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피디로 한창 재미나게 일하던 시절, 조연출 후배가 물었어요. “형은 회사 생활 참 즐겁게 하는 것 같아요. 비결이 뭐예요?” 그때 제가 한 대답. “난 빚을 지지 않는단다.” 94년에 첫 직장을 다닐 때 상사가 넥타이 풀고 옥상에 가서 권투 시합을 하자고 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고, 또 저녁에 다니던 통역대학원 입시반 선생님께 상담도 했어요. “제가 지금은 직장 생활을 하며 저녁에 듣는 학원 수업이 공부의 전부인데요. 만약 제가 사표를 내고 하루 24시간 영어 공부에 집중한다면 6개월 후에 있을 통대 입시에서 합격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확률이 반반이라는 말씀을 듣고 사표를 제출했어요.
저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던 대리가 그랬어요. “민식씨, 차량 할부는 어떻게 하려고 사표를 써?” 영업사원은 차량 유지비를 지원해주기에 다들 차를 사거든요. “저, 차를 현찰로 샀는데요.” 누군가 회사에서 괴롭힐 때 달아나려고 하면, 붙잡고 물어요. “아파트 대출은 어떻게 하려고?”
우리는 직장을 다니며 월급의 노예가 아니라 빚의 노예가 됩니다. 월급은 좋은 거예요. 빚이 나쁜 거지. 그래서 평생 빚을 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물론 그 덕에 여러 직장과 직업을 옮겨 다니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었지요. 그러다 나이 50 넘어 깨달았어요. 빚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구나. 자산을 사기 위한 좋은 빚도 있구나. 평생 가져온 나름의 짠돌이 철학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이제는 저축만 하지는 않고요. 투자도 하고 있어요.
정신적 모형을 많이 가질수록 투자에 유리합니다. 심리학자 필 테틀록은 전문가 수백 명에게 정치경제 사건을 예측해 달라고 했고, 그 예측 결과를 추적해봤어요. 예측 결과를 보니 다양한 분야를 조금씩 아는 전문가가 한 분야만 깊이 아는 전문가보다 예측을 잘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다양한 정신적 모형을 많이 가진 사람이 상대적으로 예측을 더 잘한 것이지요.
미국의 억만장자 투자자 찰리 멍거는 정신적 격자모형을 잘 구축해야 투자를 잘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회계와 경제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으로 촘촘하게 짜여진 정신적 격자모형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책을 읽지 않는데도 똑똑한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정말로 단 한 사람도 없다. 여러분은 워런 버핏과 내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는지 안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보니 공부가 나의 가장 큰 자산이었다. 나는 평생을 정신적 격자모형을 투자에 적용하며 살았다. 정신적 격자모형이 정말 투자에 도움이 되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바라보는 판단기준이 하나의 정신적 모형이며, 이러한 정신적 모형을 많이 가질수록 우리는 문제를 더 잘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멍거는 칸트의 정신적 모형을 자신의 투자방식에 적용하여 투자의 대가가 된 것이다. 멍거는 다양한 분야의 핵심 원리를 종합적으로 연결한 자신만의 정신적 격자모형을 통해서 세상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고 투자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멍거는 칸트 철학이 투자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철학을 투자의 무기로 삼다니 놀랍습니다. 심지어 그리스 철학의 시조인 소크라테스까지 스승으로 거론됩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잖아요? 투자자는 자신의 성향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만약에 자신이 머리가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되면 주식보다는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유리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피터 린치(Peter Lynch)는 주식 투자보다 내 집 마련부터 하기를 권했다.
“주식에 투자하기 전에 집 사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집이란 결국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자 하는 좋은 투자이기 때문이다. 집값이 떨어지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99퍼센트의 경우에는 집값이 오른다. 당신은 주변에서 ‘집 투자로 손해봤어!’라고 탄식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대다수 아마추어 투자자들이 주택 투자에는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주택 투자에 천재성을 발휘해 성공한 사람들도 주식 투자에서 바보가 된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시장이 전쟁터라고 생각했을 때, 주식시장과 주택 시장에서 우리가 상대하는 적은 다릅니다. 주택 시장 참가자는 거의 개인입니다.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가 거의 없어요. 반면에 주식시장에는 개인 투자자 말고 기관투자자와 외국인도 참가합니다. 개인과 기관투자자 그리고 외국인이 주식시장에서 경쟁한다면 누가 손해를 볼까요? 엄청난 정보력과 자금력을 갖춘 기관과 외국인이 개인과 경쟁해서 이기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지요. 그러나 주택 시장은 개인간의 경쟁이기에 승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개인에게 주택 투자만큼 돈 벌기 쉬운 투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조언은 인생의 거의 모든 문제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주식뿐만 아니라 부동산도 그렇고, 직업 선택도 그렇고, 사업 선택도 그렇고 인생도 그래요.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하고요. 전략적 사고의 출발점은 바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을 알아야 불필요한 인생의 슬픔과 불행을 피할 수 있습니다.
나에 대한 공부 중 중요한 것은 나의 경쟁 우위가 무엇인지 아는 것인데요.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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