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사라의 불시착
(1부를 올렸더니, 페이스북 댓글란에 <읽는 기쁨>의 편성준 작가님이 <사랑의 불시착>을 치다 오타가 나서 <사라의 불시착>이 되었다고 했어요. 역시 카피라이터 출신 작가님다운 재치에 감탄하며 2부의 제목은 <사라의 불시착>으로 했어요. 고맙습니다, 편 작가님!)
어제 올린 1부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 파송된 미국인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난 사라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외모 때문에 늘 '미국 사람'으로 불리었어요. 하지만, 자신이 한국인이라 생각했어요.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는 한국어와 한국에서의 기억을 마음속 깊이 묻어둔 채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계기로 잠들어 있던 한국어가 되살아났고, 잊고 있던 자신의 일부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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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나는 신시내티 대학교의 오셔 평생교육원(OLLI)에서 〈Elder Tales〉라는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이 수업은 세계 각국의 설화에 등장하는 노인 주인공들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강의를 맡은 릭 웜(Rick Warm)은 저명한 심리학자들의 연구와 자신의 풍부한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인생의 후반부에 지혜에 이르려면 젊은 시절의 수많은 경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물론 어떤 사람은 끝내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하기도 한다. 수업을 들으며 나는 조금씩 중요한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한국적인 나를 외면한 채 평범한 미국인이 되려고 애써 왔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절반만 존재하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일이었다.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내 안의 '한국인인 나'를 받아들여야 했다. 릭의 질문과 안내는 내가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의 모든 경험이 하나도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한국에서 자란 시간도, 미국에서 살아온 시간도,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생애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과거의 나를 잊으려 했던 시간조차도 지금의 나에게 오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그 깨달음은 깊은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남들과 같아지고 싶지도, 어디에든 억지로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것이 중년에 이르러 내가 얻은 지혜였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의 시작에는 <사랑의 불시착>이 있었다. 영어 자막을 끄는 아주 작은 행동이 내 삶 전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 것이다. 그 경험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짜릿하고,가슴 뛰고, 상쾌하고,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으며, 무척 행복했다.
같은 시기에 나는 OLLI에서 한국전쟁에 관한 강의도 들었다. 그 수업에서는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는 한국어를 할 줄 압니다. 한국에서 자랐거든요, 그래서 한국전쟁을 여러분과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봅니다." 다른 자리에서도 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이제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한국입니다." 심지어 페이스북 프로필에 올린 출생지도 '서울, 대한민국'으로 바꾸었다. 마치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잠시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두 번째 모국어는 바로 한국어입니다."
그 후 나는 또 다른 궁금증을 품게 되었다.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과 이중언어 사용자(bilingual)가 되는 것은 과연 무엇이 다를까? 호기심이 많은 나는 관련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사람은 어떻게 이중언어 사용자가 되는가. 두 언어를 사용하는 뇌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중언어 경험은 인간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꾸는가. 읽으면 읽을수록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미국에서는 이런 논의는 대부분 영어와 스페인어를 기준으로 진행된다.
'이중언어 사용자(bilingual)'와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fluent)'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다. 나는 늘 이중언어 사용자란 두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수준을 넘어, 두 언어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정반대로 이해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이중언어 사용자란 단지 두 언어를 접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할 뿐, 반드시 능숙하거나 유창하게 구사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 관점에서는 두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이 단순히 이중언어 사용자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언어 능력을 의미했다.
한인 사회에서 1세대 이민자에게는 영어가 두 번째 언어이고, 2세, 3세에게는 한국어가 두 번째 언어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문득 깨달았다. 언니와 나처럼 한국어를 사용하는 비한국인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언니와 나, 그리고 초기 선교사 공동체에 계셨던 몇몇 분들(예를 들면 연세대학교를 세운 언더우드 가문의 어르신들) 정도를 제외하면, 언니와 나처럼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구나 우리는 국제학교가 아니라 한국의 일반 초등학교를 다녔다. 한국어로 공부하고, 읽고, 쓰고, 생각하고,생활하며, 매일같이 한국어 속에서 숨 쉬며 자랐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 시절에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여권에 적힌 국적 말고도, 한 사람의 국적을 결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어일까, 혈통일까, 인종이나 민족일까, 문화일까, 아니면 태어난 곳일까. 특히 내가 얼마나 특별한 환경에서 자라왔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면서, 이런 질문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중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나는 그런 성장 과정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여기게 되었다. 한때는 다른 사람과 똑같아지기 위해 애써 외면하고 숨기려 했던 과거였지만, 이제는 그것이 도망쳐야 할 짐이 아니라 기꺼이 품어야 할 선물이자 축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쨌든 <사랑의 불시착>을 끝까지 본 뒤에도 다른 한국 드라마를 계속 시청했다. 그러면서 나는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한국어 실력을 되찾기 위해 온 힘을 쏟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읽고, 쓰고, 말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한때는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해냈던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그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최선을 다해 한번 도전해 보겠다고 스스로와 굳게 약속했다.
나는 한국어를 되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한국어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것. 아무래도 나는 언어학자이자 제2언어 습득 전문가인 아버지의 딸이니까.
참고로 아버지의 박사 전공은 제2언어 습득(second-language acquisition) 분야였다. 또한 외국어 교육을 공부한 엄마와 함께, 두 분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언니와 나를 지역의 한국 공립학교에 보냈다. 그 결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어권 선교사 동료들은 강하게 반대하며 비난했다. 그들은 한국 학교에 보내면 언니와 내가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게 될 것이며, 부모님이 우리와 우리의 교육에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들에게는 서울외국인학교와 같은 영어권 학교가 한국 학교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인식이 있었고, 부모님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먼저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한국어 키보드를 설치했다. 그리고 독학으로 한글 타이핑을 익혔다. 아, 이런 것도 가능하다니, 정말 신이 났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카오톡을 사용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친구들과 연락할 방법을 찾아 조금씩 카톡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KBS 뉴스 앱도 내려받았다. 매일 한국 뉴스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한국 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미국과 세계의 주요 뉴스를 한국 언론은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함께 접할 수 있었다. 같은 사건이라도 나라가 다르면 시각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영어만 사용하는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이 조금 안쓰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영어권 뉴스만 접하다 보면, 아무리 좋은 언론이라 해도 결국 영어권의 시각 안에서 세상을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또 KBS 월드 라디오도 발견했다. 해외에 사는 한국인들을 위해 한국 소식과 문화를 전하는 방송이었다. 그 이후 나는 거의 매일 한국어 채널을 들으며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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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2부입니다.
사라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어를 되찾기 위해 애쓴 끝에 사라가 얻은 깨달음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사라의 부모님은 언어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분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어는 어린 시절에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된 뒤에도 얼마든지 다시 익힐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두 딸을 국제학교가 아닌 한국의 공립초등학교에 보낼 수 있었겠지요.
물론 주변의 영어권 선교사들은 걱정했을 것입니다. 국제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영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훗날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직접 그 반대의 경험을 하셨습니다. 성인이 된 뒤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충분히 능숙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어 역시 스무 살이 넘어서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믿으셨을 것입니다.
결국 부모님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사라는 스무 살에 미국 대학으로 진학해 미국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고요. 나중에 다시 한국어를 깨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뿌리와도 다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조기유학 열풍이나 영어 유치원의 인기를 보며 안타까웠어요. 어린 시절에는 영어를 공부하는 괴로움보다 모국어로 읽고 쓰는 즐거움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른이 되어 충분히 배울 수 있는 영어 공부를 위해 아이의 시간과 부모의 돈이라고 하는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는 것 같아 늘 안타까웠어요.
저는 스무 살이 넘어 혼자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했고요. 그 과정에서 AP Network News를 듣거나 AFKN에서 시트콤을 봤어요. 그러면서 깨달았어요. 아, 2개 국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틀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구나. 어려서 억지로 영어 공부시키는 건 반대하지만, 나이 50 넘어 외국어 공부를 추천하는 이유는 공부의 즐거움을 다시금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라가 잊고 있던 한국어를 어떻게 다시 깨워냈는지, 그 흥미로운 이야기는 3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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