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평생 살면서 하는 건 공부, 일, 놀이, 이 셋 중 하나입니다. 평균 수명 60세이던 시절에는 생애주기별로 딱딱 나누어졌어요. 10대 20대에는 공부를 하고, 30대 40대에는 일을 하고, 50대가 넘어 퇴직하고 잠시 쉬다 돌아가셨지요. 이제는 세상이 변했습니다. 고령화 시대에는 이렇게 살기 힘듭니다.
100세 시대에 10대, 20대에 몰아서 배운 걸로 남은 평생 버티는 건 힘듭니다. 무엇보다 세상의 변화가 빨라졌어요. 이제는 평생 공부하고요, 50대에 회사에서 퇴사한 다음에도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50대 중반에 은퇴하고 남은 평생 그냥 여가만 즐기다 가는 것도 쉽지 않아요.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40년을 어떻게 놀아요. 그렇게 살면 더 빨리 늙습니다. 뇌에 아무런 인지적 자극이 없어지면, 사람은 인지기능 저하를 겪습니다. 혼자 힘든 게 아니라 치매가 찾아와 주위 사람들도 힘들어집니다. 이제는 나이 50에도 공부하고, 나이 70에도 일을 해야 합니다.
글로벌 트렌드와 국제 비즈니스 전략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30만 부 베스트셀러 <2030 축의 전환> 저자인 마우로 기옌 와튼스쿨 교수가 새 책을 냈어요.
<멀티제너레이션, 대전환의 시작> (마우로 기옌 저자(글) · 이충호 번역/ 리더스북)
전 세계적인 인구 축소와 고령화, 수명 증가와 과학 기술 발전이 가져오는 세상의 변화를 짚어보고, 대응책을 고민하는 책입니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게 되면 성공적인 삶과 안락한 노후가 보장된다는 생각은 이제 낡은 개념입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어요. 저는 고령화 시대가 우리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일을 찾을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가 노후에 찾아오는 것이니까요.
20대에 저는 자원공학(구 광산학과)이라는 전공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어요. 대학 전공으로 인생이 결정 나는 게 아니라고요. 그래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요. 책을 읽으며 기회를 모색했지요. 100세 시대, 일과 공부와 놀이가 생애 전 주기를 걸쳐 선순환하는 과정을 만들 수 있다면 이제 우리는 대학 전공과 상관없이 새로운 경력의 기회를 찾아갈 수 있어요.
멀티제너레이션의 시대에는요, 여성은 경력을 쌓으면서 아이를 낳을 수 있고요, 육아를 마친 후,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 다시 공부해서 새로운 직무 역량을 키워 일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세대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배우고 일하며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됨으로써 세대 간 갈등이 완화될 수 있고요. 요즘 화두인 DEI (Diversity, Equity, Inclusion) 경영을 위해서라도 워킹맘과 나이든 은퇴자와 젊은 세대가 한 공간에서 어우러질 필요가 있습니다. 구성원의 다양성 증가는 창의성의 증대로 이어지고요. 급속한 경제와 기술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니까요.
다만 나이가 들면, 육체와 정신의 쇠퇴를 피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생식기를 지나고 나면, 유전자는 복제 과정이 엉성해지고 돌연변이가 축적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물의 유전자는 번식이라는 목적 하나를 향해 달려갑니다. 생존도 알고 보면 번식을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번식에 유리한 나이가 지나면 모든 생물종은 쇠퇴하고요, 결국 죽습니다.
초원을 호령하던 사자도 전성기가 지나 더 젊고 강한 숫사자에게 도전을 받으면 무리에서 쫓겨나 홀로 쓸쓸하게 죽어갑니다. 때로는 하이에나의 밥이 되기도 해요. 인간은 번식이 끝났다고 바로 죽지는 않고요, 무리에서 쫓겨나지도 않아요. 저는 이런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산업과 경제의 발전으로 인류는 수명 연장이라는 놀라운 성공을 얻게 되었어요. 이렇게 얻은 기회로 우리는 자아실현에 있어 새로운 전기를 찾아야 합니다.
진로를 찾고 직업을 선택하는 게 한 방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평생 동안 영향을 미칠 결정을 어린 나이에 내리는 것은 언제나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기술과 사회가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책에는 이런 사고 실험이 소개됩니다.
‘60m 떨어진 곳에 있는 과녁을 향해 활을 단 한 번만 쏜다고 해보자. 과녁 한복판을 맞히면, 300달러의 상금을 받을 수 있다. 이번에는 과녁 3개가 20m 간격으로 죽 늘어서 있다고 해보자. 20m 거리에서 첫 번째 과녁을 향해 활을 쏴 명중시키면 100달러의 상금을 받고, 첫 번째 과녁까지 걸어가 화살을 뽑아 거기서 20m 거리에 있는 두 번째 과녁을 겨냥하는데, 이번에도 성공하면 100달러의 상금을 받는다. 이제 두 번째 과녁까지 걸어가 화살을 뽑아 20m 거리에 있는 세 번째 과녁을 겨냥하는데, 마찬가지로 성공하면 100달러의 상금을 받는다.
자, 여러분은 60m 거리에서 활을 한 번 쏘겠는가, 아니면 20m 거리에서 활을 세 번 쏘겠는가? 당연히 60m 거리의 표적에 명중시키는 것은 20m 거리의 표적에 명중시키는 것보다 더 어렵다. 만약 각각의 확률이 1%와 5%라고 가정한다면, 기대 이득은 20m 거리에서 활을 세 번 쏘는 것($100×5%+$100×5%+$100×5%=$15)이 60m 거리에서 한 번만 쏘는 것($300×1%=$3)보다 다섯 배나 많다.
요점은 20년마다 학교를 다니면서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하는 편이 단 한 번의 선택으로 60년 동안 어떻게 살아갈지(습득한 지식과 기술이 낡은 것이 될 위험을 무릅쓰면서) 정하는 편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다. 게다가 경험이 쌓이면 표적의 중심을 맞힐 확률도 높아질 수 있다. 물론 이것은 60년 동안 단 한 번의 결정을 내리는 대신에 20년 간격으로 세 번에 걸쳐 무엇을 공부하고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결정할 때 가능한 결과이다.’
저는 책을 읽다 무릎을 쳤어요. ‘아, 내가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 저는 20대의 대학 전공으로 평생 직업을 결정하지 않았어요. 외대 통역대학원을 졸업했지만 동시통역사 대신 예능 피디라는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60미터 거리에서 한번에 과녁을 맞추는 것보다, 일단 눈앞에 조금 더 가까운 과녁에 화살을 쏘고, 맞으면 다시 걸어가서 다음 과녁을 조준했던 겁니다. 그러니 나이 서른에 예능 피디가 되고, 마흔에 드라마 피디가 되고, 쉰에는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거죠.
2030세대에게 지금 이 순간 평생 무슨 일을 하며 살 건지 ‘결정을 내리라고’ 강요하는 것은 과도한 스트레스와 기회 상실, 삶에 대한 불만을 낳을 수 있습니다. 10대와 20대 젊은이에게 과도한 압력을 가하는 것은 대개 역효과를 낳습니다.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치는데요, 시장에서 노동력이 적재적소에 할당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지요. 더 나은 대안은 젊은이에게 인생의 소명은 교실과 직장을 여러 차례 오가면서 다양한 일자리와 경력을 경험하고 실험하는 과정에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놀이도 어린 시절이나 평일 저녁, 주말, 휴가 중에만 국한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생의 단계들이 덜 엄격하게 구분돼 있으면, 공부와 일과 놀이를 평생에 걸쳐 더 유연하게 배정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일 이외의 관심 분야에 몰두할 자유를 더 많이 줄 수 있습니다.
저는 20대에 첫 직장에 사표를 내고 나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영어를 공부하며 나름의 재충전 시간을 가졌는데요. 그게 전체 인생에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휴식은 때로는 강제로 주어지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 40대에 갑자기 회사에서 이런저런 핍박을 받으며 드라마 피디의 경력이 중단됩니다. 당시에는 무척 괴로웠는데요, 지나고보니 그 시절에 책을 읽고 길을 걸으며 노후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 덕분에 조기 은퇴하고 지금은 작가 겸 강연자로 살고 있고요.
핵심은 이겁니다. 20대에 반드시 평생 직장을 선택할 필요도 없고요, 그러는 것도 점점 힘들어집니다. 일과 공부와 놀이가 매일 매일 조금씩 순환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삶에 기회는 여러번 주어진다고 믿고,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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