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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날라리 영화 감상문

한번 악동은 영원한 악동

by 김민식pd 2022. 5. 16.

5월 5일, 친구에게 톡이 왔어요.

"민식형님, 닥터스트레인지 방금 봤는데요. 잼있어요. 강추합니다. 호러물이에요. ㅎㅎ"

톡을 보고 의아했어요. 마블 영화가 어떻게 호러물이 될 수 있지? 극장으로 달려갔지요. 영화를 보면서, "아니, 왜 닥터 스트레인지를 가지고 공포 영화를 만든 거야?" 했어요. 그러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 이름이 뜨는 순간, '헐!'했어요. 감독이 샘 레이미군요. 

저는 영화를 보기 전에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 관련 정보는 전혀 보지 않고 극장에 갑니다. 영화를 볼까 말까 망설일 때는 검색을 하죠. 제작자도 살피고, 각본가나 감독의 전작을 뒤져보고 저랑 취향이 맞는지 따져봅니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의 후속편이라면, 묻고 따질 것 없이 극장으로 달려갑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의 감독이 공포 영화의 거장, 샘 레이미 인 걸 까마득히 모르고 갔어요. 그러니 영화를 보는 내내, '아니, 왜 마블 영화를 이런 식으로 만든 거야?' 한 거죠.

DC 코믹스는 배트맨의 영화화를 헐리우드의 악동 팀 버튼에게 맡깁니다. 1989년의 <배트맨>은 그래서 히어로물이면서도 팀 버튼의 기괴한 상상력이 가미된 걸작이었지요. 그걸 본 걸까요? 2002년 마블 코믹스는 스파이더맨의 영화화를 새로운 할리우드의 악동, 샘 레이미에게 맡겨요.

레이미는 10대 때 이미 아마추어 배우들과 감독들의 모임에서 활동했고요.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문학, 역사학, 인류학을 공부하다 학업을 때려치우고 중퇴합니다. 고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프로덕션을 만들어 본격적인 장편 데뷔작 <이블 데드>를 만들지요. 저예산으로 만든 좀비 영화는 미국 B급 영화 마니아들에게 폭풍 같은 인기를 얻습니다.

저예산 감독이 대작 영화를 연출하는 예는 많습니다. 피터 잭슨도 데뷔작은 <고무인간의 최후>라는 저예산 SF 영화였지요. 그런 그가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 보여준 스케일은 압도적입니다. 적은 돈으로 상상력을 쥐어짜며 영화를 만든 이들에게 막대한 예산을 쥐어주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거죠. B급 영화 감독이던 샘 레이미는 <스파이더맨>3부작을 성공시키고요. DC코믹스의 그늘에 가려있던 마블 코믹스가 영화계로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계기를 만들어줬지요. 

이제 <어벤져스> 시리즈로 승승장구하게 된 마블이 옛 신세를 갚았어요.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연출을 맡긴 거죠. 

예순 다섯 살의 감독, 무려 9년 만에 연출로 복귀한 것인데요. 이번 영화를 만든 자세는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만들 때와는 많이 달라요. 스파이더맨을 만들 때는 스튜디오의 눈치를 살피느라 그랬는지, 호러물의 색깔은 드러내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블록버스터 히어로물의 공식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었지요.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대놓고 호러 연출을 했어요. 마블 영화의 팬으로서는 조금 아쉬워요. 무엇보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성격이 너무 어두워진 게 좀 아쉽네요. 

하지만... 감독이 샘 레이미라니... 이해는 갑니다. 젊어서는 회사의 눈치를 살피며 일하던 이가, 이제 은퇴하고 쉬는데 불러서 일을 주니, 마음껏 자신의 색깔을 드러낸 거죠. 

 

흠...

저도 샘 레이미처럼 살고 싶어요.

젊어서는 저예산 영화 감독, 늙어서는 블록버스터 감독... 이 되겠다는 게 아니라...

젊어서는 돈을 아끼며 짠돌이로 살고요. 나이 들어서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는 거죠. 

나이 들어서는 세상 눈치 안 보고, 자신의 취향에 충실하게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마블 팬으로서는 조금 아쉬운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였습니다.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이후로 조금씩 내리막을 걷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그럼에도 다음 마블 영화가 개봉하면, 또 묻고 따지지도 않고 극장으로 달려가겠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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