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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교토 벚꽃놀이 역사 기행

by 김민식pd 2024. 5. 15.

교토 벚꽃놀이 2일차 이야기입니다. 아침 일찍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금각사입니다. (입장료 500엔) 소설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지요. 

킨카쿠지 金閣寺 (금각사), 화려한 금빛 누각으로 유명한 선종 사찰입니다. 사람들이 정말 많이 찾는 곳인데요. 저는 금박의 3층짜리 누각보다 조금 더 수수한 은각사가 좋아요. 짠돌이라 비싸 보이는 걸 싫어해서 그런가? ^^

금각사를 나와 료안지로 갑니다.

주위 풍광을 둘러보며 산책하듯 걸어갑니다.

곳곳에 벚꽃이 있어 봄의 흥취를 돋굽니다.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공간, 료안지입니다. (입장료 600엔)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돌을 보고 멍하니 있습니다. 네, 불멍, 물멍이 아니라 돌멍입니다.

료안지 龍安寺에는 돌과 모래로 된 정원이 있어요. 정원에는 물을 상징 하는 자갈이 전체 15개의 돌을 둘러싸고 있는데, 돌이 놓인 위치 때문에 한눈에 볼 수 있는 돌은 희한하게도 14개뿐입니다.

정원의 구조상, 어느 위치에서 보던 돌 하나는 다른 돌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어 있어요. 10년 전에 왔을 때도 '진짜 그런가?' 싶어 몇번을 위치를 옮겨가며 돌을 새어봐도 매번 14개더라고요. 분명 아까 보이지 않은 새로운 돌을 발견했기에 이젠 하나 더 늘겠지, 싶은데 그러면 또 하나가 안 보여요. 

이곳은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공간입니다. 삶에서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어요.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잃는 것도 있는 거죠. 

조용히 절 이곳 저곳 둘러보는데...

다실에 들어가기 전 손을 씻기 위한 세숫물이 담긴 츠쿠바이가 있네요.

엽전 모양의 츠쿠바이에 새겨진 한자들은 가운데 입 구口와 결합해 오유지족吾唯知足이 됩니다. 한자 4글자에 모두 입 구 口자가 있는 걸 이용한 건데요. 재밌게도 각각 아래, 오른쪽, 왼쪽, 윗쪽에 있기에 이런 조합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오유지족, ‘스스로 만족을 알라’는 뜻이지요.

불가에서는 예로부터 욕망을 다스리라는 가르침을 주셨지요. 물론 실천은 쉽지 않지만요.

예전에 왔을 때랑 관람 방식이 바뀌었네요. 전에는 마당을 걸어다녔는데, 이제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 내실을 둘러본 후 마루에 앉아 보는데요. 이게 더 낫습니다. 더 조용해요. 

이제 닌나지로 향합니다.

금각사-료안지-닌나지 모두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어요. (도합 1시간 30분 거리)

4월 10일에 도착해보니, 벚꽃놀이하기엔 조금 늦었더라고요. 그런데 닌나지는 교토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벚꽃이 피는 곳이에요. 

<오사카 홀리데이 : (2023-2024 최신판) | 인페인터글로벌 저> 책을 읽고 공부한 보람이 있어요. 

덕분에 셀카 한 장 건집니다. 앗싸! 욕망을 버려야하는데, 또 이렇게 소소한 성취에는 기뻐하는 삶이라니, 역시 중생은 구제불능인가요? ^^

꽃길을 걸어요~

벚꽃이 아니라면 여기는 안 왔을 것 같은데...

그래도 벚꽃명소라 그런지 앞에 개화시기 알림판도 있네요.

일본에는 다양한 수종의 벚나무가 있어 서로 개화시기가 조금씩 달라요. 그래서 생각보다 조금 더 오래 꽃놀이를 즐길 수 있는 듯... 

이제 니조조로 갑니다.

도쿠가와 막부 전성기를 함께한 성
니조조 二条城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머물기 위해 지은 성이다. 이 성에서 이에야스는 숙적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회견을 했다. 오사카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벌인 두 번의 전투에서는 이 성이 참모본부가 됐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었던 후시미성의 건물 일부를 이곳으로 옮겨오는 등의 공사를 거쳐 1626년에 완공되었다. 이후 니조조는 권력의 실세 역할을 했던 도쿠가와 막부 시대 쇼군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오사카 홀리데이 : (2023-2024 최신판) | 인페인터글로벌 저>

도쿠가와 이에야스, 저의 스승님 중 한분이지요. 예전에 32권짜리 <도쿠가와 이에야스> 소설 전집을 재미나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회사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요. 책 좋아하는 어느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민식아, 와신상담하면서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최고의 사부는 도쿠가와란다. 책 한 번 읽어봐."

일본판 삼국지입니다. 유비, 조조, 손권이 싸우는 중국의 삼국지처럼 일본에서도 3명의 걸출한 영웅이 패권을 놓고 다투던 시절이 있어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 셋의 리더십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있지요. 새가 울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 노부나가는 울지 않으면 목을 비틀어 죽인다고 위협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온갖 계책을 써서 달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요.

맹장 노부나가는 싸워서 원하는 걸 얻고, 지장 히데요시는 계책으로 원하는 걸 얻고, 덕장 이에야스는 때가 무르익기를 가만히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결국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 천하를 차지하는 건 이에야스입니다. 저는 32권짜리 소설을 읽으며 조용히 기회를 기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니조조는 또 1867년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대정봉환 (지방 토호의 잦은 봉기로 권력의 위협을 느낀 쇼군이 왕실로 국가 통치권을 이양한 조치로, 곧이어 메이지 유신이 단행됐다)을 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즉 도쿠가와 막부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한 장소인데요. 저는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삶이 흥미로웠어요.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에도 막부의 제15대 쇼군이자 일본사의 마지막 쇼군. 그리고 일본사 최후의 전근대적 통치자입니다. 원래 일본에서는 쇼군과 천황의 권력이 나뉘어 있었어요. 무력을 장악한 쇼군이 실질적 통치를 하고 천황은 그냥 상징적인 권위만 누리는 걸로. 그런데 존황양이파 (천황을 중심으로 외국 세력을 격퇴하자)들이 교토로 몰려듭니다. 만약 쇼군인 요시노부가 이들과 결전을 벌이기로 한다면 피를 부르는 내전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마지막 쇼군 요시노부는 아주 쿨하게 물러납니다. "그래? 너희가 원하는 게 왕에게 권력을 바치는 거냐? 그래라." 그가 권력을 내려놓았기에 막대한 희생을 동반하는 전쟁은 피하게 된 거지요.

니조조를 나와 교토 교엔으로 갑니다. 에도 시대 일왕이 머물던 교토의 거처인데요. 지금은 공원이 되었습니다. 

쇼군을 폐하고 일왕에게 권력을 일임한 존황양이파는 이제 메이지 유신을 단행합니다. 일본은 근대국가로 발전을 거듭하고요. 천황의 입장에서는 이게 웬 굴러온 떡이냐 싶었겠지요? 군사력을 장악한 쇼군이 물러나고, 이제 천황이 실질적 지배자가 되었으니까요. 그렇게 일본은 군사 강국이 되고요. 대동아 전쟁이 시작됩니다. 

교토 교엔을 걸으며 문득 영화 <서울의 봄>이 떠올랐어요. 영화에서 반란군과 진압군의 싸움에서 진압군이 패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반란군의 수괴 전두광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시민과 병사들의 피를 흘려서라도) 정권을 잡겠다는 사람이고요. 진압군의 이태신 장군은 무고한 일반 병사들의 희생은 막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어요. 즉 권력욕이 있는 사람은 권좌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요. 그러기에 세상은 잔인한 지도자의 것이 되기 십상입니다. 마지막 쇼군 요시노부는 그렇게 까지 할 생각은 없기에 쉽게 권좌에서 물러나고요. 


메이지 유신을 이끈 유신지사들은 야심가들이었어요. 그러니 쇼군에게 권력을 뺏은 후, 조선을 합병하고 중국을 침탈하면서 야욕을 드러내지요. 일왕 역시 그런 야심가들과 뜻을 함께 하고요. 그 끝에는 세계 2차 대전과 진주만, 그리고 원폭의 비극이 찾아옵니다. 몇몇 사람의 야심으로 무고하게 목숨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곧 5월 18일인데요. 광주 민주화 운동의 비극도 <서울의 봄> 영화와 함께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마침 이번주에 넷플릭스에 올라왔네요.) 국방부와 장군들이 무력하게 전두광에게 권력을 내어줄 때, 항거한 일반 시민들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들의 희생은 다시 영화 <1987>에서 그린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고요.

권력에서 물러난 마지막 쇼군, 요시노부는 이후에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는 죽을 때까지 정치를 멀리하고 폐거하며 살았습니다. 사냥과 낚시, 바둑, 사진, 자전거 등의 취미에 몰두했고요. 특히 카메라를 좋아해서 다양한 풍경 촬영을 즐겼답니다. 당시 흔치않은 취미였던 자전거 타기를 즐기거나 활쏘기와 수리검술 등의 단련도 빠뜨리지 않았다고요.

역사에 '만약'이란 의미가 없지만, 만약 그가 쇼군으로 권력을 계속 유지했더라면 일본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리고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인류가 세계 2차대전이라는 비극을 겪었을까요? 잠시 이런 저런 상상을 해봅니다. 한가한 여행자의 쓸데없는 망상이지요. 

꽃놀이에서 시작한 여행기가 너무 무거워졌네요. 혼자 길을 걸으며 이런 저런 상념에 빠지고 그런 생각의 조각을 모으는 것이 은퇴 후 제가 하는 공부라 그렇습니다. 아직 공부가 부족해 역사적인 인식이 부족할 수도 있는데요. 그런 경우, 너른 마음으로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제 저는 다음 여행지인 나라에 사슴들 보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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