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짜로 즐기는 세상

나의 인생 필살기 두 가지

by 김민식pd 2026. 8. 3.

저는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왕따였습니다. 강연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예? 피디님이요?" 그 반응이 참 고맙습니다. 만약 "아, 역시..."라는 반응이 돌아온다면 그것도 꽤 상처가 될 테니까요. ^^

저는 어려서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꿈은 저를 의대로 보내는 것이었어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과를 선택했지만 수학을 너무 못했습니다. 성적은 늘 반에서 중간 정도, 내신은 10등급 중 5등급. 성적표가 나올 때마다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습니다.

"이 성적으로 의대를 가겠냐?"

성적도 안 되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길을 강요받으니, 제 표정은 늘 어두웠겠지요.

다섯 살 때는 얼굴을 호롱불에 데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1970년대 초 경상도 시골에는 전기가 약해 밤마다 호롱불을 켜두고 살았거든요. 원래도 까맣고 마른 아이였는데 턱에 큰 화상 흉터까지 생기니 아이들은 온갖 별명을 붙여 놀렸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반에서 가장 못생긴 아이를 뽑는 투표에서 1등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였어요. 집에서는 공부 못한다고 맞고, 학교에서는 못생겼다고 놀림을 당했어요. 그 시절,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런 제게 유일한 도피처는 독서였습니다.

처음에는 만화였습니다. 이현세의 『국경의 갈가마귀』와 『공포의 외인구단』, 허영만의 『무당거미』와 『카멜레온의 시』를 좋아했지요. 돌이켜보면 제가 좋아했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아웃사이더였습니다. 그러다 무협소설에 빠지고, 다시 대하소설로 넘어갔습니다.

1980년대에는 괴로운 현실을 잠시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이 허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었거든요. 

그렇게 저는 활자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의대는 포기하고 공대에 진학했습니다. 낮은 내신 때문에 2지망이던 자원공학과에 입학했지요. 석탄채굴학을 배우는데 우울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까맣다고 놀림받았는데, 커서 탄광에서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막막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건국대학교 축제에 놀러 갔다가 포스터 한 장을 봤습니다.

"여름방학에 자전거 타고 전국일주 할 사람, 모여!"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심장이 뛰었습니다. '아, 이거다.' 한양대 학생이었지만 건국대 사이클부를 찾아갔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전국일주를 하고 싶습니다." 그 열정을 좋게 봐주셨는지 타교생인 저를 받아주셨습니다. 그 시절에는 그런 낭만이 있었지요.

여름방학 내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돌았습니다. 그 가운데 지금도 잊지 못하는 길이 있어요. 포항에서 속초까지 이어지는 동해안 7번 국도. 오른쪽에는 푸른 동해, 왼쪽에는 설악산 능선을 바라보며 달리던 그 길. 지금도 저는 매년 한 번은 동해안 자전거길을 달립니다. 스무 살에 즐거웠던 일은 쉰이 넘어서도 여전히 즐겁더군요. 

그렇게 저는 여행의 즐거움을 배웠어요.

돌이켜보면 제 인생을 구해준 필살기는 두 가지였습니다.

독서와 여행.

이후 삶이 힘들어질 때마다 저는 이 두 개의 비단주머니를 꺼내요. 시간이 나면 책을 펼치고, 반나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서울둘레길을 걷거나 한강 자전거길을 달립니다. 2015년 MBC 피디로 일하다 드라마국에서 쫓겨나 송출실로 발령받았습니다. 1년 동안 250권의 책을 읽고 블로그에 서평을 썼고, 서울둘레길을 완주하며 분노와 좌절을 견뎠지요.

2010년부터 중·고등학교 진로 특강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저처럼 학교에서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거든요. "인생은 생각보다 길단다. 조금만 버티면 살 만해져."

저를 그렇게 괴롭혔던 고등학교 친구들을 저는 졸업 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어요. 저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고, 서울은 생각보다 훨씬 넓거든요. 서울 와서 가장 좋았던 것은 익명성이었어요. 고향에서는 '찐따'로 유명했던 저를, 서울에서는 아무도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가끔 고민이 됩니다.

학교 진로 특강을 가서 중고생들에게 독서를 권하고 싶지만, 이제 아이들 곁에는 책대신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는 최고의 도구가 이미 있어요. 소설은 따라 갈 수 없는... 대학교 강의를 가서도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예전의 저는 대학교 동아리 활동을 통해 여행의 즐거움을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 대학생들은 사교를 오프라인 동아리가 아니라 온라인 SNS로 해요. 여행의 즐거움보다 타지에 놀러 갔다가 겪는 온갖 고난과 시련이 짤로 소모되는 시대지요.

문득 깨달았어요.
내가 찾은 인생의 해답은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였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의 청소년과 청년들은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기만의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10대의 내가 그랬고, 20대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고 해서 제 이야기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독서와 여행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자기 삶을 버티게 해주는 '필살기'가 하나쯤은 필요하다는 거지요.

그것이 책일 수도 있고, 운동일 수도 있습니다. 음악일 수도 있고, 글쓰기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그림이나 코딩, 춤이나 봉사활동일 수도 있어요.
힘든 현실에서 잠시 숨을 돌리게 해주고,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무언가.
저에게는 그것이 독서와 여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쓸 것입니다.
걷고 싶은 길을 찾아 여행을 다닐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여러분과 나누며 살고 싶어요.

혹시 지금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꼭 자기만의 필살기를 하나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필살기 하나가, 언젠가 여러분의 인생을 구해줄지도 모르니까요.

 

1998년 MBC 사보에 실린 사진.

인생 필살기 덕분에 우울했던 10대, 20대를 견디고, MBC 시트콤 피디가 되어 즐거웠던 시절~^^

늘 설렘과 즐거움을 잊지 않고 살려고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