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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날라리 영화 감상문

에일리언 대 트위스터스 : 속편들의 흥행 대결

by 김민식pd 2024. 9. 4.

지난 주말 동안 두 편의 영화를 이어 봤습니다. 토요일에는 <에이리언 : 로물루스>, 일요일에는 <트위스터스>. 둘 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의 속편들이거든요. 에이리언 시리즈 중 최고 작품은 제임스 카메론이 연출한 <에이리언 2>입니다. 원제는 <Aliens> 1탄에서는 후반부가 되도록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던 에이리언이 2탄에서는 떼로 나와 해병대와 우주 전쟁을 벌입니다.

1탄이 SF라는 장르로 변주한 우주 공포물이라면 2탄은 전쟁 액션 영화입니다. 1편을 통해 우주 괴물의 정체는 다 드러났어요. 2편에서는 물량공세를 퍼붓습니다. <에이리언 2>로 1탄보다 더 큰 흥행 성적을 거둔 제임스 카메론은 훗날 <터미네이터 2>를 들고 나와, 속편으로 대박을 내는 재주를 계속 선보입니다. <터미네이터> 1탄이 저예산 독립영화였다면, 2탄은 헐리웃 영화 기술의 총화를 보여주는 액션 블록버스터였거든요. <에이리언 2>가 흥행한 덕분에 제작비를 넉넉하게 동원할 수 있었고, 이 영리한 감독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SF 영화의 걸작을 만들어냈습니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새로운 감독을 만날 때마다 장르의 진화를 이룩합니다. 1탄이 공포 영화, 2탄이 전쟁 영화라면 신예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맡은 3탄은 SF 느와르였고, 장 피에르 주네가 만든 4탄은 비주얼이 독특한 영화였습니다. 4탄의 각본을 쓴 신인 작가 조스 웨던은 훗날 <어벤져스>를 성공시켰으니 <에이리언> 시리즈는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등용문이었던 거죠.

영화 <트위스터>는 1996년 작인데요. 1994년에 키애누 리브스, 산드라 블록 주연의 <스피드>를 만든 당대의 흥행사 얀 드봉 감독이 만들었습니다. 네덜란드 출신인 얀 드봉 역시 흥행 성적을 올리니까, 바로 대작 제의가 들어오고요, 당시로서는 시청각적 스펙터클의 최대치인 <트위스터>를 만들어냈어요.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에이리언 : 로물루스>는 볼까 말까 조금 고민했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평이 호불호가 갈리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영화는 그냥 OTT로 나중에 볼까, 했는데요. 감독 이름을 듣고 달려갔습니다. 페데 알바레즈는 제가 좋아하는 공포 영화 <맨 인 더 다크>의 감독이거든요.

<맨 인 더 다크>는 독특한 영화입니다. 혼자 사는 눈 먼 노인이 집에 현찰을 잔뜩 보관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좀도둑 3인조가 눈 먼 노인을 털려고 갔다가 봉변 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불량 청소년 3인방에게 당하게 될 눈 먼 노인이 불쌍한데요. 나중에는 그 악당 3인조가 훨씬 더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알고보니 그 노인은 엄청난 전투력을 가진 악당이었거든요. 온 집안을 캄캄하게 만들어놓고 제 세상인양 활개치고 다니며 도둑들을 사냥합니다.   

<에이리언 : 로물루스>는 우주판 <맨 인 더 다크>입니다. 불량 청소년 몇몇이 버려진 우주 함선을 털러 가는데요. 비싼 부품을 훔치려고 우주선에 들어갔다가 끔찍한 악당(네, 바로 에이리언이지요.)을 만나게 됩니다. 에이리언이 우주선을 활개치고 다니며 도둑들을 사냥한다는 점에서는 구조가 똑같네요. <맨 인 더 다크>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저는 보다가 씩 웃었어요. '이건 감독의 자기복제인가, 셀프 오마주인가?'

<트위스터스>의 연출을 맡은 건 한국계 미국인 감독 정이삭 감독입니다. 네, <미나리>로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분이지요. <트위스터스>는 28년만의 속편입니다. <에이리언>과 달리 <트위스터>는 왜 그동안 속편이 없었을까요? 재난 영화는 캐릭터가 아니라 스펙터클이 주인공이기 때문이지요. 에이리언에서는 우주 최강의 빌런 캐릭터가 있으므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합니다. <트위스터>는 굳이 시리즈물이 아니라도 누구라도 비슷한 폭풍을 소재로 한 재난영화를 만들 수 있어요. <퍼펙트 스톰>이나 <지오스톰>처럼.

8월 14일 같은 날 개봉했지만, 한국에서의 흥행은 <에이리언 : 로물루스>가 더 앞서가고 있어요. 9월 1일 현재 150만 대 50만. 관객수가 3배 정도 차이가 나네요. 왜 그럴까요? <에이리언>은 오랜 세월, 끊임없이 신작을 내놓으며 새로운 팬들을 영입해 왔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둘 다 강추입니다. 딱 한 편만 봐야 한다면 대중의 선택을 믿고 <에이리언 : 로물루스>를 보세요. 에이리언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테니까요. 평생토록 극장에서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이어갈 수 있어요. 다만 시간이 되신다면 두 편 다 보시는 편을 권합니다. <트위스터스>도 미국에서 흥행 1위를 기록할 만큼 재미난 영화니까요. 

저는 <에이리언 : 로물루스>를 보면서 헐리우드가 살아남는 법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1979년에 에이리언 1탄이 개봉했으니 가장 오래된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40년 넘게 이 영화가 명맥을 이어가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항상 새로운 피를 수혈합니다. 매 영화마다 다른 감독을 선임하고요, 그의 색깔이 충분히 드러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줍니다. 그러기에 매 시리즈마다 색깔이 다른 영화가 나오지요. 4탄을 만든 장 피에르 주네는 프랑스 감독이고요, 이번 영화를 연출한 페데 알바레즈는 우루과이 출신입니다. <트위스터스>는 한국계 정이삭 감독의 첫 블록버스터 도전작이고요. 90년대에는 유럽의 많은 감독들이 헐리우드로 입성을 했는데 이제는 남미와 아시아 감독들의 진출도 이어집니다. 결국 창의성은 자율성과 다양성에서 만들어지거든요.

인생을 살면서 에이리언 같은 강적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드라마 연출가로 일할 때, 답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신인 시절의 제임스 카메론과 데이비드 핀처를 생각했어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성공시킨 시리즈의 후속편을 맡았을 때, 신인 감독이 느낀 부담은 얼마나 컸을까요? 마치 우주선 안에 침입한 에이리언 성체를 마주한 것 같은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신인들은 주눅 들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살려냈습니다.

페데 알바레즈는 어려서 에이리언 시리즈를 즐겨 보았답니다. 커서는 공포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이 되었고요. 자신에게 에이리언 신작 연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장기를 살려 재미난 영화를 만들어냅니다. 덕분에 저는 간만에 극장에서 가슴을 졸이며 영화에 몰입했고요, 막판에는 혼자 물개박수를 쳤어요. 사람의 실력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계속 할 수 있는 데서 나옵니다. 

최강의 악당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전의 성공방식을 베끼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최강의 악당이 아직 버티는 이유는 기존의 해법이 안 먹혔기 때문이거든요. 정답이 없을 땐, 일단 나만의 답을 찾아봅니다. 먹히거나 말거나, 일단 내가 좋아하고, 꾸준히 해왔고, 잘 하는 걸로 승부합니다. 답은 거기에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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