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케이블에서 무한도전 '내조의 여왕' 편을 재방송했나보다. 사람들이 '하이, 큐!' 외치는 내 모습이 반가웠다는 인사를 하는 걸 보니. 나의 큐사인은 다른 드라마 피디와는 좀 다르다. 왜?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듣는데, 소설가와 영화 감독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하더라. 소설가는 자신의 재능으로 먹고 사는 사람, 감독은 남들의 재능으로 먹고 사는 사람. 정확한 지적이다.

 

피디의 재능은 다른 사람의 재능을 끌어내는 것이다.  작가의 글 쓰는 재능, 배우의 연기 재능, 스태프들의 예술적 재능, 이 모든 재능을 끌어내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이끄는가가 좋은 연출이 되고 못되고를 결정한다.

 

나는 지시하는 대신 질문한다. 그게 나의 연출 스타일이다. 가장 쉽게 연출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다.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 된다. 먼저 배우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번 씬 어떻게 연기할까?' 배우는 그 답을 연기 리허설로 보여준다. 그럼 스태프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배우의 저 연기를 어떻게 화면에 담을까?' 스태프들은 그 답을 카메라 리허설로 보여준다. 배우는 동선과 연기톤을 준비하고, 카메라 감독은 그걸 보고 앵글을 만들고, 조명 감독은 앵글을 보고 조명을 세팅하고, 동시 감독은 조명 위치를 보고 그림자가 배우 얼굴에 떨어지지 않는 마이크 위치를 세팅한다. 모든 일은 유기적으로 흘러간다. 피디가 인위적으로 지시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의 큐사인은 다르다. 드라마 감독들은, 다 '레디, 액션!'을 외친다. 나는 '스탠바이, 큐.'다. 물론 내가 예능 피디로 연출을 시작한 이유도 있다. 예능에서는 쇼 녹화에 들어가며 '스탠바이, 큐!'를 외치니까. 하지만 드라마 피디가 되었다고 큐사인을 바꾸지는 않았다. 나의 연출 스타일까지 바뀌는 건 아니니까.

 

'레디~ 액션!'은 명령이다. '준비~ 움직여!'

나는 배우나 스태프가 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탠바이~ 큐!'는 신호다. '대기~ 시작!'

나는 준비가 되었다면 같이 일을 시작하자는 신호를 주는 사람이다.

 

 

 

내조의 여왕 촬영장에서 스태프가 찍어준 사진이다. 7살 난 아역 배우랑 작업할 때도 나는 지시하지 않는다. 항상 먼저 물어본다. '이번 씬 어떻게 할 거야?' 아역배우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오지호 아빠 역할을 할게, 연기해봐.' 그러면서 상대방 대사를 대신 쳐준다. 아이가 준비해온 연기톤을 들어보고 괜찮으면 그대로 진행한다. 보통의 경우, 나는 배우가 준비해 온 대로 촬영을 간다. 리허설만 보고 '이건 아닌데?'라고 하기보다 촬영을 해보고 어색하면 배우와 함께 모니터를 본다. 좋은 배우들은 감독의 지적을 받지않고도 먼저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다.  

 

연출이 일일이 지시하기 시작하면 배우는 흥이 나지 않는다. 또 대본을 받고 집에서 열심히 연습한 톤이랑 내가 지시한 톤이랑 다르면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 엔지가 나기 십상이다. 

 

연출, 참 즐거운 작업이다. 쉽게 연출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다.

모든 답을 알 필요는 없다. 연출은 질문은 던지는 사람이다. 

'이번 씬, 어떻게 할까?'

 

생각해보면 인생도 마찬가지다. 정답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꾸준히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매일의 삶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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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rdragonfly1234 2012.06.29 0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피디님은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을 갖춘 분이군요.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주고, 불협화음을 없애주고 기분좋게 이끌어 가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전통적으로 "카리스마" 가 있는 사람이 지도자라고 인식하는 잘못된 관습이 있는데, 영어의 "카리스마"는 김피디님도 아시다시피 가장 잘못 알려진 단어로서 한국사람들이 잘못 알고있듯 강압적이고도 위압적인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그런 지도자는 반드시 안으로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고, 파벌이 조성되고, 뒷방에서 명령하는 밀담/거래가 오고가는 음지 정치가 되어가지요.

    김피디님과 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대표적인 지도자였던 사람으로 언뜻 아이젠하워 총사령관이 생각나는군요. ( 그가 대통령이 되고나서는 너무 노쇠해서 주변의 참모들이 밀실정치,부패를 저질러서 좋은 지도자였다고 보기 힘듭니다만) 2차 대전에서 가장 훌륭했던 지도자로 생각되어지는 사람이지요.

  2. 나비오 2012.06.29 0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혼자만의 시간에, 홀로 독백을 할때
    요즘은 '왜'라는 질문 보다
    '도와주세요'라는 절박함이 터져나올때가 많아요^^;;

    피디님은 '멘토'적 자질이 넘쳐나시는 것 같습니다.
    행복하세요 ~~

  3. 주르날리스트 2012.06.29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읽고 하루 시작합니다! 이번 글은 제가 처음으로 다네요.^^

  4. 어떻게 살 것인가 2012.06.29 1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민해 봐야할 질문이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5. 2012.06.29 1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새벽단비 2012.06.29 1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격적 사실. 내일이 시청이지ㅠ 오늘은 보...보신각... 덤벙이의 최후...ㅠㅠ 입니다.

  7. 2012.06.29 17: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2012.06.29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9. 새벽단비 2012.06.29 2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교수님과 생각이 같으시네요:) '레디'가 아닌 '스탠바이'인 이유! 시청광장 옆 스타벅스에서 7시가 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추천해주신 책 1인분 인생을 읽으며! 내일 파업콘서트(파업 전문기자도 아니고;; 사랑하는 마음에...) 사전답사겸, '쫌' 행사 참여겸! 피디님을 처음 뵈었던 3월의 빗줄기 속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150일 돌파네요. 내일도 단비가 내린다하니, 평행이론을 보는듯해요. 현장에서 뵐 수 있는 운이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엠노조 식구들은 구슬땀 흘리며 고생하시는데, 스벅에서 딩가딩가 기다리는 것 같아 죄책감 마저 드는 오늘 ㅠ 그래도 부산아가씨가 연고 없이 대기 할 수 있는 곳이 마땅찮네요ㅠ..

  10. 코난TV [인터넷방송] 2012.06.29 22: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난도 배우와 일하고 싶어요 그런 날이 언제 올 지 막막해요 지금은..ㅠㅠ

    • 김민식pd 2012.06.30 07: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누구와 일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만들것인가입니다. 코난님은 그에 대한 준비를 열심히 하며 살잖아요. 그럼 언젠가 기회가 올 거에요.

  11. 이상주 2013.04.15 1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훌륭한 연출가 자질의 향기가 느껴 지네요.조그마한 배려이자 통상적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 난듯한, 출연자들의 멋진 연기와 에드립도 편안하게 기대할수 있겠네요. ...멋진 연출 많이 기대할게요! 지나가던 엑스트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