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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팟캐스트가 현실이 된 순간

by 김민식pd 2026. 7. 16.

(사라의 불시착, 4부입니다. 전에 올린 이야기를 먼저 보시고 오셔도 좋아요. 한국의 책 소개 팟캐스트를 즐겨 들은 사라는 한국 여행 중 진행자들과 점심 약속을 합니다.)

점심은 지하철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떡볶이집으로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도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민식 PD님은 무척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이었다. 중간중간 영어를 섞어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나는 한국어를 써 보고 싶었기 때문에 대부분 한국어로 이야기했다. 사실 어느 언어를 사용하든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만,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욱 뜻깊게 느껴졌다. 직접 만나 뵌 것은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 팟캐스트에서 느꼈던 모습과 실제 모습이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 말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들리는 그대로인 사람”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런 사람들에게서 신선한 진정성을 느낀다.

점심을 먹는 동안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 선생님 역시 팟캐스트에서 느껴지던 모습 그대로였다. 김민식 PD님보다 조금 더 과묵한 편이었지만, 깊이 생각하는 분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적절한 질문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끝까지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매주 팟캐스트에서만 만나던 두 분을 실제로 눈앞에서 마주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신기했다. 마치 팟캐스트가 현실 속으로 그대로 옮겨와 내 눈앞에서 생방송으로 펼쳐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즉석에서 끓여 먹는 떡볶이를 앞에 두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음식보다는 대화에 더 마음이 쏠렸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 훨씬 더 즐거웠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주변 직장인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고, 금세 가게 입구에 줄이 생겼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 선생님은 시간 여유가 있는 듯했고, 김민식 PD님도 다음 강연을 위해 기차를 타러 가기 전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아 있다고 말씀하셨다. 두 분은 우리에게 조선 왕조 두 임금의 능이 있는 선릉을 보여 주고 싶어 하셨다. 말씀을 들어 보니 선릉과 그 주변 공원을 무척 잘 알고 계신 듯했다. 특히 박 선생님은 근처 초등학교에 다닐 때 소풍이나 현장학습으로 여러 번 이곳을 찾았던 추억을 들려주셨다.

선릉까지는 걸어서 금방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모두가 허탈해졌다. 하필이면 월요일이라 문을 닫은 것이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닫힌 대문 너머로 보이는 숲길과 능은 봄 햇살을 받아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날씨도 너무 좋아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그래도 그냥 돌아서기는 아쉬워 선릉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로 했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왔다"고 말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서로 웃었다. 우리는 활짝 웃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기도 하며 셀카를 잔뜩 남겼다. 김민식 PD님의 낙천적인 성격과 끊이지 않는 웃음, 그리고 밝은 에너지는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날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결심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오래 친구로 지내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삶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삶은 하루하루가 다 선물이다"라는 마음가짐을 끝까지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김민식 PD님이었다.

우리는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두 분은 이 동네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잘 알고 계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위기 좋은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시원한 음료를 앞에 두고 창가에 앉으니 기분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봄날의 날씨는 눈부시게 좋았고, 창문이 활짝 열려 있어 손님이 많았음에도 카페 안은 답답하지 않고 시원한 공기가 가득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분은 엘리자베스를 배려해 대화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영어를 섞어 주셨다. 엘리자베스도 그런 세심한 배려 덕분에 대화에 함께할 수 있어 무척 고마워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두 분의 영어 실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박 선생님은 조금 전 자신이 카투사(KATUSA)로 군 복무를 했다고 말씀하셨다. 뛰어난 영어 실력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김민식 PD님의 영어는 이미 팟캐스트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젊은 시절 스스로 영어를 공부했고, 영어 회화책 한 권을 통째로 암기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 영어를 그렇게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두 분의 영어 실력은 여전히 놀라울 만큼 인상적이었다.



엘리자베스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한국어로 말을 이어 갔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영어와 한국어를 아무런 의식 없이 오가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언어를 바꾼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내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내 한국어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두 분은 내가 서툴게 표현해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금세 이해해 주셨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따뜻하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김민식 PD님은 나의 성장 과정에 큰 관심을 보이셨다. 특히 외국인이 거의 없던 시절, 더구나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은 더욱 드물었던 그때, 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경험이 어떠했는지 무척 궁금해하셨다. 내 이야기를 들으시는 동안 그는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 기울여 들었다. 그리고 내가 겪은 경험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특유의 창의적인 발상으로 그 이야기를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쏟아내셨고, 많은 한국인들이 나의 추억과 경험, 그리고 독특한 시각에 분명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셨다.

김민식 PD님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사람을 북돋워 주는 분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만약 출판 에이전트가 되셨다면 정말 훌륭한 분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진심으로 믿어 주며,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불어넣는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바로 그날 김민식 PD님이 보여 주신 열정과 격려가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는 첫걸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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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글을 통해 읽는 일은 조금 쑥스럽습니다.

2010년, 드라마 <내조의 여왕> 방송을 마치고 휴가를 보내며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소설 한 권을 번역했습니다. 그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갔더니 편집자 한 분이 뜻밖의 말씀을 하시더군요.

“PD님은 왜 번역을 하세요? 본인 이야기를 쓰셔야 할 분인데요.” 

저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저는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는 사람입니다. 남이 만든 재미있는 이야기를 우리말로 옮기는 것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러자 그분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어요.

“아니에요. PD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셔야 해요. 제가 PD님을 저자로 만들어드릴게요.”

그 한마디가 제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고래방의 최지은 대표님입니다. 2010년에 처음 만나 지금까지 제 책 여덟 권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2026년인 지금도 여전히 함께 일하고 있고, 앞으로 남은 평생도 그분과 계속 책을 만들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책을 쓰는 일은 제 꿈이 아니라 누군가가 제게 선물해 준 가능성이었습니다. 혼자서는 결코 "나는 책을 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누군가 제 안에서 가능성을 먼저 발견해 주었기에 저도 비로소 그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사라의 글을 읽으며 그날 카페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저는 사라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한국 사람들은 분명 재미있게 들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 말은 16년 전 최지은 대표님이 제게 해 주셨던 말을 그대로 전한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갑니다. 다만 대부분은 그것이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당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고 말해 주는 순간, 평범한 기억은 한 권의 책이 되고, 한 사람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용기가 됩니다.

어쩌면 그날 사라에게 건넨 격려는, 오래전 최지은 대표님에게 받았던 선물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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