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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가마쿠라 수국 꽃놀이 여행

by 김민식pd 2024. 7. 10.

도쿄 근처에 가볼만한 여행지로 하코네는 온천 투어를 하는 곳이고요. 가마쿠라는 역사 기행을 하는 곳입니다. 8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가마쿠라는 작은 교토라고 불리는데요. 거리 곳곳에 역사적인 사찰이나 신사가 즐비하고 볼거리가 많습니다. 도쿄에서 접근성이 뛰어나 당일치기 여행으로 갈 수도 있지만, 저는 그냥 가마쿠라에서 숙소를 잡고 느긋하게 다녔어요.

도착한 첫날 오후에는 에노덴이라는 노상 전철을 타고 에노시마에 다녀왔어요. 

에노시마는 둘레가 5km 남짓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입니다. 해운대 옆에 있는 동백섬 크기 정도일까요?

이 작은 섬에 신사가 있고요.

길 양옆으로 상점가가 있어요.

신사에 오르면 섬 주변 풍광을 볼 수 있어요.

에노시마 이와야라고 해식 동굴도 있어요. (입장료 500엔)

오랜 시간 동안 파도의 침식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동굴입니다. 늘 느끼지만, 시간을 당해내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 강한 바위도 끊임없이 들이치는 파도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뚫려버리니까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가마쿠라 에노덴 1일 패스를 삽니다. 한번 탈 때마다 250엔인가 그런데, 800엔을 내면 하루 온종일 무제한으로 탈 수 있어 여행자에겐 이 편이 낫습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슬램덩크(SLAM DUNK)팬이 모이는 가마쿠라 고교 앞 건널목입니다. 슬램덩크의 배경으로 나온 곳이라고요. 에노덴의 가마쿠라코코마에 역 개찰구를 지나 바로 보이는 곳입니다.

학교로 가는 전철 안에서 바다를 보며 갑니다. 내려서도 바닷길을 걷고요. 여기 학생들이 부럽네요. '니들은 좋겠다 매일 바다를 보며 등교할 수 있어서.'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고토쿠인 대불상.

고토쿠인 高徳院
가마쿠라 하세에 있는 고토쿠인은 대불상으로 유명하다. 가마쿠라 다이부쓰 鎌倉大仏라고도 불리는 이 대불상은 대좌를 포함해 높이가 무려 11.35m에 달하는데 얼굴 길이만 2.35m, 눈의 길이가 1m, 무게는 121t에 달한다고 한다. 원래는 대불전 안쪽에 있었는데 두 차례의 해일 피해로 건물이 붕괴되면서 바깥으로 나오게 됐다고. 몸에 비해 얼굴이 큰 것은 만들어질 당시 송나라풍 불상의 유행을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추가로 50엔을 내면 대불 안에도 들어갈 수 있는데 한 번에 30명 이상 들어갈수 없어 언제나 대기 줄이 긴 편이다.

<도쿄 셀프트래블 (2023-2024) | 김미정,백진수 공저>

내부도 볼만합니다.

오전 8시 이른 시간에 갔더니 사람이 없어 한적하네요. 조용히 명상을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721년에 창건된 하세데라입니다. 고토쿠인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어요.

이 절은 수국이 유명한데요. 입장료 400엔을 냈는데, 수국이 만개한 정원을 보려면 추가 관람료 500엔을 더 내야 합니다. 예전같았으면 그냥 발길을 돌렸을텐데, 요즘은 달라요. 돈을 더 받을 때는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받을 거라 생각하고요.

마침 6월초라 수국이 만개한 시점입니다. 우연히 찾아온 곳에서 발견한 행운이라 생각하고 시주하는 마음으로 500엔을 내고 올라갑니다.

눈 닿는 곳 어디에나

수국이 수북수북

꽃길을 걸어요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오션뷰 템플의 수국 화원.

처음에 티켓 판매소를 보고, 뭐야 절 입장료는 400엔인데, 정원 관람료가 500엔이라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크네? 게다가 일본어로 오지사이라고 적혀 있는데, 저게 뭐지? 싶었거든요.

알고보니 오지사이가 수국.

이렇게 예쁘고 정교한 꽃이 다 있네요.

예전에는 공짜로 보는 것만 보고 다녔어요. 해변, 공원, 건물 외관 같은 것. 이젠 돈내는 것도 아깝지 않아요. 젊어서는 그렇게 다니고, 나이 들어서는 이렇게 다닙니다. 젊어서 돈을 아끼고 모으는 재미를 누렸다면,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쓰는 즐거움도 누리며 살려고요.

오전 9시 반, 거리가 아이들 소리로 소란해집니다. 도쿄가 서울, 오사카가 부산, 교토가 경주라면, 도쿄에서 지하철로 2시간이면 오는 가마쿠라는 수원 화성 같은 거죠. 전철 타고 답사여행 오는 아이들. 한적한 절간이 시끄러워지는 건 순식간입니다. 수학여행 팀이 온 불국사를 생각해보세요.

기차역을 가득 메운 초등학생들.

이래서 저는 일찍 다닙니다. 6시에 숙소에서 출발, 6시 반에 아침을 먹고, 7시에 해변을 산책하고, 8시에 대불상을 보고 8시 반에 하세데라를 본 다음, 아이들이 몰려올 즈음이면 저는 하세역에서 다시 에노덴을 타고 가마쿠라로 갑니다. 이제 겨우 아침 9시 반이에요. 

터키에 있는 로마 유적 에페스 여행 때도 느낀건데요, 현지 수학여행 팀이나 패키지 팀을 따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침 일찍 다니는 겁니다. 여름엔 특히 유용한 여행법. 

이제 쓰루가오카 하치만구 鶴岡八幡宮로 갑니다. 가마쿠라의 상징과 같은 존재로 무인들의 장수를 빌기 위해 1063년 창건된 절입니다.

가마쿠라에서 가장 붐비는 절입니다.

가마쿠라에서는 민박집에서 묵었는데요.

가정집을 숙소로 꾸몄어요. 주인 가족은 같은 동네 다른 집에서 살고요. 원래 아들네가 살던 집인데 도시로 이사를 가서 이 집을 에어비앤비용 숙소로 활용한다고요.

방이 깨끗하고 좋았어요. 

민박집 주인 아저씨랑 전날 저녁에 일본어 회화 공부 삼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가마쿠라에 온 이유를 묻기에 일종의 문학기행이라고 했어요. '작년 12월에 <설국>을 쓴 가와바타 야스나리 선생의 자취를 쫓아 니가타에 다녀온 적이 있다. 작가가 말년에는 가마쿠라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하기에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다'고요. 그랬더니 저더러 메이게츠인을 꼭 가보라고 하더군요. 응? 제가 읽은 가이드북에는 없는 장소였거든요. 그래도 주인 아저씨가 추천해주신 곳이니 찾아가보고 싶었어요. 

구글 지도를 보며 메이게츠인을 찾아가는데요.

중간에 큰 절이 하나 있어 들릅니다. 

휴게실에 영어로 된 가이드북이 비치되어 있어요.

가마쿠라에서 꼭 가보면 좋을 곳, 리스트가 있는데요. 
1. 쓰루가오카 2.호우코쿠지 3. 하세데라 4. 고토쿠인 순으로 나오고요. 

이곳 겐쵸지는 8위이네요. 쓰루가오카는 너무 붐볐는데 여긴 조용하고 여기저기 그늘에 앉아서 새소리 들으며 쉴 수 있어 좋아요.

불법 설문 시간도 있어요. 일본어 청취가 아직 미숙하지만, 드문드문 들리는 스님의 말을 이어봅니다. 
"지금 나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불교는 마음의 움직임을 공부하는 종교입니다."

절의 후원을 보며 방금 들은 설법을 마음에 새겨 봅니다. 불가에서 중시하는 것 중 하나, 지금 현재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이 온전히 함께 하는 것.... 몸과 마음이 언제나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이렇게 좋은 곳이 왜 한국 가이드북에는 없을까요? 우리는 베스트 3, 아니면 베스트 5까지만 보거든요. 도쿄에서 당일치기로 가마쿠라를 온다면 에노시마도 봐야하고, 쓰루가오카랑 하세데라도 봐야하고 그럼 하루가 훌쩍 지나가고 거기에 줄 서서 먹는 맛집까지 베스트 3를 다 섭렵하다보면 8위, 9위를 챙길 여유가 없지요. 괜찮아요. 젊어서는 그렇게 다니고요, 나이 들어서는 좀더 여유롭게 다니는 겁니다.

가마쿠라에서 2박3일을 지내기에 저는 인적이 드문 절까지 다닐 수가 있는 거고요. 일본 소도시 여행의 매력이 여기 있어요. 붐비는 곳도 좋고, 한적한 곳도 운치있어 좋아요. 발품을 좀 팔았지만 보람이 있어요. 원래 절은 속세로부터 동떨어진 곳에 있어야 제 맛이거든요.

이제 어제 주인 아저씨가 소개해주신 9위 메이게츠인을 찾아갑니다. 영문 가이드북에는 2500송이 수국이 피는 곳이라고 적혀있네요. 

세상에 여기도 수국 꽃구경 맛집이네요!

어제 민박집 아저씨가 이곳 소개하며 "모미지가 도떼모 키레이나 도꼬로데스" (단풍이 무척 예쁜 곳입니다.)라는 말만 알아듣고 그 앞에 말은 놓쳤는데요.

알고보니 봄에는 수국, 가을에는 단풍으로 유명한 경치 맛집이고요. 주인 아저씨가 이곳을 제게 추천한 이유는 지금이 수국이 한창일테니 꼭 가보라는 말이었어요. 오지사이(수국)이라는 단어를 몰라 못 알아들은 거죠. 역시 외국어 회화 청취는 내가 아는 만큼만 들려요.   

아침 일찍 나와 5시간째 걸었더니 슬슬 지치네요. 메이게츠인 근처에 있는 요코스카선 기타 가마쿠라 역에서 전철을 탑니다. 1정거장 150엔. 도쿄 근교에는 전철 노선이 정말 많습니다. 다 부자 시절에 만든 사회적자본이지요. 여행자인 저도 덩달아 누립니다.

점심 먹고 숙소로 가서 쉬는데요. 가는 길, 철도변에도 수국이 피었네요. 최근에 읽은 <2030 축의 전환> (마우로기옌 지음, 우진하 옮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세계 최대의 숙박 공유 제공 업체 에어비앤비Airbnb는 일반 호텔 업체들과 경쟁하는 동시에 은행의 고객들을 빼앗고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많은 노인들이 어느 순간이 되면 가지고 있는 저축만으로는 생활을 꾸려나가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들에게는 대단히 가치 있는 자산 하나가 남아 있다. 바로 주택이다. 지금까지는 집을 팔지 않고 필요한 돈을 확보하는 전통적인 방법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 식으로든 채무자가 되고, 매달 은행에 돈을 상환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려야 한다. 두 번째는 집을 담보로 하여 매달 일정한 돈을 은행으로부터 받고 일정한 시기가 되면 집을 은행에 넘기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비교적 부담이 적지만 자녀들이 집을 상속받지 못한다. 여기서 에어비앤비가 등장한다. 자녀들이 떠나고 남은 빈 방들을 에어비앤비를 통해 찾아와 머물고 가는 여행자들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집 주인이 여행을 떠나거나 자녀들 집에 머무는 식으로 집을 비울 경우 집 전체를 빌려주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빌려주는 쪽과 빌리는 쪽은 서로의 형편에 맞춰 자유롭게 조건을 조정할 수 있으며, 집 주인은 집을 은행에 넘기는 일 없이 필요한 돈을 확보할 수 있다. 에어비앤비는 서로 다른 흐름들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았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줄어드는 출생률과 더 길어진 기대 수명, 연금이나 사회복지 수당만으로는 불안한 미래, 그리고 폭발적인 스마트폰 사용 증가와 점점 커지는 공유 개념에 대한 관심이 하나로 맞물린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60대인 집주인은 무역 일을 하며 영어를 익혔다고 했어요. 에어비앤비가 호텔의 시장만 잠식하는 줄 알았더니 은행의 영역까지 영향을 미치는군요. 세상의 변화라는 게 원래 그래요. 어떤 분야가 어떻게 넘어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끊임없이 책을 읽어 배우고 나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제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일이에요.  

책 읽다 낮잠 한 숨 자고 다시 에노덴을 타고 나갑니다.

오션 뷰 전철이라니, 매력적입니다. 에노덴.

선선해지는 저녁 무렵 가마쿠라 쇼핑가와 하세도오리 쇼핑가를 걷습니다. 저녁은 어디서 먹으면 좋을까? 궁리를 해봅니다. 가마쿠라역 앞, 고마치도오리 입구에서 시작해 둘러 보는데요. 관광지라 그런지 메뉴가 다 비쌉니다. 회전초밥은 쿠라스시의 2배 정도 가격이네요.

이럴 땐 살짝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빠집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큰 길가는 임대료가 비싸니, 고급 식당만 살아남습니다. 골목의 작은 식당이 가격이 착해요. 

테이블 없이 카운터석만 8개 있는 작은 식당이 있네요.

카이센동 1500엔이라는 메뉴를 보고 주문했는데요.

완전 맛있네요. 이 집은 다음에 또 와야겠어요. 미소된장국에 새우머리가 들어가 고소하고요. 

구글 지도에서 식당 이름을 검색하니 Kamakura Wasen 鎌倉和鮮 이군요. 블로그에 기록해뒀다가 다음에 또 가고 싶은 맛집니다. 혼자 여행을 다니기에 유명 식당보다는 이렇게 작은 가게가 더 편해요. 

오늘도 또 알찬 하루가 저무네요. 다음번에는 도쿄 여행기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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