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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사랑의 불시착이 깨운 한국어

by 김민식pd 2026. 7. 13.

저는 친구와 함께 〈내가 빌린 책〉이라는 팟캐스트 겸 유튜브를 만들고 있습니다. 도서관 단골들이 모여 ‘내가 빌린 책’ 이야기를 하고, 짝수 달에는 여행 이야기도 나누는 소소한 방송입니다. 

언젠가 녹음을 하다가 농담처럼 말했어요. 
“우리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공개방송 한번 해볼까?”
그러자 댓글이 달렸습니다.
“기회가 되면 꼭 방청하러 가겠습니다.”

순간 감동했어요.

구독자도 많지 않고 조회수도 화려하지 않은 방송인데, 이런 방송을 일부러 찾아와 들어주시고, 댓글까지 남겨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방송을 오래 하다 보니 조회수보다 더 귀한 게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외에 계신 청취자 한 분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오랜만에 한국에 방문합니다. 혹 공개 녹음이 있으면 꼭 가고 싶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애청자 한 분이 계셨거든요. 저는 당연히 그분인 줄 알았습니다. 댓글을 보면 늘 책도 많이 읽으시고 생각도 깊으신 분이라, '드디어 뵙는구나' 하며 반갑게 약속을 잡았습니다.

약속 장소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파란 눈의 중년 백인 여성이 저를 향해 걸어오는 거예요.

'...어?'

'설마 저분이?'

머릿속이 잠시 멈췄습니다.

'아니, 저분이 어떻게 한국어 팟캐스트를 듣지? 그것도 우리 방송을?'

알고 보니 Sarah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이었습니다. 부모님은 연합감리교회(United Methodist Church) 선교사로서 거의 50년 동안 서울에 거주하셨어요. 아버지는 1960년 3년간의 단기 선교사로 처음 한국에 오셨고, 당시 어머니는 알제리에서 단기 선교사로 활동하고 계셨다고요. 두 분은 1967년 장기 선교사로 함께 한국에 오셨으며, 1970년대 초 몇 년간 뉴욕시에 거주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2014년 은퇴하실 때까지 계속 서울에서 생활하셨습니다. 그동안 부모님은 교육, 인권 및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 봉사, 리더십, 그리고 한국 교회의 다음 세대 지도자 양성에 평생을 헌신하셨어요.

아버지는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강사로 재직하셨고, 이후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언어학 및 TESOL 교수로 약 40년간 재직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박사님과 오랫동안 긴밀히 협력하며, 이 박사님이 설립한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활동하셨어요. 이 기관은 특히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성들을 비롯해 여성과 그 가족에게 법률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어머니는 이화여자대학교와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영어와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로도 재직하셨다고요.

사라는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부속국민학교(현 이대부속초등학교)와 이대부속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예술고등학교에 1년 반 동안 재학하다가, 고등학교 2·3학년은 서울외국인학교로 전학하여 마쳤습니다. 이후 미국 드루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현재는 가족과 함께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살고 있어요. 이번에 딸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는데, 1998년 이후 처음으로 다시 한국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습니다. 미국 사람을 만나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이렇게 재미나게 수다를 떤다는 게 무척 신기했어요. 1970년대 한국이 가난하고 외국인이 드물던 시절에 서울에서 파란 눈의 소녀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경험이었을까요? 그 시절을 살아낸 이야기 하나하나가 제게는 너무나 낯설고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헤어질 때 부탁드렸습니다.

"Sarah 님, 꼭 선생님의 이야기를 글로 써주세요.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의 과거와 현재가 정말 궁금합니다."

얼마 전, 그분이 한국 여행기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정리한 영어 원고를 보내주셨습니다. 읽고 나니 이 글을 더 많은 사람과 꼭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페인 여행 중에 번역을 시작했어요. 예전 같으면 사전을 펼치고 머리를 싸매며 번역했겠지요. 제가 마지막으로 직접 번역다운 번역을 해본 게 2010년쯤이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영어 원고를 챗GPT에 넣으니, 순식간에 초벌 번역이 나옵니다. 물론 문장을 다듬고 뉘앙스를 살리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지만, 예전 같으면 며칠 걸렸을 작업이 이제는 몇 분이면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오늘은 그렇게 탄생한 번역본을 여러분과 함께 읽어보려고 합니다. 멋진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겁니다. 전체 여행기 중에서 저와의 인연을 담은 대목을 소개합니다. 귀한 글을 허락해주신 Sarah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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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1일 월요일

오늘의 가장 큰 일정은 팟캐스트 친구들과 함께한 점심 식사였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몇 해 전, 나는 내 한국어 실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거의 30년 동안 잠들어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무척 흥분했다. 혹시라도 잠든 한국어를 다시 깨워 예전의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인생에서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그저 주변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고 싶어 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미국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눈에 띄지 않고 어울리는 것',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지는 것'은 오랫동안 내 삶을 관통한 중요한 주제였다. 나는 원래 사람들의 주목을 받거나 중심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늘 다른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편이 훨씬 편했다. 아마 누구나 갖고 있는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소속감을 얻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자랄 때 나는 다른 한국 아이들 사이에서 피부색과 머리색 때문에 눈에 띄는 '미국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과 똑같이 생기고 싶었고,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처럼 보이고 싶었다. 나는 '한국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결코 이룰 수 없는 소망이었다. 내가 아무리 한국말을 잘하고, 한국 사람처럼 생활하고 행동해도 사람들은 나를 외국인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가장 괴로운 순간은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가 한국말을 못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한 채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미국 사람!"이라고 외칠 때였다. 그 말은 단순히 국적을 설명하는 표현이 아니었다. "야, 저 이상하게 생긴 외국인 좀 봐." 나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그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랐고, 한국말도 친구들만큼 잘했으며 학교 성적도 우수했다. 그런데도 외모 하나 때문에 끝내 한국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그것은 내가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불공평한 현실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미국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수 없다는 사실은 나를 속상하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대학 진학을 위해 미국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미국인이었고, 나와 같은 피부색과 머리색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영어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과 그곳에서 살아온 이야기에 사람들도 호기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나는 깨달았다. 중산층 교외에서 자란 또래 미국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려면 이제는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도 잘 몰랐지만, 나는 있는 힘껏 미국인답게 살아가려고 했다. 누군가 "어디 출신이냐?"고 물으면 뉴욕이라고 대답했다. 우리 가족이 잠시 뉴욕에 살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은 부모님이 자란 곳을 말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누군가 같은 질문을 하면 당시 내가 살고 있던 도시 이름을 대답했다. '가족이 있는 곳이 곧 고향이지.'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또한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사람이라는 점도 최대한 숨기려 했다. 나는 내 안의 그 부분을 지워 버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한다. 피부색이나 머리색 때문에 눈에 띄지도 않는다. 이제는 누구도 나를 손가락질하거나 수군거리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나는 다른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그리고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일을 하며 빠듯한 살림을 꾸려가는 동안에는 한국에 다시 갈 수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한국어와 '한국인으로서의 나'가 자리한 공간을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마치 그 부분이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인 것처럼 일상을 살아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정말로 이제는 한국어를 할 수 없다고 믿게 되었다.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익혔던 언어 능력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그래,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내 삶이 아니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 현실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리고 과거보다는 눈앞의 삶에 집중하며 살아갔다. 물론 마음 한구석에서는 언젠가는 다시 한국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아마도 엄마와 아빠가 은퇴해 미국으로 완전히 돌아오기 전에는 한 번쯤 한국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부모님은 어느새 은퇴하셨고, 나는 끝내 한국을 찾지 못했다. 나는 내 인생의 한 챕터가 영원히 끝났다고 체념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집에 머물며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을 하던 시기였고, 많은 사람들이 바깥세상의 불안한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해 넷플릭스를 찾았다. 어느 날 언니가 내게 물었다.

"〈사랑의 불시착〉 봤어?"

당시 넷플릭스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던 한국 드라마였다. 내가 아직 안 봤다고 하자, 언니는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라며 꼭 보라고 강력하게 추천했다. 몇 달 뒤에도 다시 물었고, 그 후에도 몇 번이나 같은 이야기를 했다. 결국 나는 더는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에 보기로 했다. 집 아래층의 작은 TV 앞에 자리를 잡고, 당연히 영어 자막을 켠 채 시청을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마 첫 회가 끝나기도 전이었던 것 같다. 영어 자막이 오히려 드라마를 보는 데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막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내 뇌가 동시에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어 대사를 듣고 그 의미를 이해하고, 영어 자막을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한 다음, 두 내용을 서로 비교하며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특히 한국어와 영어는 어순이 다르기 때문에 그 과정이 더욱 복잡했다. 한국어와 영어 사이에서 동시통역을 하는 통역사들이 아마 이런 어려움을 겪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꺼번에 처리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그래서 영어 자막을 끄고 한국어만 들으며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쉽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배우들의 대사를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줄거리를 따라가기에는 충분할 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나오면 그 장면만 다시 돌려 영어 자막을 켜고 확인했다. 어떤 때는 자막과 함께 한 편을 다 본 뒤 다시 자막 없이 처음부터 보기도 했고, 반대로 자막 없이 먼저 본 뒤 자막을 켜고 다시 보기도 했다. 아마 시리즈 전체를 그런 식으로 여러 번 반복해 본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영어 자막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 익혔던 한국어가 내 머릿속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이런 능력이 남아 있었구나!"

난생처음으로 강한 자부심과 함께 '소속감'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마치 내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것 같은,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특별한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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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기까지가 사라의 여행기 1부입니다.

어느 날 문득 ‘사랑의 불시착’을 보다 어린 시절 배운 한국어가 다시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사라는 어쩌다 제 팟캐스트를 듣게 되었을까요? 2부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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