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6일자, 하코네 여행 2일차의 일기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등산열차를 타러 갑니다. 하코네 프리패스 2일권을 끊으면 이틀동안 무제한으로 하코네 지역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전날엔 맨 앞칸 순방향으로 앉았는데요. 이번엔 맨 뒷칸에 역방향으로 앉습니다. 실은 이 자리가 전망이 더 좋습니다. 기차가 지그재그로 가는데, 역방향이 나중에는 순방향이 되거든요. 운전석 바로 뒷자리가 비어있어요. '오, 저기가 전망이 제일 좋은 자린데!' 앉으려다 다시 보니 경로우대석이네요. 해외 여행 가서 이상하게 운이 좋을 땐 다시 살펴봅니다. 모두가 자리를 비워둘 때는 현지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요.
서울 지하철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외국인 여행자를 보며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하지만 굳이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맞은편 자리에는 20대 한국 남자가 앉았거든요. 모르고 하는 건 실수인데, 알면서 하는 건 왜 그럴까요? 역시 한국의 메디컬 산업은 놀라워요. 의학 기술이 좋으니 남성 임신도 가능한 나라.
전날 기차 타고 지나가다 본 조각의 숲 미술관으로 갑니다. 기차에서 영어로 Open-Air Museum이라고 소개합니다.
조각의 숲 미술관 彫刻の森美術館
자연과 예술이 조화된 야외 미술관으로 1969년에 문을 열었다. 하코네 산들이 보이는 7만 m² 넓이의 푸른 정원에서는 근현대를 대표하는 조각가의 명작 약 120점을 전시한다. 로댕과 피카소 등의 도예작품을 중심으로 유화, 판화 등 거장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피카소관을 비롯해 5곳의 실내 전시장, 야외 광장의 예술작품은 물론 천연온천 족탕(아시유)도 마련돼 있어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도쿄 셀프트래블 (2023-2024) | 김미정,백진수 공저>
하코네가 이번이 세번째인데, 여기는 처음입니다. 직장인으로 일할 때는 짧은 일정에 많은 장소를 욱여넣느라 건너뛰었거든요. 이제는 여유롭게 돌아봅니다. 올해는 짝수달마다 일본 여행을 오니, 어디를 가든 시간이 촉박하지는 않아요.
입구부터 유명 조각가의 작품이 반겨줍니다. 오귀스트 로댕의 발자크상.
헨리 무어의 조각은 이곳 하코네의 풍광이랑 잘 어우러지네요.
다양한 조각상을 보며 걷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신의 손'입니다. 축구 선수 마라도나가 영감을 주었을까요? 죄송합니다. 오래된 농담... ^^
그날 제가 가장 좋아한 곳은 여기 스테인드 글라스 타워입니다. 빛의 향연입니다.
글라스 타워 정상에서 보이는 전망도 좋아요.
피카소관이 있습니다. 처음 보고는 '어라? 피카소는 회화의 거장인데 왜 조각 미술관에 단독 전시관이 있는 거지?' 아, 들어가보고 알았어요. 피카소는 노년에 세라믹이라는 재료에 매료되어 도예 기술을 공부하고 연마한 후 작품을 많이 남겼어요.
아쉽지만 이 전시실은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작품 사진은 없고요. 인터넷에서 찾아본 피카소의 세라믹 작품입니다.
피카소 약력을 보니 아버지가 미술 교사였어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그는 그림을 배우고 그렸고요.
19세에 파리 여행을 갔다가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20세에는 이미 왕성한 활동을 하고요. 26세에 그 유명한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립니다. 재미난 건 그의 초기 작품을 보면 대상을 정밀하게 그대로 묘사한 작품이 많았는데요. 나이들어 갈수록 대상을 해체하고 분석하고 단순화하여 입체파로서의 두각을 드러냅니다.
본격적으로 세라믹 작업을 시작한 게 66세고요. 74세에 첫 부인이 사망하고, 노후에도 왕성한 연애를 하다 80의 나이에 재혼을 하고, 91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전시실에는 피카소가 노년에 그림을 그리는 영상이 나오는데요. 실시간으로 상영되는 영상 속에서 그는 단 한 순간도 망설임없이 그냥 슥슥 손가는 대로 그립니다. 마치 마술 같아요. 얼마나 오래, 자주 그리면 저런 경지에 오를까요?
1963년작 '얼굴'입니다. 피카소가 이런 말을 남겼어요.
"It took me a lifetime to draw like a child.
평생 걸려서야 겨우 아이처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전율이 느껴졌어요. 아, 이게 진정 대가의 경지로구나. 아이처럼 사는 게 제일 어렵습니다. 저도 이제 겨우 아이처럼 살기 시작했어요. 아이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모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고, 실패에 대해 두려움이 없습니다. 모르기에 공부하고, 실패를 모르기에 다시 도전할 뿐입니다.
피카소관을 나와 다시 조각 공원을 걷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를 만났어요.
<들판 사이로 걷는 반 고흐>
등에 이젤과 물감통을 메고 손에는 종이와 펜을 듣고 걷는 모습의 생전의 반 고흐네요.
고흐의 분신을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보니 기분이 좋네요. 저 뒤로 보이는 것은...
'그물의 숲'입니다. 아이들이 타고 올라가 그네처럼 흔들며 놀 수 있는 곳이에요. 마음만은 나도 어린이지만, 어른은 이용금지. ^^
미로 공원도 있고요.
재미난 조각도 많아요.
'우는 사람' 흐르는 눈물이 연못이 되었네요.
1980년대 세계 2위의 부자이던 일본이 버블 시대 사들인 미술품을 구경합니다. 이웃집 부자가 열심히 사모은 예술품을 이제 우리도 먹고 살만해진 덕분에 마음 편히 구경하며 다닙니다. 저는 이런 것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온천 테마파크 유넷산입니다.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하코네의 자연을 감상하는 노천탕도 있고요.
수영복을 착용하고 이용하는 워터 파크도 있어요.
통합권 입장료는 3000엔. 온천 사우나 입욕료치곤 비싸고, 워터파크 이용료 치곤 쌉니다.
어린 아이들이 놀기엔 아담하니 좋으나, 오션월드나 캐리비언베이에 익숙해진 내게는 좀 심심하네요. 사람이 없어 수영장이 한적합니다. 다만 노천탕은 좋았어요. 워터파크를 빼고 온천욕만 할 경우 요금이 저렴하니까요. 만약 하코네에서 숙박을 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온천욕을 해보고 싶다면 여기서 입욕료만 내고 이용하는 것도 좋아요.
이제 저는 가마쿠라로 갑니다. 일정을 짤 때 예전에 가서 좋았던 곳과 한번도 가지 않은 곳을 적절하게 섞는데요. 세번째 가 본 하코네를 떠나 처음 가보는 가마쿠라로 갑니다. 과연 가마쿠라는 또 어떤 매력을 보여줄까요? 다음 여행기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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