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책을 읽을 때마다 스마트폰에 메모장을 하나씩 만듭니다. 책에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지식이나 정보가 있으면 메모를 해둡니다. 보통은 하나의 메모에서 하나의 글감이 나오는데요. 메모의 양이 넘치면 2개, 3개까지 메모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책에서는 9개의 메모가 만들어졌어요. (리뷰 역사상 최다 기록입니다.) 블로그에서 나누고 싶은 내용이 너무나 많아 도대체 어떻게 요약정리를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이 책은 제 리뷰만 읽지 말고 직접 찾아보시라고 권하고 싶은데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 제가 배운 점을 옮겨봅니다.
여러분은 성공을 위해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좋은 머리? 건강한 몸? 유복한 환경? 그런 건 이력서나 외모, 옷차림에서 드러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뽑을 때 1차 서류, 2차 필기, 3차 면접을 통해 뽑습니다. 먼저 이력서를 통해 그 사람의 성과(학력과 성적, 그리고 경력)를 보고요. 필기를 통해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을 평가합니다. 그런 다음 최종 관문으로 직접 만나 그 사람의 외모와 말투를 보지요. 만약 이 모든 과정에서도 보이지 않는 숨은 잠재력이 있다면? 그리고 그게 성공을 부르는 가장 중요한 히든 포텐셜이라면?
<히든 포텐셜 : 성공을 이루는 숨은 잠재력의 과학 | 애덤 그랜트 저/홍지수 역>
책에서 말하는 숨은 잠재력은 사람의 품성입니다.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 같은 성격이 아니고요. 근면 성실한가, 아닌가 같은 품성이요. 품성을 흔히 성격과 혼동하는데, 둘은 달라요. 성격은 여러분이 지닌 성질이나 경향입니다.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원초적 본능입니다. 품성은 여러분의 본능보다 가치를 우선시하는 역량입니다.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이거나, 사람의 성격은 각양각색입니다. 성격으로 역량이 바뀌지는 않아요. 우리는 흔히 내성적인 사람은 사회에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착각하지만 <콰이어트>라는 책을 보면 예전처럼 협업으로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서 일하지 않고 요즘처럼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에는 내향적인 사람도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저 역시 혼자서 조용히 책을 읽고 길을 걸을 때 생산성과 창의성이 올라갑니다.
‘만사가 잘 굴러갈 때 주도력이나 결의를 실천하기는 쉽다. 품성의 진정한 시험대는 상황이 여러분에게 불리할 때 그러한 가치들을 지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성격은 평상시에 여러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이고, 품성은 어려운 때에 여러분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다.’
사람의 품성은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아요.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합니다. 모두가 지쳐 떨어질 때,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있어요. 모두가 짜증을 낼 때, 끝까지 여유를 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그게 품성입니다. 사람이 힘들어지면 3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삼류는요,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류는 해야 하는 일만 하는 사람입니다. 일류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하는 사람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구분은 더욱 뚜렷해집니다.
지난 몇 년 유럽을 여행했어요. 2022년에는 그리스, 2023년에는 중부 유럽,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남부 유럽과 북부 유럽의 경제력의 격차가 꽤 크다는 사실이요. 그리스는 서양 문명의 근원지입니다. 철학, 문학, 예술이 다 아테네에서 태동했어요. 하지만 지금 아테네에 가보면 거리 곳곳에서 노숙자들을 만나고, 골목골목마다 오줌 냄새가 진동하고 마약에 찌든 이들이 보여요. 이 위대한 문명의 근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니라, 일어나지 않은 게 무엇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히든 포텐셜>을 보면 경제학자들이 종교 개혁과 경제 성장의 연관성을 밝혀낸 연구가 나옵니다. 중세 시대 유럽의 가톨릭교회는 성서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사제들은 일반 신자들이 모르는 라틴어로 미사를 집전했어요. 정보를 사제 집단이 독점했지요. 루터는 이를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최초로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고, 어느 마을에 있는 어느 학교든 모조리 아이들에게 성서를 읽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러려면 사람들이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했어요. 일단 글을 배우자 모든 정보가 손안에 들어오게 되었지요. 사람들은 뭐든 훨씬 빠른 속도로 배웠습니다. 종교 개혁이 사회에 가져온 선물은 바로 문해력이었습니다.
1900년 기준 서로 다른 여러 국가에서 프로테스탄트의 비율을 나타내는 두 개의 그래프를 보면, 프로테스탄트가 거의 없는 나라들(브라질, 이탈리아, 멕시코)은 경제 성장률과 문해율이 모두 낮습니다. 종교 개혁이 휩쓴 나라들(독일, 영국, 스웨덴)은 경제 성장률과 문해율이 높고요. 미국은 어떤가요? 심지어 종교 개혁의 시대에 구교도의 탄압을 피해 신대륙으로 떠난 프로테스탄트들이 만든 나라입니다. 도전 정신으로 가득 찬 이들이 새로운 땅에서 문해력이 높은 효율적인 정치 경제 조직을 만들고 불과 1787년에 세운 나라가 21세기의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것이지요.
100년 전 문해력이 높았는가, 아닌가로 현재 유럽 사회의 국가 경쟁력이 갈린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요. 이건 우리도 이미 아는 이야기에요. 한국 경제가 지난 50년 새 초고속 성장을 이루는 동안 우리의 교육열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았고요. 그 결과 우리는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제적 격차도 벌어졌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경쟁 교육의 현장으로 내몰리는 건 바로 그런 우리의 기억 탓 아닐까요? 지식의 격차가 자산의 격차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니까요.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경쟁 교육보다는 평생 학습이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저는 10대의 학업 성적과 개인의 경쟁력은 무관하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 사람도 어른이 되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특징은 바로 스펀지입니다.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능력. 문해력 역시 새로운 정보를 빨아들이는 능력을 키웠어요. 이제 모두가 문맹을 탈출한 시대, 이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새로 배우는 일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흡수 역량은 새로운 정보를 인식하고 가치를 평가하고 동화하고 새로운 정보를 적용하는 능력으로서 두 가지 핵심적인 습관이 결정한다. 첫째는 정보를 확보하는 방법이다. 시야에 들어오는 대상에 반응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지식, 기량, 관점을 주도적으로 찾아 나서는가? 둘째는 정보를 걸러낼 때 추구하는 목표다. 자아 충족에 초점을 두는가? 아니면 성장할 동력을 얻는 데 초점을 두는가?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자아를 충족시키는 데 집중하면 반드시 학습에서 지름길을 모색하게 된다. 그리고 보호막 안에 갇히게 된다. 새로운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약하고 자기 평판을 위협하는 정보는 무엇이든 거부하게 된다. 비판이나 모욕에 민감한 사람은 이해력이 떨어지고 둔해진다. 주도력도 있고 자아 충족에도 집중하면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할 문이 열린다. 정보를 수동적으로 소비하기보다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추구한다. 그러나 문제는 피드백이 부정적이면 걸러내버린다. 너무 불편하기 때문이다. 건설적 비판도 다 떨어져 나온다. 테플론(Teflon)같이 된다. 아무것도 들러붙지 않는다.’
얼마 전에 강의를 하다 물어봤어요. “제가 대학에서 자원공학을 전공했는데요. 뭐 하는 과인지 아시나요?” 보통은 청중이 몰라서 눈이 똥그래지거나 “모르겠는데요.”라고 합니다. 그럼 저는 웃으면서 “모르시겠지요? 네, 저도 모르고 들어갔습니다. 신입생 수강 신청할 때 배우는 과목 보고 알았어요. 석탄채굴학, 석유시추공학, 아, 이 학과가 원래는 광산학과구나.”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런데 그날은 어떤 분이 큰 소리로 “관심 없는데요?”라고 대답했어요. 순간 맥이 탁 풀렸습니다.
질문을 했을 때,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면, 답을 알려드리면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런데 ‘관심 없다’는 대답은 무슨 뜻이에요? 난 당신이 하는 말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잖아요? 말하는 사람의 기를 팍 죽입니다. 역시나 그분은 제 강의에 흥미가 없었는지 내내 졸다가 수업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중간에 가셨어요. 이럴 때 저는 힘이 빠지고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듭니다. 가르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은 배울 의지가 없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강의를 듣는 걸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내 특강이든, 도서관 저자 강의건, 지자체 인문학 강연이건, 늘 찾아서 다녔어요. 저는 항상 새로운 걸 배우는데 진심입니다. 나는 나를 좋아해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그 사람이 더 잘 되기를 바라는 거지요. 저는 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며 글을 쓰고 공부를 합니다.
반응적이고 성장 지향적인 사람은 배울 가능성이 더 큽니다. 진전을 목표로 삼고 반응하는 사람들은 찰흙처럼 모양 짓기가 쉽습니다. 낯선 걸 익숙하게 만드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불편함이 따릅니다. 그냥 편하게 살려면, 익숙한 것만 하면서 살면 됩니다. 다만 그렇게 살면 성장을 도모할 수는 없어요. 스펀지 같은 사람은 끊임없이 주도적으로 자신을 확장하고 적응하고요. 이러한 품성 기량은 불리한 여건에 처해 있을 때 특히 가치가 있습니다.
책을 읽다 ‘나는 언제 새로운 걸 빨아들였는가?’하고 생각해보니 그게 늘 고난이나 시련이 찾아왔을 때 였어요. 대학 전공의 본질을 깨닫고 나자 이 공부로는 21세기에 밥 먹고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영어를 공부했습니다. 통역이라는 직업이 컴퓨터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피디로 직업을 바꿨고요. 고령화 시대, 나이 70에도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작가라는 직업에 도전하고 있어요. 위기가 오면 우리는 바뀌어야 하고요, 그걸 위해서는 스펀지가 되어야 합니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이 있어요. 지금껏 내가 원하는 일을 찾지 못했더라도, 내가 원하는 조직에서 기회를 얻지 못했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어요. 아직 세상이 나의 숨은 잠재력을 발견하지 못한 거니까요. 아니, 어쩌면 나 자신도 나의 히든 포텐셜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고요. 내가 모르는 잠재력을 세상에 알릴 방법은 없는 거죠.
나의 숨은 잠재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걸 고민해보며 살고 싶습니다. 스펀지처럼 배우고 익히며 시련과 함께 더욱 단단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편 소설을 읽는 즐거움 (15) | 2024.08.19 |
---|---|
치매는 최후의 선물이다 (13) | 2024.08.12 |
세 대의 화살 (8) | 2024.06.24 |
오래 살고 싶어졌다 (16) | 2024.06.14 |
사춘기 마음을 통역해 드립니다 (11) | 2024.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