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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로테르담의 부활 이야기

by 김민식pd 2024. 6. 5.

놀라운 도시, 로테르담 여행기 2편입니다.
저는 유럽 도시 자유 여행을 할 때, 현지에서 'free walking tour'를 신청합니다. 그럼 도시 주민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어느 가이드북에서도 만날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로테르담에서 만난 가이드는 도심을 걷다 문득 어느 교회를 보여줬어요.

네덜란드는 마약과 매춘이 합법인 나라입니다. 이곳에는 금기 사항이 많지 않아요. 반대편 극단에는 싱가포르가 있겠지요. 한때 로테르담 시내에 마약 중독자들이 거리에서 노숙을 했답니다. 마약 오남용이나 일회용 주사기를 돌려쓰면서 감염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례가 많았어요. 그때 한 신부님이 중독자들에게 깨끗한 1회용 주사기를 무료로 나눠주기 시작합니다. 아니, 마약을 하라고 주사기를 나눠주나요? 
신부님이 그러셨대요. '마약을 하는 게 죄라고 저들을 외면하면, 그들은 길에서 죽어갈 겁니다. 저들을 살리는 것이 목자의 길입니다.'
중독자를 교회로 이끌고 그들을 재활과 갱생으로 이끄는 신부님, 마약을 금기시하는 보수적인 종교인으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행보지요. 더욱 놀라운 건 그런 신부님의 활동을 지지하는 지역 주민들입니다. 로테르담의 파격은 이게 다가 아닙니다.

어느 마을에서 성탄절을 맞아 산타 클로스 동상을 만들어달라고 조각가에게 의뢰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조각가는 이런 산타상을 만듭니다. 산타가 손에 들고 있는 건 Butt plug라고요, 성적 쾌감을 위한 섹스 토이입니다. 산타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사랑의 즐거움이라는 뜻인데요. 이걸 본 주민들이 거룩한 성탄절에 이 무슨 해괴망칙한 짓이냐며 주문을 취소합니다. 갈 곳 없는 산타를 받아들인 게 로테르담이에요. 로테르담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현대 미술관이라 할만큼 새로운 아이디어가 곳곳에 가득한 곳이니까요. 
이 조각상을 시민들이 좋아하는지, 맞은편 건물의 가게 이름은...

Unplugged에요... 원래 언플러그드는 콘서트에서 전기 앰프를 쓰지 않고 기타나 드럼으로 어쿠스틱 연주를 하는 것, 즉 전기 플러그를 뽑는다는 뜻인데요. 이런 말장난도 재미있네요.

로테르담 시내를 흐르는 운하.  

수상 택시도 있어요.

운하 옆으로 보이는 큐브 하우스.

배를 주거시설로 이용하는 보트 하우스도 있어요.

안쪽에서 보니 더 신기한 큐브 하우스. 이런 디자인을 받아들인 포용성에 놀랍니다.

옆에 서 있는 연필과 함께 보니 더욱 독특하네요.

그날 점심은 파머스마켓을 구경하다 청어 요리를 먹었어요. 살짝 날로 먹는 생선인데요. 맛있어요. 가이드가 추천한 네덜란드 음식이에요.

원통 모양의 건물 안에 시장이 있는데요. 여기에도 청어 가게가 있어요.

생선 한마리에 빵을 줍니다.(3유로) 아주 가볍게 한끼 할 수 있는데요. 짭쪼름하면서도 기름진 게 살짝 과메기랑 비슷한 느낌이에요. 빵에 싸서 먹는 과메기?

점심 먹고 숙소에 들어가 낮잠 한 숨 잡니다. 계속 돌아다니면 피곤해요. 짬짬이 쉬워줘야 하고요. 그래서 저는 도심 관광지 밀집 지역에 숙소를 얻습니다. 그래야 중간에 들러 쉬기도 편해요.

오후에 시내를 걷다가 특이한 조각상을 봤어요.

오, 피카소 작품이네요!

유리로 된 거대한 화분 모양의 건물...이곳은 Depot입니다.

미술관 재건축 기간 동안 소장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지은 임시 창고인데요. 독특한 디자인으로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자, 신축 박물관이 지어진 후에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했다고요.

로테르담 사람들의 창의성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합니다.

거대한 화분처럼 보여요.

호숫가를 걷습니다.

호숫가 한쪽에 1940-1945 박물관이 있습니다.

로테르담을 먼저 여행한 친구가 꼭 한번 가보라고 했던 곳입니다.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났을 때, 독일은 로테르담을 점령하려고 했어요. 유럽 대륙으로 향하는 바다의 관문이니까요. 하지만 작은 나라 네덜런드의 반격이 만만치 않았어요. 결국 도시를 폭격으로 공습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런 평화로운 도시에...

폭탄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 곳에 앉으면, 공습사이렌이 울리고요. 마치 폭격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시청각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미디어 아트의 연출이 놀랍습니다.

폭격의 참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전시물이 있어요. 불에 거슬린 아이의 인형.

고열로 그슬린 상자 속 쿠키. 주인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웃나라 독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료로 보여줍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

그리고 다윗의 별을 이마에 그린 이미지로, 유대인을 악마화한 나치의 선전 영화 포스터.

히틀러를 영웅으로 떠받들고, 유대인을 악마로 내 몰은 독일인들은 이곳 로테르담에서도 끔찍한 짓을 저질렀어요. 이 아름다운 도시가...

공습으로 순식간에 폐허가 됩니다. 

로테르담의 비극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아요. 1943년에 미영 연합군이 다시 이 도시를 폭격합니다. 나치가 로테르담 조선소에서 독일 군함을 건조했기 때문이지요.

어릴 적에 본 영화 <유보트>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릅니다. 연합군은 당시 독일의 잠수함 유보트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습니다. 민간인 상선까지 마구잡이로 공격해 많은 이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거든요. 바닷속 깊이 숨은 잠수함에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잠수함도 언젠가는 물 위로 떠오릅니다. 가장 확실하게 떠오르는 곳은 바로 육지로 상륙하기 위해 정박하는 군항이지요. 그래서 나치의 해군기지를 맹폭합니다. 독일의 점령지가 되어 졸지에 부역자가 되어버린 로테르담의 시민들은 이번에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목숨을 잃습니다. 

전쟁 막판에 전세가 독일에 점점 불리해지자 나치는 후퇴하면서 로테르담 항구를 파괴합니다. 그대로 두면 연합군이 상륙하는 전초기지가 되기 때문이지요. 연합군의 반격을 늦추기 위해 항만시설을 폭파시킵니다. 즉 로테르담은 세 번에 걸쳐 철저하게 유린됩니다. 

폭격 전에는 아름다운 중세 도시였어요. 전쟁 후에는 폐허가 됩니다. 지금은 매우 매력적인 현대 도시로 재탄생했어요.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로테르담에게는 바다와 항구라고 하는 생산 자원이 있었던 겁니다. 
재산 財産은요, 모아둔 자산 (재물 財) + 생산 수단 (낳을 産)을 합한 글자입니다. 자산은 한방에 날릴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계속 새로운 가치를 창출 할 수 있는 생산 수단을 갖는 것입니다. 항구는 파괴되었지만 로테르담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근면 정신이 있고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실험 정신과 도전 정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꾸준히 일한 결과, 지금은 다시 유럽 연합 최고의 물동량을 자랑하는 무역항이 되었어요. 
그런 변화를 이끈 사람 중 하나가 지금의 로테르담 시장입니다. 아메드 아부탈레브. 가이드가 훌륭한 행정가라고 하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기에 찾아봤어요. 

Ahmed Aboutaleb (Arabic: أحمد أبو طالب; born 29 August 1961) is a Dutch politician of Moroccan origin, he is of the Labour Party (PvdA) and a journalist. He has been the Mayor of Rotterdam since 5 January 2009.
노동당 소속에 언론인 출신 시장이랍니다. 모로코 태생의 아프리카 출신 아랍계고요. 그는 3선에 성공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데요.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슬람에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에게 시장을 맡긴다고? 네, 알고보니 로테르담 인구의 33퍼센트가 이민자 출신이랍니다. 배를 타고 항구를 드나드는 뱃사람은 거친 사람들이에요. 물건을 부리고 나르고 하는 일은 힘들고 위험한 일이지요. 그런 일자리를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떠받치고 있어요. 그런 이주 노동자들 덕분에 로테르담이 성장한 거지요. 즉 이 도시는 폐허에서 살아난 불사조인데요. 그 과정에서 인종적 다양성을 품에 안았어요. 다른 종교, 다른 인종, 다른 생각을 끌어안음으로 도시의 창의성과 생산성이 증대되었습니다. 

로테르담의 시청. 며칠 지내는 동안 이 도시의 매력에 흠뻑 빠졌어요. 

'모아둔 재산은 언제든 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술이 있고, 근면한 노동 윤리가 뒷받침된다면, 누구든 다시 재기할 수 있어요.'
제가 로테르담 여행에서 배운 점입니다.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부활의 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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