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방송제작론을 가르칩니다. 저에게는 이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나름의 도전입니다. 저는 방송제작을 전공한 적이 없어요. 오로지 책으로 읽고, 촬영 현장에서 선배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방송제작을 배웠거든요.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는데, 이걸 선생이 되어 가르친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과연 창의성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매주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를 학생들과 수업을 통해 나눕니다. 요즘 저는 블로그 글을 교재로 종종 활용합니다. 이를테면 지난주 월요일에는 <좋은 불평등>의 리뷰를 함께 읽고 ‘고령화 시대, 노후 빈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프로그램 기획안을 만드는 연습을 했어요.
그냥 ‘프로그램 기획안을 내세요.’라고 하면 수업 진행이 쉽지 않습니다. 어떤 기준을 내놓아야 해요. 창의성은 제한과 한계에서 만들어지거든요. 불평등에 관한 리뷰를 읽고 함께 방송 기획안을 작성하라고 하면 이는 훈련이 되지요. 예전에 하지현 선생님이 쓰신 <꾸준히, 오래, 지치지 않고> (마티스블루)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이번 주에는 이 책에서 수업 교안을 찾았어요.
테드 올랜드와 데이비드 베일즈가 쓴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에 소개된 일화입니다. 도자기 공예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학기 과제를 내면서 반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평가 기준을 발표합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50개를 만들면 A, 40개를 만들면 B”라고 하고요. 두 번째 그룹에게는 “몇개를 만들든 가장 잘 만든 한 점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공지해요.
한 학기 동안 완성한 학생들의 작품을 검토한 선생은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합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작품들 중에서 기술, 섬세함, 완성도 측면에서 모두 만족스러운 최고의 작품은 첫 번째 그룹에서 나왔다고요. 일단 제출한 도자기 개수로 성적이 나가는 ‘양’ 중심 그룹 학생들은 더 많이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요. 도자기를 만들고 실패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실력이 향상되었다고요. 반면 완성도에 승부를 건 B그룹 학생들은 정작 한 학기 동안 완성한 작품이 몇 점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실력이 늘지도 않지요.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는 양이 질보다 중요합니다. 일단 많이 해보고, 많이 깨트리고, 틀리고, 실수를 해봐야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전문가 레벨이 된 후에는 당연히 ‘질’을 고민해야지요. 뼈대를 만드는 능력은 이제 충분하니, 고치거나 변화를 줄 곳, 남과 다르게 할 부분을 고민하고 거기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초보자들은 일단 뼈대를 만들어내는 수준이 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잘하건 못하건 일단 끝까지 완성, 혹은 완결을 해보는 경험이 필수적입니다.
저는 일일시트콤으로 연출 데뷔를 했어요. 매일 5편씩 1년에 200편의 에피소드를 찍고 편집하고 만들었어요. 신인 피디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요. 어느 순간 득도의 순간이 왔어요. '아, 매번 잘 할 필요는 없구나. 그냥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는구나.' 매순간 완벽을 기하려고 하면 지치고요, 그렇게 최선을 다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낙담합니다. 1주일에 다섯 편의 시트콤을 무슨 영화 찍듯이 하면 몇 달 안 가 배우와 제작진이 지쳐서 나가떨어집니다. 당시 저는 신인배우들과 작업을 했어요. 그들에게 좋은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편안한 촬영 현장 분위기를 만들어 함께 놀 듯이 만들었어요. 그래야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고요. 오래 해야 잘 할 수 있거든요.
위즈덤하우스에서 낸 3권의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매일 아침 써봤니?>,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학원이나 회화 선생을 찾고,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교재를 찾아다닙니다. 완벽한 방법이나 최고의 선생을 찾는 건 의미가 없어요. 나에게 맞는 방법이나 선생인지는 직접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거든요. 그런데 조금 해보다 안 되면 바로 방법/교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잘 쓸지 못 쓸지는 일단 써보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양질전환의 법칙이 있어요. 양이 많아지면 질도 좋아집니다. 그런데 다들 좋은 글을 쓰기 전에는 글을 쓸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하지요. 글을 쓰지 않고 글이 좋아질리는 없는 데 말이지요.
저는 요즘 세계 각국으로 여행을 다닙니다. 유럽, 미국, 일본도 가지만 쿠바나 미얀마 같은 오지 여행도 다녀요. 이렇게 겁 없이 다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서울둘레길을 걸었어요. 코로나가 터졌을 때는 1년 열두 달 제주 여행을 다녔고요.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려 춘천도 가고요. 국토종주로 부산까지 자전거 타고 갔어요. 그렇게 도전한 경험이 있기에 해외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결국 3권의 책을 통해서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거에요. 일단 가볍게 시작해요. 실패해도 괜찮아요. 아무 시도도 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해보는 게 나아요. 대부분의 초보자는 자신이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하고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한 번의 실패에 기가 죽고 다시 시작하기 전에 머뭇거립니다. 원어민 회화 수업에 갔다가 기가 팍 죽어서 영어 공부를 그만둡니다. 블로그에 아무리 글을 올려도 조회수가 나오지 않으니 금세 지쳐서 포기합니다. 해외여행 가서 겪을 수 있는 온갖 사건 사고를 유튜브 영상이나 기사로 보고, ‘그래 이불밖은 위험해.’라는 생각만 하게 됩니다.
도자기 제작 수업에서 잔뜩 움츠린 학생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은 두 가지가 있어요.
“먼저 계획을 잘 세우고, 얼마나 잘 만들지 그려보면서 실수하지 않게 해봐.”
“일단 많이 해봐. 실패하고 실수해도 돼. 그러고 난 다음에 바로 다시 또 하면 돼.”
둘 다 좋은 조언입니다. 그러나 반년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돌아보면 후자의 조언이 더 좋은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많이 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실수와 실패, 그에 따르는 좌절감과 부끄러움까지도 견뎌내야 합니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저는 끊임없이 실패하는 사람입니다. 공대에 들어갔으나 엔지니어가 되기엔 학점이 부족했고요. 영업사원이 되었으나 세일즈로 먹고 살기엔 끈기가 부족했어요. 통역사가 되었으나 영어로 먹고살기엔 발음이 구렸고요. 시트콤 피디가 되었으나 조기종영을 겪고요, 드라마 피디가 되었으나 결국 드라마국에서 방출되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끊임없이 시도합니다. 저는 실패에서 배우는 사람이니까요.
어떤 일에서 성공하느냐 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입니다. 언제 배울 수 있을까요? 최선을 다했을 때입니다. 영업이든, 통역이든, 연출이든,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통역을 더 잘 하고 싶은 욕심에 미국 시트콤을 보다 시트콤 피디가 되었고요. 시트콤 피디 시절 시청자와 소통하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어요.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할 때는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려고 동영상을 제작했고요. 어떤 일을 하든 적당히 하지는 않아요. 그런 시간에서는 남는 게 없어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후회가 없습니다.
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책, <꾸준히, 오래, 지치지 않고>를 읽고 오늘도 배웁니다.
계속 시도하고 실패에서 배우면서 꾸준히 가는 삶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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