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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발견 모드와 방어 모드

by 김민식pd 2024. 9. 6.

<불안 세대 :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최근에 여러 매체에서 소개되고 있는 책입니다. 저는 페이스북에서 지인들의 추천으로 처음 읽기 시작했고요. 한겨레 신문 양선아 기자님의 글을 읽고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요즘 하고 있는 고민을 다룬 책입니다.

저는 15년 전부터 중고등학교 진로 특강을 다녔습니다. 아이들에게 방송인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려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진로 특강을 다니는 일이 즐겁지가 않아요. 아이들의 집중력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느껴서 그래요. 특히 코로나 이후에 수업 시간에 드러누워 잠을 자거나, 딴 짓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졌어요. 우울증을 앓는 청소년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조금씩 체감하고 있어요. 세상은 갈수록 더 좋아지는데, 왜 아이들의 삶은 힘들어지는 걸까? 이 책을 읽고 이마를 쳤어요. 아, 이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구나.

미국에서 청소년 중에 불안과 우울증, 자해, 자살 비율이 이전 세대에 비해 크게 증가했습니다. 불안과 우울증, 자해 급증은 남자아이들보다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고, 그중에서도 사춘기 직전의 여자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였습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십대의 사회생활은 대체로 소셜 미디어, 온라인 비디오게임, 그 밖의 인터넷 기반 활동에 계속 접근할 수 있는 스마트폰으로 옮겨갔습니다. 이 아동기 대재편이 2010년대 초에 시작된 청소년 정신 질환 급증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요.

책에서 저자는 1996년 이후에 태어난 아동이 '불안 세대'가 되고 있다고 하고요, 그 주요 원인이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와 가상 세계의 과소 보호, 이 두 가지라고 말합니다. 어렸을 때 저는 시골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자라났는데요. 언젠가부터 길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도시라는 공간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고요. 부모들이 아이들을 과잉보호하면서 방과후 시간에 자유로운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어요.

아동기는 자신의 문화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학습하는 기간입니다. 어린 시절 아이들은 자유로운 놀이를 통해 신체적 기술뿐만 아니라 갈등 해결 같은 사회성 기술을 발달시킵니다. 아이는 놀이를 통해 연결하고 동기화하고 차례를 지키는 법을 배웁니다. 

사람은 두 가지 모드를 오가며 살아갑니다. 발견 모드와 방어 모드.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인류의 진화를 좌우한 환경은 안전하고 자원이 풍부한 시기 다음에 결핍과 위험, 가뭄과 기아가 닥치는 시기가 반복되면서 변동성이 매우 심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 두 가지 환경에서 잘 살아남으려면 심리적 적응이 필요했어요. 

발견 모드는 굶주리다가 잘 익은 열매가 가득한 나무를 갑자기 발견한 경우처럼 기회를 포착할 때 작동합니다. 무리 전체가 긍정적 감정과 공동의 흥분에 휩싸이고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하며, 모두가 당장 달려들 준비를 합니다. 그렇게 몰려들어 열매를 따고 있는데 가까이에서 표범의 포효 소리가 들려오는 경우처럼 위협을 감지할 때엔 방어 모드가 작동합니다.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몸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흘러넘치면서 식욕이 뚝 떨어지며, 위협의 정체를 확인하고 도망갈 방법을 찾는 데 온 신경을 쓰게 됩니다. 발견 모드, 방어 모드, 둘 다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심리적 기제인데요. 어릴 때 어떤 모드가 되느냐에 따라 평생의 성격이 만들어집니다.

발견 모드로 살아가는 사람은 더 행복하고 사회성도 더 높으며, 새로운 경험에 더 열린 태도를 보입니다. 반대로 거의 항상 방어 모드로 살아가는 사람은 더 방어적이고 더 불안해하며, 안전하다고 지각하는 순간이 드뭅니다. 만성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방어 모드가 만성적으로 작동합니다. 이들은 새로운 상황과 사람, 개념을 기회보다는 잠재적 위협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어요. 

상습적 조심성은 옛날의 일부 환경에서는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된 적응이었고, 오늘날에도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에게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어 모드에 갇혀 있으면 오늘날 선진국의 대다수 아동이 누리는, 신체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학습하고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아동기를 거치면서 기본 설정이 발견 모드에 있는 학생은 대학교의 풍부한 지적, 사회적 기회에서 큰 이익을 얻으며 빠르게 성장합니다. 반면에 대부분의 시간을 방어 모드로 보내는 학생은 배우는 것도 적고 성장도 느립니다. 미국 대학가에서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이 있어요. 언젠가부터 대학교 심리 상담 센터들이 분주해졌습니다. 발견 모드로 살아가던 이전 세대 학생들의 풍요로운 문화는 방어 모드로 살아가는 요즘 학생들의 더 불안한 문화로 대체되었어요. 2010년에 거의 또는 아무 논란도 야기하지 않던 책과 단어, 강연자, 개념이 2015년에는 유해하거나 위험하거나 정신적 외상을 야기한다고 이야기되었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놀이 중심의 아동기가 스마트폰 기반의 아동기로 재편한 변화가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애리조나사막에서 거대한 실험이 진행되었습니다. 닫힌 인공 생태계를 만들려는 사상 최대 규모의 시도였지요. 화성 탐사를 앞두고 우주 공간에서 자급자족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습니다. 영화 <마션>에 보면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감자를 길러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그 실험을 통해 과학자들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림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심었던 나무 중 많은 것은 빨리 자랐지만, 충분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기 전에 쓰러지고 말았다. 설계자들은 어린나무가 제대로 자라려면 바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바람은 나무를 휘게 만드는데, 그러면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 있는 뿌리 부분이 끌어 당겨지면서 반대 방향에 있는 나무 부분이 압축된다. 뿌리계는 이에 대한 반응으로 필요한 곳에 더 단단한 닻을 제공하려고 팽창하며, 압축된 나무 세포들은 구조가 더 튼튼하고 단단하게 변한다.’

어릴 때 강한 바람에 노출된 나무는 다 자랐을 때 훨씬 강한 바람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보호받는 온실 환경에서 자란 나무는 다 자라기 전에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다치면서 자랍니다. 어른들의 과보호 속에서 요즘 아이들은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단단하게 성장할 기회를 잃어갑니다.

‘아이를 좌절과 나쁜 영향과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보호하면서 만족의 거품 속에서 키우길 원하는 부모는, 비록 좋은 의도로 그러겠지만 실제로는 아이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그런 양육 방식은 아이가 역량과 자기 통제, 좌절감에 대한 내성, 감정적 자기 관리를 발달시킬 기회를 차단할 수 있다. 여러 연구에서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는 방식’이나 ‘헬리콥터 양육’은 훗날의 불안 장애와 낮은 자기 효능감, 대학교 생활 적응의 어려움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란 아이가 방어 모드에 머무는 청소년이 되기 쉬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어 모드가 되면 덜 배우고, 가까운 친구도 적으며, 불안을 더 많이 느끼고, 일상적인 대화와 갈등에서 고통을 더 많이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와 강아지는 스릴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이들은 스릴에 굶주려 있으며, 어린 시절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발견 모드가 기본 설정이 되도록 뇌를 연결하려면 스릴을 경험해야 한다.’

저를 성장시킨 단 하나의 경험을 꼽으라면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 떠난 자전거 전국 일주를 들고 싶습니다. 모두가 힘들고 위험하다고 말릴 때 오로지 혼자 꿋꿋이 밀고 나가 선택했고요. 13명이 출발했고, 한계령을 자전거로 넘어 종점인 임진각에 도착했을 때 완주자는 네 명밖에 남지 않았어요. 완주자가 되고 저는 나 자신을 긍정하게 되었어요. '아, 나도 마음 먹은 일이 있으면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구나.'

학창 시절 자전거를 타다 심하게 다쳐 얼굴에 열 바늘 정도 꿰매는 수술도 받았지만, 자전거 여행은 제 평생의 취미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는 배달 오토바이에 부딪혀서 한 달 정도 절뚝거리며 걸어야 했지만, 아직도 저는 자전거를 타요.

저는 평생을 발견 모드로 살아갑니다. 자전거를 타고 내 두 다리로 세상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그래서 유럽 여행 중에도 자전거를 빌려 도시에서 도시를 오갔지요. 아이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건 중요하지만, 과잉보호 속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너무 약하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요?

저자는 어린 시절, 놀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데요, 그 중요한 놀이 기반의 아동기가 스마트폰 기반의 아동기로 재편해버렸어요. 다음 편에서는 스마트폰이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이야기를 해볼게요.

책의 대략적인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불안 세대>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양선아 기자님의 리뷰 기사를 보셔도 좋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52950.html


 

스마트폰·SNS에 망가진 아동기…불안·우울증 대폭 늘었다 [책&생각]

불안 세대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이충호 옮김 l 웅진지식하우스 l 2만4800원 ‘트렌드 코리아 2024’가 선정한 올해 열쇳말 가운데 ‘도파밍’이

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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