 동참하는 사람이 MBC에 770명이나 있다.

본보기로 110명을 징계하고 대기발령내고 해고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돈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절대 이걸 이해할 수 없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