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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의 경제 공부

나의 첫 스승, 에리히 프롬

by 김민식pd 2024. 7. 12.

1987년에 대학에 입학하고 저는 연애를 하고 싶었어요. 중고등학교 내내 사춘기가 되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이 컸는데, 어른들이 연애는 대학 가서 하라고 했거든요. 막상 대학에 들어갔다고 연애가 되는 건 아니더군요. 소개팅, 미팅, 과팅 도합 스무 번 연속으로 차이고 절망합니다. 어떻게 하면 연애를 잘 할 수 있을까, 간절한 마음에 <연애의 기술>이라는 책도 찾아봤어요. 그러다 저의 첫 스승 에리히 프롬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요? 종의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명령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태어나고 싶냐고 물어서 태어난 게 아닙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태어났는데 결국엔 또 죽는답니다. 그럼 우린 왜 태어난 거지? 생명체의 존재 이유가 생존과 번식이라는데 그럼 나도 이성을 만나 나의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어야 하나? 그런데 그 과정은 또 너무 힘들지 않나?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기도 하는데? 연인끼리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데, 이 힘든 연애를 어떻게 하는 거지? 

<사랑의 기술>에서 프롬은 ‘성숙한 사랑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은 주면서 사랑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준다고 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희생할 필요는 없고, 굴복할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주는 것은 고통스러운 포기와는 다릅니다. 오히려 프롬은 “가진 사람보다 가진 것을 주는 사람이 부자”라고 말합니다. 

프롬은 사랑을 하려면 훈련과 집중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집중은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힘들다면 혼자 있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혼자 있으면 자신을 찾을 수 있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으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그 결과로 다른 사람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스무 살의 나처럼 자신감이나 자존감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나를 좋아하고, 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때 저는 프롬의 두 번째 책을 만납니다. 바로 <소유냐, 존재냐>지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소유 양식과 존재 양식.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기 위해서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을 선택한다면 그건 소유 양식의 삶입니다. 우리는 돈을 벌어서 자기가 갖고 싶은 걸 삽니다. 자신이 가진 걸로 나를 표현하려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명품을 구매하고, 더 큰 차, 더 멋진 외모, 남들 보기에 매력적인 애인을 가지려고 하지요. 반대로 존재 양식은 자신의 중심을 소비가 아니라 존재에 둡니다. 무엇을 하나 더 소유하는 대신 하나 더 경험하려고 하고요. 그 결과 내면의 풍요를 누리게 되는 양식이 존재 양식입니다.

소유 중심의 삶에서는 반드시 상실의 아픔을 피할 수 없습니다. 물건, 또는 사람, 지식을 가진다는 것은 그것을 잃어버릴 처지에 놓인다는 뜻입니다. 돈을 갖게 되면 없어지는 걸 두려워하고, 물건을 갖게 되면 낡거나 잃어버리는 걸 두려워하게 됩니다. 물건에서 얻어지는 명예는 일시적입니다. 명품을 구매하지만, 금세 새롭고 더 좋은 명품이 나옵니다. 새로운 물건을 사지만 그것도 역시 일회성입니다. 갖게 되면 더 갖게 되길 원하고, 없는 사람은 투쟁을 통해서 갖기를 원합니다. 이게 사람에게 적용되면 질투가 됩니다. 그래서 소유적 양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투쟁하고 경쟁하며 경계하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존재 양식으로 산다면 타인과 비교하고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니며 글쓰기를 통해 창조의 기쁨을 느낀다면 그러한 활동에는 많은 지식이나 돈과 물건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나의 경쟁 상대는 오로지 과거의 나입니다. 나의 삶의 목적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니까요. 내가 오늘 산 가방은 낡거나 잃어버릴 수 있지만, 내가 오늘 한 독서나 여행의 경험은 오롯이 나 자신의 것이 되고, 누구에게서 뺏거나 빼앗기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가 선택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소유냐, 존재냐, 당신의 선택에 따라 삶이 변화할 수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소유냐 존재냐>는 나의 20대를 바꾼 책입니다. 서울에 올라온 촌놈으로 저는 처음에는 나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서울사람들에게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그들과의 경제적 격차는 줄어들 것 같지 않았어요. 그들은 이미 서울에 집을 소유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소유보다 존재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저들이 나보다 가진 게 많다고 그들을 시샘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다만 나는 어제의 나보다 나라는 존재를 더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존재를 풍성하게 하는 3가지 노력이 독서, 여행, 공부입니다. 도서관을 다니며 1년에 200권씩 책을 읽고 간접 경험을 쌓았고요, 자전거 전국 일주며 유럽 배낭여행을 다니며 직접 경험을 늘렸습니다. 영어를 공부하며 나의 무기도 하나 더 늘렸고요.

공대를 다니며 2학년 1학기 영어 성적 D +를 기록했던 제가 군대에서 혼자 영어를 공부해 복학하고는 전국 대학생 영어 토론대회에 나가 2등상을 탔어요. 제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어요. 비로소 나는 나를 긍정할 수 있게 되었고요. 가진 게 하나도 없어도, 나라는 존재를 풍성하게 만드는 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지요.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게 되니 연애가 쉬워지더라고요.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그 사람을 소유하려고 하는 대신 그의 존재를 온전하게 존중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거다.’ 그게 진짜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훗날 이런 믿음은 <뉴논스톱>을 만들 때 박경림을 짝사랑하는 조인성 이야기나 양동근을 좋아하는 장나라 이야기의 모티프가 되었어요.
 
<소유냐 존재냐>를 읽고 20대 내내 저는 소유보다 존재를 풍성하게 하는 데 최선을 다했어요. 영업 사원도 하고, 통역사도 하고, 소설 번역도 하고, 온갖 일에 다 도전해봤어요. 그랬더니 MBC 피디 시험을 볼 때, 논술이든 면접이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졌어요. 차별화 전략에 성공한 덕에 나이 서른에 가고 싶은 회사에 가고 되고 싶은 직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 소유보다는 존재가 더 윗길입니다.

20대의 저는 소유에 집착하지 않았기에 근검절약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돈을 아끼는 게 즐거웠습니다. 나는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짠돌이가 아니라 존재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멋진 사람이 된 거니까요. 남보다 하나라도 더 가져야 한다는 소비 풍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남은 평생, 소유를 늘리기보다는 존재를 더 풍성하게 하며 살고 싶습니다. 짠돌이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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