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첫째날 오후에는 나하 시내를 돌아다녔고요. 둘째날 아침에 일어나 슈리성으로 산책을 갑니다. 하필 태풍이 온다네요. 오전 10시부터 비 예보가 있어요. 그럼 비 오기 전에 일찍 나갔다 와야지 하고 6시에 출발합니다. 편의점에서 전날 사놓은 유부초밥이랑 컵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는데요. 라면 물 끓이는 급탕기의 버튼을 눌러도 물이 안 나옵니다. 아래에 보니 '로크 해제'라는 버튼이 따로 있네요. 일본어로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공부한 덕에 글자를 읽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나중에 보니 숙소에서 챙겨둔 안내책자에 영어로 전기 포트 사용 설명서가 있네요. ^^)
모노레일에 타니 책읽는 이들이 많습니다. 한 손으로 들고 읽을 수 있는 조그만 문고판책도 많네요. 사이토 다카시 저자는 얇은 책을 쓰는 걸 즐긴다고 합니다. 도쿄에서 오사카 가는 신칸센 안에서 한번에 다 읽을 수 있는 책, 2~3시간이면 다 읽는 그런 책이요. 한손에 들고 읽을 수 있는 책, 좋네요. 다음에는 저도 얇고 가벼운 책을 써봐야겠어요.
슈리성은 8시 30분에 문을 여는데요. 저는 7시에 도착했어요. 일단 성곽 외벽 돌담길을 따라 걷습니다. 한양도성 순성길과 비슷하네요.
근처에 있는 긴조초 이시다타미미치 金城町の石畳道, 긴조초 돌길을 찾아갑니다.
일본의 아름다운 길 100선으로 꼽힐 만큼 예스런 정취와 풍광이 뛰어난 돌길이라고요. 16세기 초 류큐의 슈리성과 귀족들이 살았던 긴조초 지역을 연결하던 석회 길이었어요. 건설 당시에는 총 10km에 달하는 긴 길이 었지만 지금은 약 300m 정도의 돌바닥길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로치면 북촌마을 같은 곳일까요? 궁궐 근처에 양반들이 살던.
돌담과 돌길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 저 시절에는 정말 사는 게 힘들었겠다.'
그 옛날 이 많은 돌을 나르고 쌓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야, 모양이 안 맞잖아 딴 거 가져와봐." "평평한 면이 위로 오게 해야지. 이렇게 뾰족한 면이 위로 오면 돌부리에 걸려서 사람들이 넘어지잖아. 죽을래? 잘 맞춰봐!"
저는 저 시절에 태어났으면 일 지지리 못한다고 구박 엄청 받았을 것 같아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현대에 태어나서 다행이에요. 그 시절에는 그냥 아버지의 직업을 대부분 물려받았지요. 아버지가 석공이면 아들도 석공, 아버지가 왕이면, 아들도 왕... 참 불공평한 시대...
그 시절 빨래터였을까요? 물가에 앉아서 허리를 숙이고 옷을 빨고 말렸지요. 요즘 저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보살님 같아요. 힘든 노동을 대신해주시는... 길도 요즘은 돌이 아니라 아스팔트로 내고 커다란 기계 롤러로 평평하게 밀어버리지요. 기계가 사람을 대신해 일하는 건 확실히 문명의 발전입니다.
여기는 가나구시쿠무라야 金城村屋라고요. 이시다타미미치 중간쯤에 위치한 무료 휴게소로, 마을의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너무 이른 시간에 가서 문이 닫혀있는데요. 2016년에 아버지를 모시고 이곳에 앉아 잠시 쉬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참고로 구글 지도에서 한글로 검색이 안 될 때는 여행가이드 전자책에서 한자를 복사해 붙여봅니다. 그럼 떠요. (검색하실 때 참고하시라고 한자 이름도 적어둡니다.)
슈리성은 한자로 首里城, 머리 '수'자를 씁니다. 한 나라의 수도를 首都, 영어로 Capital city라고 하지요. 즉 류큐왕조를 다스리던 왕이 살던 곳입니다. 엄연한 궁궐이었던 거죠.
오전 8시 30분이 되면 수문장들의 개문 행사가 있어요. (대단한 퍼포먼스가 있는 건 아니고요. 그냥 정갈한 손님 맞이...)
류큐왕조의 번성을 보여주는 세계문화유산
슈리성 공원 首里城公園
슈리성 공원에는 류큐 왕이 살던 성을 비롯해 역사 유적지가 많다. 1406년, 류큐왕조가 들어서면서 슈리 지역은 약 470년간 류큐의 중심이었다. 인구약 17만 명의 작은 왕국이었던 류큐는 중국, 일본 등과의 중계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는데, 그 찬란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곳도 역시 슈리성이다. 나하시 에서 반드시 가보아야 할 문화유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류큐왕국의 개성과 아름다움이 응축되어 있어 일본의 다른 성과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맑은 날에 보면 붉게 불타오르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 옻칠한 외관과 용이 새겨진 기둥은 일본 본토보다는 중국의 영향을 더 받은 듯하다. 성 내부의 금빛 옥좌는 류큐왕조의 번영을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다. 슈리성 꼭대기는 나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고의 뷰 포인트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1945년 오키나와 전쟁으로 슈리성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이후 복원작 업을 거쳐 지금의 슈리성 공원이 완성되었고, 슈리성 공원 내의 슈리성 터는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2019년 10월 큰 화재로 정전을 비롯해 8곳이 소실되었고, 현재는 2026년까지 복원을 목표로 소실된 시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슈리성의 복원 사업은 ‘보이는 복원’이라는 주제로 슈리성 복구의 진행 과정을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키나와 홀리데이 : (2023-2024 최신판)> (인페인터글로벌 저)
2016년에 아버지를 모시고 슈리성 궁궐 내부를 걸었는데, 화재로 전소되었다니 안타깝습니다.
지금은 복원 작업을 볼 수 있습니다.
목조 가옥을 어떻게 짓는지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어요.
공사하는 장면을 굳이 돈내고 보나 싶었는데, 가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궁궐을 짓는 장면을 볼 기회가 잘 없잖아요. 커다란 공사장 가림막 뒤에 있다가 어느날 짠하고 다시 나타나는데요. 이렇게 조금씩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인생에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믿거든요.
영상관에서 자료 화면을 통해 예전의 모습과 복원 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슈리성 입장요금은 어른 400엔, 고교생 300엔인데요. 모노레일 패스 소지자는 할인을 적용해 320엔에 들어갑니다. 모노레일 1일 패스, 여러모로 이득이에요.
<단박에 한국사>라는 책을 보면, 청나라의 조공국이던 류큐국을 1800년대 후반, 청일전쟁이 끝나고 일본이 뺏았답니다. 수백년 동안 독립 왕조를 유지했던 오키나와이기에 성도 있고 궁궐도 있어요.
전망대에 올라 성을 조망합니다. 9시가 넘어가니 본토에서 온 수학여행단으로 북적거리기 시작해요. 그렇지요, 우리도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듯 일본의 고교생들은 여기로 오겠네요.
자, 제가 짜본 오키나와 4박5일 추천 일정은요.
첫날 도착하고 오후에 국제거리와 시내를 걷고요. 둘째날, 셋째날은 게라마 제도로 섬 여행을 가고, 마지막날 오전에 슈리성을 본 후 오후 비행기로 귀국하는 일정입니다. 그럼 둘째날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아름다운 게라마 제도로 배타고 가는 거지요. 그 이야기는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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