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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프라도 미술관 기행

by 김민식pd 2024. 8. 21.

예전에 스페인으로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고 차를 빌려 남부 스페인으로 가서 알함브라의 궁전이 있는 그라나다와 주위 도시를 도는 일정이었지요. 그때 무척 고민했던 게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를 갈까 말까 였어요. 스페인이 워낙 넓어서 마드리드까지 가려면 꼬박 이틀을 이동에 써야 하거든요. 그때 누가 물었어요. "축구 좋아해요?" "아니요?" "애들이 그림 보는 거 좋아해요?" "아니요?" "그럼 마드리드는 거르셔도 됩니다."

제가 2023년 2월에 마드리드 갔다가 그 분의 조언이 꿀팁이었다는 걸 실감했어요.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거나, 프라도 미술관을 볼 게 아니라면 마드리드에서 딱히 볼 건 없는 것 같아요. 바르셀로나와 안달루시아 지방 여행이 훨씬 더 재미있어요. 여긴 그냥 스페인 왕실의 도시.

책을 뒤져 찾아간 곳이 산 안토니오 데 라 플로리다 성당인데요. 고야의 판테온으로 불리는 천장화가 원본 그대로 남아 있는 곳입니다. 내부 사진 촬영 금지라 그림을 찍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코너마다 거울을 설치해 천장화를 다각도에서 더 편하게 감상할 수 있게 한 건 아이디어입니다. 그 시절의 천장화는 예술가에게 주어진 블록버스터 제작의 기회였을 것 같아요. 스케일과 디테일로 보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다음 날 아침에 프라도 미술관에 갑니다. 음, 이곳을 보려고 마드리드에 왔어요. 

세계 3대 미술관이라 그런지 겨울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보네요. 2월이지만 많이 춥지는 않아요. 

Museo Nacional del Prado
스페인 왕실에서 수집한 미술품을 바탕으로 세운 미술관이다. 소장 작품 수나 그 규모가 유럽에서도 손꼽히지만, 무엇보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벨라스케스, 고야, 엘 그레코, 무리 요, 반 다이크, 히에로니무스 보스 등 거장의 작품들이 크고 작은 방을 오갈 때마다 발길을 멈추게 하니 여유롭게 둘러보자.
주요 작품을 꼽자면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Velázquez 의 <시녀들 Las Men inas >, 프라 안젤리코 Fra Angélico 의 <수태고지 La Anunciación >, 히에로니무스 보스 Hieronymus Bosch 의 <쾌락의 정원 El Jardín de las Delicias >, 엘 그레코
El Greco 의 <삼위일체 La Trinidad >,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Goya 의 <옷 입은 마하 La Maja Desnuda >와 <옷 벗은 마하 La Maja Vestida >,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Saturno Devorando a un Hijo > 등이다. 라파엘 Rafael Sanzio , 티치아노 Tiziano Vecellio , 무리요 Bartolomé Esteban Murillo 의 작품도 만나 볼 수있다. 미술관 입구 층(0층)에 있는 고야의 <검은 그림들 Pinturas negras > 또한 놓치지 말자. 고야가 말년에 마드리드 근교의 귀머거리 집에서 지내며 벽에 그렸던 14점의 검은 그림이다. 궁정화가로 활동할 때의 그림들과 전혀 다른 현대미술가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 작품들이다.

<스페인 셀프트래블> (김은하)

내부 촬영 금지라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유명한 작품들이 정말 많아요. 그림을 잘 몰라서 그냥 보면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하고 그냥 넘어갈 것 같았어요. 이럴 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어떤 그림을 보면 좋을까? 또 책의 도움을 얻습니다. <나를 설레게 한 유럽 미술관 산책>에 프라도 미술관이 소개된 장을 읽어요. 네, 저는 혼자 여행 다니며 계속 책을 읽습니다.

'스페인 고전 회화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벨라스케스와 고야. 그들은 스페인 왕들의 총애를 받던 화가들이다. 벨라스케스는 겨우 20대에 당시 최고의 영예인 궁정 화가가 되었고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그보다 조금 늦은 나이인 40대에 거장으로 인정받은 고야 역시 왕실 소속 화가가 되었다. 그들의 주된 임무는 주로 왕과 왕비, 공주를 비롯한 왕실 가족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당시에 왕 혹은 교황의 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은 당대 최고의 화가에게 주어지는 일이었다. 물론 두 사람은 공식적인 작업 외에 개인적인 작업에서도 걸출한 성과를 냈다.

입구에 붓과 팔레트를 들고 멋진 모습으로 앉아 있는 조각상은 바로 벨라스케스의 모습이다. 그래서 먼저 가보는 곳도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년~1660년)의 방이다. 많은 그림이 있는 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시녀들>이다. 높이가 3m가 넘는 이 거대한 작품은 그림의 제목만으로는 왕궁의 시녀들을 주인공으로 그린 것 같다. 물론 시녀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 중앙에는 당시 펠리페 4세의 딸인 공주가 있다. 그래서 원래의 제목에는 ‘공주’라는 단어도 들어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주 좌우의 인물들이 일반적인 시녀들이고, 화면 오른쪽의 작은 사람들은 당시 궁정에 많이 있던 난쟁이들이다(한편 이들을 그린 벨라스케스의 난쟁이 시리즈는 이들의 인간으로서의 위엄까지 잘 표현한 걸작들이다). 앞에 앉은 개를 차는 인물이 일종의 보디가드 역할을 하던 난쟁이고, 그 옆의 여자 난쟁이는 수행시녀였다. 그런데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보통 왕실의 초상화에는 이렇게까지 개인적인 공간, 그러니까 왕족이 시녀들, 난쟁이들, 거기다 개까지 같이 있는 그림은 잘 찾아볼 수 없다. 당신은 이런 왕실 가족을 그린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기껏해야 잔뜩 위엄을 부리며 서 있거나, 왕좌에 앉아 있거나 아니면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던 벨라스케스라서 가능했던 그림이다.'

<나를 설레게 한 유럽 미술관 산책>

 

프라도 미술관에는 스페인이 한때 잘 나가던 시절에 모은 작품들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아예 재능이 뛰어난 화가들은 궁정화가로 삼아서 그들의 모든 작품을 왕실 소유로 만들어버립니다. 이게 예술가 입장에서도 괜찮은 조건이었던 것 같아요. 먹고 사는 데 걱정은 없으니 자유롭게 창작의 날개를 펼칠 수 있었던 거죠. 그러다보니 <시녀들>과 같은 파격적인 작품도 나오는 거지요. 

가장 충격적인 그림은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누가 돈 주고 살 것 같지 않은 그림이에요. 저렇게 무서운 그림을 누가 거실에 걸어놓겠어요. 이 장면이 우리가 아는 그리스 신화의 시작이지요. 로마 신화의 사투르누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크로노스고요. 하늘의 남신인 우라노스와 땅의 여신인 가이아 사이 태어난 최초 12명 티탄족 신 가운데 막내입니다. 아버지 우라노스가 크로노스의 형제를 감금하는 악행을 저지르자, 크로노스는 이를 응징하려고 자신의 어머니 가이아와 함께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신들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신도 자식들에게 쫓겨날 것을 두려워해서 자식이 태어나는 족족 잡아먹습니다. 그 장면을 그린 그림이에요. 눈에 서린 공포와 슬픔이 있어요. 자신이 살기 위해 자식을 먹는 아비의 비극. 그리스 신화를 보면 이를 보다 못한 아내가 갓 태어난 제우스 대신 돌덩이를 포대기에 싸서 주고 그 덕에 제우스는 목숨을 건지고요. 나중에 아버지를 몰아내고 올림포스의 왕이 되지요. 

이 그림을 보고 저는 창작자의 고통을 떠올렸어요. 작가 지망생은 극본 공모전에 대본을 내고, 피디 지망생은 신입 PD 공채에 기획안을 냅니다. 그러고 탈락의 고배를 맛보아요. 자, 이제 내가 그린 대본과 내가 쓴 기획안을 부정해야 합니다. 비록 내 자식이지만 비통한 심정으로 그걸 극복해야 해요. '아니 이렇게 잘 쓴 글/기획안을 왜 안 뽑아주는 거야?'라고 하면 성장이 없어요. 내 자식을 부정하는 심정으로 꼼꼼히 살피고 무엇이 부족한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합니다. 저는 그게 마치 비통한 표정으로 자식을 삼키는 사투르누스와 같다고 생각했어요. 창작자의 고통이지요. 

많이 그리는 게 중요할까요, 잘 그리는 게 중요할까요? 프라도 미술관을 돌아보고 제가 느낀 점, 질은 양에서 나옵니다. 다른 미술관에 가면 벨라스케스나 고야의 작품 한 두 점을 봅니다. 여기서는 궁정화가로 작업하던 시절 모든 작품을 보는데요. 그 수가 어마어마합니다. 제 눈에 평범해보이는 작품도 많습니다. 애걔? 고야가 이런 그림도 그렸어? 싶은 작품도 있어요.


아주 밝은 분위기의 초창기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매우 어두운 분위기의 말년 작품들도 있습니다. 초상화, 풍속화, 역사화, 풍경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그렸습니다. 그래서 고야는 어느 사조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화가로 불리기도 합니다. 벨라스케스가 바로크 회화의 대가로 불리는 것과는 대조적이지요.


고야의 작품 중에는 <몽둥이를 들고 결투하는 두 사람>이란 그림도 있어요. 18세기 스페인의 어느 지역에서는 몽둥이를 들고 어느 한 쪽이 죽을 때까지 결투를 벌이는 풍습이 있었다고요. 너무 야만적이지 않나요? 불과 200년전인데? 그런데 생각해보니 작년 2월 쿠바로 가기 전 뉴욕에서 본 뮤지컬 <해밀턴>이 떠올라요. 미국의 독립 전쟁 영웅인 해밀턴도 권총 결투 끝에 목숨을 잃습니다. 아, 그래도 우리는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결투를 신청해서 상대를 죽이지는 않는 문명사회에서 살고 있으니 다행이야... 싶다가도, 몽둥이나 권총 결투는 그래도 상대의 얼굴을 보고 싸우는데, 레이저상의 표적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해 시민들의 목숨을 앗는 현대전은 얼마나 더 비정한가 싶기도 하고... 그러네요. 

미술관을 나와 마요르 광장에 갔어요.

독특한 벽화가 인상적인 건물.

1년이 지나서 그런가, 마드리드의 겨울에 대해 기억에 남는 건 프라도 미술관 뿐이로군요.

이제 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로 날아갑니다. 다음 편에서는 다시 만난 하기아 소피아 성당 이야기를 나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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